노인 일자리 맞나요?…고단한 지하철 택배 노인들

문경란

maniaoopss@hanmail.net

2016-02-1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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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혹시 노인들이 쇼핑백을 어깨 가득 메고 가시는 모습 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하철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해 배달하는 '지하철 택배' 어르신들인데요. 하루 12시간, 주 6일을 꼬박 일해도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50만 원도 채 안된다고 합니다. 이것도 그나마 건강할 때 이야긴데요. 생계를 위해 나이 들어서도 고달프게 일해야 하는 현실, 직접 함께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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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

    정오가 가까워 오자
    하나둘 사람들이 모입니다.

    시간에 맞춰 모이는 노인마다
    어깨에는 쇼핑백을
    한가득 짊어지고 있습니다.

    가져온 쇼핑백을 모아놓고 보니
    긴 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이 모여 있는 시간은 단 30분 남짓.

    오후 2시 20분 을지로4가역 입니다.

    이곳엔 더 많은 노인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30분이 지나자
    언제 모였냐는 듯
    텅 빈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하철 역사 곳곳에
    짐을 한가득 들고 왔다가
    목적지를 분류하기가 무섭게
    떠나는 이들.

    바로 '지하철 택배' 노인들입니다.

    지하철 택배는 약 10년 전쯤
    65세 이상 노인들의
    지하철 무료탑승에 착안해
    만들어졌습니다.

    교통비가 들지 않고
    인건비가 싼 노인을
    택배 기사로 쓰기 시작하면서
    노인 일자리로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고객이 의뢰한 물건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내
    지하철을 이용해 직접 전달합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에서
    12시와 2시, 4시, 6시
    이렇게 하루에 네 번 모여
    택배를 배달하는 지하철 택배 노인들.

    첫 번째 12시 배달 일정으로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까지 간다는
    노인과 함께 해봤습니다.

    8개가 넘는 쇼핑백을 단단히 묶어
    한쪽 어깨에 들쳐메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르내립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잠시 쉬나 했더니,
    2시 배달을 하려면 시간이 없다며
    스마트폰으로 다음 일정을
    확인하기 바쁩니다.

    이 일을 한 지 2년이 넘은
    김 씨 할아버지는
    일하는 보람을 이렇게 말합니다.

    <현장음> 김 씨 할아버지 (69세)
    "약간은 힘들어야 운동이 되지. 힘들지 않으면 운동이 안 돼."

    목적지에 도착한 노인은
    백화점 안에서만큼은
    배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며
    입구에서 짐을 풀어
    양손으로 옮겨들고
    바삐 떠났습니다.

    또 다른 지하철 택배 회사에서
    8개월 전부터 일하고 있는
    일흔두 살 왕 씨 할아버지.

    첫 택배배달에 나가기 위해
    아침 7시가 되기 전 집에서 나와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사무실에는
    이미 왕 씨 할아버지처럼
    일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보며
    대기 중입니다.

    첫 일정은 서울 경동시장에서
    물건을 받아 성남까지 전달하는 일.

    <현장음> "00 농산이죠? 여기 택배인데요."

    출발 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지만
    길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현장음> "기업은행 옆에 왔는데요. 안보이네요."

    약재를 파는 점포에 묻고,
    횡단보도를 건너
    인근 점포에 재차 확인합니다.

    30분 만에 겨우 목적지를 찾아
    배송할 물건을 받은 할아버지의 얼굴에
    이제야 안도의 웃음이 퍼집니다.

    한 시간이 넘게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경기도 성남의 태평역.

    물건을 전달하고
    만 원을 손에 쥐었습니다.

    12시가 돼서야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뜻밖에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다음 일거리가 들어온 겁니다.

    다시 제기동 역 근처의
    회사에서 물건을 받아
    가산디지털단지역의 회사까지
    부품을 전해주는 일정입니다.

    <현장음> 노인 지하철 택배 이용업체
    "어르신들이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윈윈 하자는 거죠. 어르신도 벌이가 되고 우리도 일하기 편하고요. (다른 택배와 달리) 빨리 가시니까 다른데 안 들리고요."

    이렇게 오후 세시까지
    번 돈은 2만 원.

    이 가운데 15%는
    회사에 수수료로 내야 합니다.

    이 시간까지 점심을
    거르는 것은 예삿일입니다.

    <현장음> 점심 드시고 오는 거예요? / 뭘 먹고 와요? 어디서 먹고 올 수도 없는데.

    이 시간이 돼서야
    겨우 컵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노인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다시 일거리를 받아
    인천 간석오거리로
    물건을 전달하는 일정.

    오후 4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지만
    왕 씨 할아버지는
    이미 2만 걸음 가까이 걸었습니다.

    이렇게 할아버지가 하루 12시간,
    주 6일을 꼬박 일해 버는 돈은
    한 달에 40~50만 원 남짓.

    <현장음> 왕 씨 할아버지 (72세)
    "40~50만 원 되고 많이 한 사람은 60~70만 원 정도 되고. (한 달) 생활은 잘 안 되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정부가 노인 일자리 창출을
    끊임없이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에서 노인들의 일자리는
    열악하기만 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노인이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은
    10명 가운데 6명인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생활비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대부분이 여가나 취미가 아니라
    실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데도
    정작 노인을 위한 질 좋은 일자리는
    찾기 어려운 것입니다.

    <인터뷰> 고현종 /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노인들이 노후 빈곤을 헤쳐나가기에는 굉장히 부족해요. 연금소득이 조금 늘어나고 노인 일자리에서 지원해주는 급여가 조금 늘어나면 거기 플러스 자기가 한 건 두건 일해서 얻어지는 수익, 플러스알파가 되겠죠."

    <스탠드업>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또 누구도 피해갈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노년의 고달픔은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헤쳐 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tbs 문경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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