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 31주기 맞아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최양지

tbs3@naver.com

2018-01-1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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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뉴스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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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부

    [인터뷰 제 2 공장]

    "박종철 열사 31주기 맞아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 김학규 사무국장(박종철기념사업회)

    김어준 : 이틀 뒤면 1987년, 고문치사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당시 학생이었죠. 박종철 학생 31주기입니다. 그 현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이죠. 그런데 이 대공분실을 시민들 공간으로 만들자 하는 청원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일에 앞장서고 계신 박종철 기념사업회 김학규 사무국장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학규 : 예, 안녕하십니까?

    김어준 : 내일모레인데, 그럼 일요일이라 저희가 방송할 수 없어서 이틀 먼저 모셨습니다. 관련해서 많은 사업을 하고 계시죠?

    김학규 : 예. 최근에 아주 바쁩니다.

    김어준 : 더군다나 1987이란 영화가 예상치 못하게, 뭐랄까요. 이 1987의 기억을 확 끌어당겼어요. 그렇죠?

    김학규 : 저는 예상했었는데.

    김어준 : 그러십니까? 영화도 대단히 완성도 있게 나왔다고 하고.

    김학규 : 몰입도가 대단하더라고요.

    김어준 : 그 감독님이 훌륭한 분이죠. 장준환 감독.

    김학규 : 예.

    김어준 : 대단한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동안. 빛을 잘 못 보시다가.

    김학규 :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김어준 : 이번에 빵 터졌습니다.

    김학규 : 천재적인 감독, 이렇게 평가는 받는다고 하는데.

    김어준 : 20년 째 천재 소리를 듣다가 드디어 진짜 큰 영화를 만들었는데. 자, 이 남영동 대공분실이 현재는 어떻게 되어 있는 겁니까?

    김학규 :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가 들어서 있는데요. 2005년까지는 여기가 대공분실이었고요. 2005년 홍제동으로 대공분실 기능은 옮겨갔고요.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가 들어서 있습니다.

    김어준 : 여전히 기념관이나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고 경찰이 쓰고 있었군요.

    김학규 : 경찰들이 자신들이 이제는 인권경찰로 거듭 태어났다. 이런 걸 과시하는 공간으로 이 공간을 사용하고 있죠.

    김어준 : 그럼 과거와 같은 모습 그대로 유지되지도 않겠네요, 당연히.

    김학규 : 2000년경에 한번 여기를 리모델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509호, 박종철 열사가 돌아가신 곳만 옛날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다른 곳은 리모델링돼서 일정하게 변형이 됐죠.

    김어준 : 그래요?

    김학규 : 예.

    김어준 : 몰랐네요. 그러면 지금 청와대 청원도 진행하시고, 이 사업을 앞장서시는 것은 과거와 똑같이 복원해서 시민들이 공간에 가서 기억을 되살리고 사건을 잊지 않도록 만들고 1987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이런 공간을 만들자는 것 아닙니까?

    김학규 : 이곳이 지금 아까 말씀드렸듯이 부분적으로 변형된 것도 있기는 한데, 그래도 이런 형태로라도 보존되어 있는 곳은 사실 이곳밖에 없어요. 대표적인 곳이 남산의 중앙정보부, 안기부가 있고, 서빙고, 봉안사 대공분실. 이런 곳 있지 않습니까? 그런 데는 사실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고요. 민주주의와 인권탄압의 상징적인 공간 중에서 살아남아있는 곳은 사실은 여기 남영동 대공분실밖에 없어서 이곳은 그대로 지켜야겠다. 그리고 이 곳에서는 이제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배우는 그런 생생한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김어준 :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저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이 들고. 근데 저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는 못했어요. 아껴두고 있는데. 근데 이제 박종철 열사와 동기시잖아요? 동기이신데, 이 영화가 사건을 다루다 보니 학생 박종철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빠졌다. 물론 영화가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다 다를 수 있는데. 그래서 학생으로서의 박종철, 친구로서의 박종철을 아시는 분들은 그 점이 아쉽다고들 하던데.

    김학규 : 예, 이게 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죽는 것부터 시작하는 영화다 보니까 사실 살아있을 때의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죠.

    김어준 : 우리 사회가 이 사건을 어떻게 다뤘나. 이게 주제다 보니까.

    김학규 : 그러다보니까 친구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쉬워하죠. 인간 박종철의 모습, 이런 걸 볼 수 없다 보니까. 그러면서 이제 저희들도 만나서 그런 이야기 하다 보니까 ‘종철이가 어땠는데.’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죠. 참 따뜻한 친구였고요, 그리고 눈이 맑은 친구. 그리고 친구들, 후배들 잘 챙기는 친구.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요즘 말로 얘기하면 상남자. 이런 스타일이었는데요. 영화에서 그런 게 나오지 않다보니까 오히려 더 절실하게 이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어 준,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김어준 : 눈이 맑으면 상남자입니까?

    김학규 : 주변을 좀 잘 챙겼죠.

    김어준 : 그렇군요. 저도 눈은 맑은 편인데. 애초에 대공분실로 끌려간 이유가 뭡니까?

    김학규 : 자신이 무슨 문제가 있어서 피의자로 잡혀간 게 아니고요. 사실은 수배 중인 한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를 찾으려면 박종철을 족치면 나온다. 이런 식의 첩보를 상대방이 입수한 거죠. 그래서 이제 하숙집에서 불법연행을 하게 된 거죠.

    김어준 : 역사의 아이러니는, 그렇게 끝내 불지 않았던 선배는 사실은 보수정당에 들어가셨고.

    김학규 : 근데 종철이가 끝내 불지 않은 것은, 자연인 그 선배 한 사람 때문에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있는 전두환 군사정권에 위에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투쟁하고 있었는데 그 조직이 붕괴되면 안 되겠다. 내가 지켜야겠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석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김어준 : 물론 그렇겠죠. 근데 어쨌든 그렇게 해서 보호받았던 그 선배가 보호 할 가치가 없었다고 나중에 역사적으로 판별이 나는 아이러니가 있다는, 정말. 그건 별개의 얘기니까요. 처음 그러면 친구 박종철의 사망소식을 언제 들으셨습니까?

    김학규 : 저는 다음 날이죠, 1월 15일. 중앙일보 석간에 처음으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관련된 보도가 나온 건데요. 저도 그 당시 수배 중이었는데, 중앙일보 석간을 사서 사회면을 펼쳐봤다가 그 소식을 접했죠.

    김어준 : 놀라셨겠습니다.

    김학규 : 처음에 충격이 컸고요.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했었죠. 그리고 또 우리는 뻔히 아니까. 이게 고문에 의한 사망이라는 걸. 그러다 보니까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 이런 게 막 치밀어 올랐고요. 그런데 그걸로 그친 게 아니라, 저도 수배 중이다보니까 언제 잡힐 수 있다. 잡히면 고문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고문 받다가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두려움, 이런 게 엄습해 오더라고요.

    김어준 :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도 했지만, 위축도 시켰겠어요.

    김학규 : 예. 저 같은 경우는 당시는 수배 중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런, 한 순간 그런 게 있었고요. 세 가지 감정이 뭉쳐서 아주 묘한 감정 속에 제가 한동안 휩싸였었죠.

    김어준 : 두 가지밖에 말씀 안 하셨는데 한 가지 감정은 뭡니까?

    김학규 : 충격 그 자체.

    김어준 : 아, 충격. 그런데 이제 이 사건을 두고 자유한국당의 곽성도 의원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밝힌 건 보수정권이다. 굉장히 창의적인 주장이긴 합니다만.

    김학규 : 이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한 번 나온 적 있었어요. 뭐냐면 안상수, 당시 수사검사가 있었잖아요. 그 인물도 그 쪽에 있었고, 또 아까 나왔던 그 선배도 그 쪽에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출판기념회를 똑같은 책을 글자 하나 안 바꾸고 제목만 바꿔서 책을 다시 냈었어요. 안상수 검사가 ‘안 검사 일기’ 이랬다가 ‘6월 민주항쟁과 박종철’이었던가? 이런 식으로 이름을 바꿔서 속 내용은 하나도 바꾸지 않고 출판기념회를 했었는데, 그 당시 축사를 한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대요. ‘6월 민주항쟁의 주역이 우리다. 우리도 6·29선언까지 발표해서 했지 않았느냐.’

    김어준 : 6월 민주항쟁의 주역이 어떻게 어떤 논리로 자신들이 주역이라는 거죠?

    김학규 : 박종철 사건의 진실을 밝힌 안상수가 우리 당에 있고, 그 사건의 시발점이 됐던 그 인물이, 선배가 우리당에 있다. 이런 황당한 해괴한 논리를 만들었었죠. 이번에 보니까 그 곽상도, 이 분도 사실 그 당시에 검사였고요. 또 얼마 후에는 그 유명한 강기원 유서대필조작사건, 그 당시에 수사검사였었잖아요. 그러다보니까 가재는 게 편이다. 이런 말이 떠오르고요. 어떻게 보면 당시에 검찰 수사팀이 얼마나 진실을 은폐하는데 앞장섰는지 이런 걸 뻔히 알았을 텐데, 그런데도 뻔뻔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곽상도 의원은 영화를 봤는지 안 봤는지 모르겠는데, 영화에서도 이미 진실을 밝힌 사람들은 이부영, 한재동, 이런 인물들이잖아요? 그리고 밑에 깔려있는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이런 것이었는데 엉뚱하게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정말 어이가 없었죠.

    김어준 : 사실 이런 영화가 이렇게 이런 시점쯤에 나와 주고, 그러니까 그 분들이 여전히 살아 계실 때. 친구들, 지금 말씀처럼. 이런 말씀하실 수 있는 분들이 살아있을 때 이런 영화가 나와 준 게 다행인 게,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상상도 하기 힘든데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시간이 충분히 지난 다음에 더 이상 학생 박종철을 직접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시대에서 이런 주장을 하게 되면 양쪽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그렇게 조작될 수도 있습니다.

    김학규 : 기득권층이 어떻게 역사를 조작하는가. 이런 걸 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어준 :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거죠, 저희가. 마침 지금은 터무니없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살아있으니까요. 코웃음 치는데, 저는 이런 시도들이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이런 영화가 이쯤에 나와 준 게 굉장히 다행이다 싶어요.

    김학규 :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어준 : 그러면 이 사업. 지금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공간으로 바꿔달라고 하는 이 사업 있잖아요. 그 취지는 충분히 알겠는데, 그렇게 되려면 누구의 힘이 필요합니까? 저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김학규 :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고요.

    김어준 : 어떻게 해야 하죠, 시민들이?

    김학규 : 저희들이 지금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하고 있는데요. 검색창에서 국민청원 인권기념관. 이렇게 치면 바로 그게 나오고요. 거기에 함께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김어준 : 이건 청와대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공간으로 바꿔 달라고 청원에 동참하면 됩니까?

    김학규 : 함께 우선 동참을 해 주시고요. 지금 더 적극적으로 관심 있는 분들은 저희들이 영화 1987 끝나고 나오는 분들을 대상으로 해서 캠페인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래야 하니까.

    김어준 : 그런데 이건 그냥 단순히 외치는 거잖아요.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있는 방법은 없어요?

    김학규 : 이건 사실 법을 바꿔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고요. 청와대가 결단하면 충분히 가능하고 검토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어준 : 검토를 하고 있다. 전문가 이런 것은 필요 없고요?

    김학규 : 저희들이 사실 이걸 처음 계획하고 고민할 때는 청와대 앞 1인시위도 해야 하고,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지금 말씀하셨듯이 그런 점거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도 나왔었는데, 영화 1987이 나오면서 저는 이 정도로 국민들이 그 동안에 너무.

    김어준 : 김학규 사무국장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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