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인싸_이드] 태풍, 큰불 제일 무서운 사람은 장애인

최양지 기자

y570@tbs.seoul.kr

2022-09-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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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화기<사진=TBS>  

    ▶ 재난은 불평등하다.

    올해(2022년) 8월 유례없는 집중 호우로 서울이 잠겼습니다.

    불어난 물은 이웃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덮쳤습니다.

    폭우가 도심을 할퀴고 간 뒤 안전 취약 계층의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급격히 불어나는 물에 반지하에 살던 발달 장애인 일가족 세 명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반지하에 거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책이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적장애인의 대부분은 재난이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오로지 주거 형태에만 쏠려 있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정치권의 관심이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 다른 재앙이 일어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8월 말 은평구 다세대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에선 홀로 집에 있던 시각장애인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화를 당했습니다.

    예기치 못하게 닥치는 재난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피해도 누구에게나 똑같을까요?

    ▶ 재난과 약자

    어린이, 임산부, 고령자, 장애인, 외국인은 재난 피해를 입기 쉽고 또 피해로부터 복구가 어려운 재난 약자입니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재난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피해는 비장애인보다 훨씬 큽니다.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은 꼼짝없이 고립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힌남노 태풍이 관통한 포항 지역 장애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터뷰】진소현 / 태풍 힌남노 피해자

    Q. 태풍 피해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A. 비가 많이 왔고 기계가 다 물에 잠겼고, 방에는 장롱, 전화기, TV, 세탁기 냉장고 다 물에 잠겼어요.

    Q. 대피를 혼자 할 수 있었나요?
    A. 아니요. 어머님이 저를 깨워서 옥상에 올라가서 (며칠) 지내다가 짐을 다 치우고 이제 내려와서 생활하고 있어요.

    Q. 재난 상황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A. 집 옥상이 좀 가파르거든요. 올라갈 때 좀 힘들어요. 태풍 때문에 (피해 본 거) 말하라고 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이번 태풍처럼 새벽에 잠자고 있는데 누가 깨우지도 않고, 잠든 도중에 물난리 나고 그랬으면 잠자고 있는 제가 어떻게 알아요. 장애인이 피할 도리가 없죠.

    【인터뷰】김성연 사무국장 / 장애인 차별금지 추진연대
    “장애인분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하셨어요. 난 그럼 집에 가만히 있다가 그냥 사고를 맞이해야 하나 보다. 대피를 전혀 할 수가 없으니까.(재난) 안내 방식이나 이런 방법이 장애 유형을 고려하지 않고 또 장애인이 피난할 수 있는 방법이나 대피에 대한 매뉴얼이 전혀 없어서….”

    자연 재난 중 가장 발생 빈도가 높은 화재의 경우 장애인 사망자 비율은 비장애인보다 5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재난에 취약함은 더 증가했습니다.

    ▶ 장애인이 생존하려면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장애인의 사회적 교류는 점점 줄고 있는데,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의 사회적 관계망은 생존과 직결됩니다.

    위급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웃이나 회사 동료가 있다면 생존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인터뷰】박은선 연구교수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2016년에 (일본) 구마모토 대지진이 있었어요. 그때도 주변이랑 이웃이랑 평소에 관계가 있던 분은 이웃이 구출하러 온 것이죠. 근데 평소에 주변이랑 인연이 없었던 분들은 이웃분들이 이분한테 연락을 하고 싶어도 생사도 알 수 없는 경우도 사실 있었다고 해요. 장애인은 스스로 돕는 것이 어렵기도 한데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는 게 되게 중요하거든요? 함께 탈출하는 게 중요한데 사회적 관계망이 얇다 보니까 대피에 굉장히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자력 구조를 위해서 재난 상황에 스스로 대피하는 훈련이 장애인에게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 사건 당시 세계무역센터에 있던 모건스탠리 직원 2,600여 명은 건물 붕괴 직전 안전하게 빠져나왔습니다.

    이 중에는 장애인, 노인 등도 있었는데, 수년간 실시했던 꾸준한 대피 훈련 덕분이었습니다.

    지속적이고 실제적인 경험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인터뷰】박은선 연구교수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장애인과 함께 비장애인이 같이 대피 하는 워크숍을 수차례 진행했어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초동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불이야'를 외친다든가 아니면 만약에 가스가 나오거나 불이 났다는 것을 인지하면 무조건 빨리 나가야 한다, 3분 안에 대피를 해야 해요. 그런 것들을 여러 번 학습을 통해서 외우시더라고요. 두 번째 워크숍 때는 다들 조금 더 능숙하게 탈출을 했거든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신속한 대피를 위해서는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대피 정보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장애인에게 이런 정보의 접근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지난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 당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방송이 나오지 않아 논란이 됐습니다.

    이후 재난 상황에서 수어 통역을 의무화하는 다수의 법안이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지난해(2021년) 4월 열린 국회 과방위 회의에서는 수어 통역 인력 부족과 재정 지원의 어려움이 언급돼 있습니다.

    【인터뷰】김성연 사무국장 / 장애인 차별금지 추진연대
    “문자 안내나 문장들이 나오지 않냐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해요. 그런데 수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시는 분들은 수어하고 문장식 문장과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문장으로만 쓰여 있는 내용에 대한 빠른 이해가 매우 어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비상 상황에 빨리 이 상황을 확인하고 빨리 대처를 하려면 수어 방송이 반드시 제공이 되어야 하는 거죠.”

    ▶ 차별과 재난

    얼마 전 지하철 운행을 막아섰던 장애인의 시위를 기억하시나요?

    시민들의 출근길 불편을 초래한다는 비판과 함께 큰 논란이 됐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일상이 재난입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재난 상황에서 탈출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코로나19 이후 마스크 착용만큼이나 낯설었던 장면은 정부의 코로나19 방송 전면에 나오는 수어 통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입과 손 모양 모두를 이용해 의사소통해야 하는 수어를 두고 수어 통역사에게 마스크를 쓰게 하라는 지적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사라질 때 비로소 진정한 평등이 실현되고 장애인의 안전도 보장됩니다.

    【인터뷰】박은선 연구교수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근본적으로 장애인이 재난 때 제일 대피를 잘하게 하려면 평상시에 차별을 없애야 하는 거예요. 왜냐면 평상시에 차별이 심하고 이동도 못 하는데 재난이 됐다고 해서 갑자기 대피를 잘하고 갑자기 평등해질 수가 없잖아요. 평상시에도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지만 재난 때도 사실 대피를 잘하는 것이죠.”

    차별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장애 유형별 맞춤 재난정보를 제공하고, 동시에 재난 훈련을 일상화해서 장애인 스스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함께 재난을 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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