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아물지 않는 5.18의 상처 "사죄라도 듣고 싶어요…속이 터질 것 같아서"

임현철

hc1101@seoul.go.kr

2020-05-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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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앵커멘트 】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어느덧 40년이 흘렀습니다.

    광주 학살의 책임자로 지목된 전두환과 그 일당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고 여전히 어떠한 반성도, 한마디 사죄도 없었습니다.

    5.18 피해자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는 이유입니다.

    먼저 임현철 기자가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 기자 】
    1980년 5월 24일 낮 2시, 11공수여단이 광주 진월동 일대로 들어옵니다.

    곧 인근 민가를 향해 공수부대의 무차별 사격이 시작됩니다.

    어린 딸아이를 업고 집 밖을 서성이던 박종단 씨는 가까스로 몸을 피했지만
    집에 있던 남편은 총탄에 맞았습니다.

    【 INT 】박종단 씨/오월 어머니집
    "군인들끼리 오인 사고가 있었나 봐요. 그 보복으로 그 일대를 집에다가 총으로 얼마나 쏘든지…"

    이날 진월동과 송암동 일대 양민 학살로 친구들과 놀고 있던 당시 11살 전재수 군은 10여발의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죽은 아들을 혼자 볼 용기가 없었던 전 군의 어머니에 대해 박 씨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 INT 】박종단 씨/오월 어머니집
    "그 엄마가 와서 같이 가 보자고 해서 갔는데 나는 못 보겠는데 거기는 자식이니까 그 엄마가 "봐봐 총이 이렇게 해서 배로 나왔어…"하면서 그 엄마가 우는데 그 때는 (같이) 울지도 못 했어요."

    5월 21일 시위에 참여했다 금남로 전일빌딩 앞에서 계엄군 총에 맞은 당시 34살의 조사천 씨.

    5살 난 아이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 정동순 씨의 기억은 아직도 그날에 멈춰져 있습니다.

    【 INT 】정동순 씨/오월 어머니집
    "살짝 잠이 들었는데 얘기 아빠가 왔어요. 방문만 열고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울다가 가는 거예요. 내가 총 맞았는데 안 찾고 모하냐 채찍질하는 거 같더라고요…"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도 수십 년째 그대롭니다.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남편의 고문 후유증은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습니다.

    【 INT 】추혜성 씨/오월 어머니집
    "TV에서 군인들이 나오니까 갑자기 브라운관을 던져버리니까…왜 그러냐 하니까 그대로 발로 뻥 차버리니까 저는 순간에 정신을 잃어버렸죠."

    계엄군이 진압해 올 때까지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시체를 관에 묻어줬던 기종도 씨.

    헌병대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후 1982년 3월 '광주 횃불회'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됐다 결국 병을 얻어 사망합니다.

    40년이 흘렀지만 5.18 영령들과 가족들은 여전히 그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반성도, 사죄도 없습니다.

    【 INT 】고 기종도 씨 부인 박유덕 씨/오월 어머니집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어요. 그런데 저 사람은 저렇게 뻔뻔히 살아있고 하니까 말로는 다 못하겠어요. 우선은 사죄라도 듣고 싶어요. 속이 터질 것 같아서…"

    TBS 임현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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