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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16(목) 김용장 전 미 군사정보관 & 허장환 전 보안대 특명부장과의 인터뷰
작성자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록일 2019-05-16 10:47:10
분류 기타 조회수 602

* 내용 인용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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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1공장]

19805.18 광주를 증언하다,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학살과 은폐 시나리오의 전말!

- 김용장 씨 (당시 미군 501정보여단 군사정보관)

- 허장환 씨 (당시 보안사 505보안대 특명부장)

 

김어준 : 지난 월요일이었습니다. 국회에서 굉장한 증언이 있었습니다. 19805·18 당시 미 육군 정보부대에서 그 이후로 25년간 근무하신 정보요원 김용장 씨, 그리고 5·18 당시에 특명부대 보안사 소속이었습니다. 정보요원이었던 허장환 씨가 5·18의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 결정적 증언들을 하셨습니다. 두 분을 저희가 스튜디오에 직접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용장 : 안녕하십니까.

 

허장환 : 감사합니다.

 

김어준 : 어려운 자리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말고 사실은 국회나 광주에 가서 증언을 중심으로 하고 계신데 이렇게 저희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먼저 이거부터 여쭤봐야 되겠습니다. 한 분은 미 육군 정보부대 소속이셨고, 또 한 분은 한국군이죠? 보안사령부 정보요원이셨는데 두 분이 39년이 지난 후에 만나셔서 증언을 같이 하고 계세요. 김 선생님은 게다가 피지에 계셨었고, 또 허 선생님은 강원도에서 칩거하시다시피 하셨다고 하는데 두 분이 어떻게 만나시게 된 겁니까?

 

김용장 : 제가 먼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허장환 씨를 많이 찾았어요. 그런데 연락이 끊어졌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김어준 : 허장환 선생님을 그 이전부터 아셨던 거죠?

 

김용장 : 알았죠. 허장환 씨는 제 대학교 후배예요. 그리고 505보안대 근무할 때 서로 연락도 했고.

 

김어준 : , 이미 80년대 당시부터 알고?

 

김용장 : ,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민을 갔기 때문에 서로 연락이 끊어졌고 그러나 31년 전에 허장환 씨가 양심선언을 했어요.

 

김어준 : 88년에 하셨어요.

 

김용장 : , 그러니까 약 31년 전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 작년 언젠가 한겨레 신문에 허장환 씨 기사가 나왔어요. 그래서 바로 제가 한겨레에 연락해서 연락처를 알게 됐고.

 

김어준 : 김 선생님이 먼저 찾으셨군요, 선생님을.

 

김용장 : . 허장환 씨도 저를 찾았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나게 됐습니다.

 

김어준 : 그런데 또 피지에 날아가신 건 허 선생님 아닙니까? 그렇죠? 허 선생님은 어떻게 김 선생님을 찾게 되신 거예요?

 

허장환 : 88년도에 제가 양심선언을 한 후에,

 

김어준 : 그때는 혼자 하셨기 때문에 누군가 뒷받침할 수 없어서 묻혀 버렸어요.

 

허장환 : 사회적 배경이나 정치적 배경이 조금 제가 말한 것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표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타까운 마음에 젖어 있는데 이게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김어준 : 혼자 주장해서는 안 되겠다.

 

허장환 : . 그래서 교차 검증을 해 줄 만한 분이 국내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불현듯 생각난 분이 김용장 선배셨는데 저도 찾았죠.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피지에 살고 계신다면서 연락이 와서 반가웠습니다.

 

김어준 : 그리고 나서 피지까지 날아가신 이유는 뭡니까?

 

허장환 : 국내 언론한테 제가 이런 분이 피지에 살고 계시는데 당신들이 요구하는 방송에 교차 검증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고 제의를 했더니 그 방송사 사주께서 기꺼이 응하셔서.

 

김어준 : JTBC 말씀하시는 거죠? 손석희 사장님 말씀하시는 거죠?

 

허장환 : , .

 

김어준 : 우리 사주는 아닙니다.

 

허장환 : 그래서 그분이 흔쾌히 지원을 해 주셔서. 상당히 피지에 가는 비행기 삯이 비쌉니다.

 

김어준 : JTBC에서 지원했군요. 그래서 날아가셔서 뭐라고 설득을 하셔서 같이 돌아오신 겁니까? 왜냐하면 제가 알기로는 김 선생님이 JTBC 인터뷰하고 나서 더 이상은 인터뷰는 안 하겠다고 그때 하신 걸로 제가 들었거든요.

 

김용장 : 그렇습니다. 손석희 사장께서 전화가 왔었어요. "반응이 굉장히 좋습니다. 빨리 들어오십시오." 그렇게 전화를 해 주셨더라고요. 그때는 엉겁결에 ",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제 집사람한테 전화를 했어요. 시드니에 있는데요. 들어가면 안 된다고 큰일 난다고 굉장히 위험하다고.

 

김어준 : 사모님이 과거 생각하시고.

 

김용장 : "지금 굉장히 위험하다. 들어가지 말라." 그래서 여자들 말 들어서 손해 볼 거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못 가겠다고 캔슬을 했어요.

 

김어준 : 그런데 허 선생님이 가서 어떻게 설득하신 거예요?

 

허장환 : 저분이 고집이 좀 셉니다. 평소에도 고집이 좀 센 분인데. 이제는 시대가 그때하고는 좀 다르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당신의 증언이 가장 중요한 때다. 우리 국가를 위해서, 비록 국적을 달리 했지만 태생은 한국인 아니냐. 속된 말로 꼬시는데 힘이 들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때 여러 분들이, 홍남순 변호사가 저분의 멘토라는 걸 제가 알고 아주 적절하게 그분 자제를 제가 동행해서 가서 그분이 많은 설득을 했습니다. 홍남순 씨 셋째 자제 홍기섭 씨라고 그분을 제가 모시고 가서 같이 설득을 하고, 5·18재단에서도 상임이사님이 동행을 하셔서.

 

김어준 : 그러니까 허 선생님 혼자 31년 전에 했는데 혼자 했을 때 힘이 부쳤고, 시대 상황도 그랬지만. 꼭 내가 하는 말을 전혀 다른 부대에 있었던 미 육군 정보요원으로 있었던 분의 교차 검증이 있으면 충분히 증언력이 더 강해지겠다고 생각하신 건데. 그럼 김 선생님은 설득이 어느 포인트에서 당하신 겁니까?

 

김용장 : 5일 걸렸어요, 저를 설득하는데.

 

김어준 : 5일이나요?

 

김용장 : 5일간 제가 계속 거절했는데, 못 가겠다고. 거의 반 강제적으로. 그래서 제가 그 얘기 했어요. 사람을 이렇게 납치해서 이러는 것은 4대 범죄에 들어가는데, 그런데 홍기섭 씨가 "우리가 지금 이때 광주의 5·18에 대한 진상을 규명 못 하면 영원히 미궁에 빠진다.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것이냐." 거기에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가자!"

 

김어준 : 어려운 결심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허 선생님이 한번 하셨잖아요, 과거에. 그런데 지금이라고 판단하신 이유는 뭡니까?

 

허장환 : 광주 문제가 지금까지 39년간 베일에 쌓인 원인이 뭐냐? 하는 걸 제가 오랜 세월 동안 이것이 미궁에 빠지고 대통령님들이 교체되는, 다시 말해서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마다 강한 의지를 표현했지만,

 

김어준 : 초기에는 그랬는데.

 

허장환 :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까 전부 유야무야되고 희석되고 잊혀져 가는 것 같아서 이건 잊혀져 갈 사안이 아니고 덮어야 될 사안이 아니다, 이렇게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어준 :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하신 것은?

 

허장환 : 지금 우리 문재인 정부, 다시 말해서 대통령님께서 저번 38주기인가 광주 행사에 참석하셔서 딱 한 마디하시는 걸 보고 ', 이제는 시기가 왔구나.'

 

김어준 : , 어떤 말씀이?

 

허장환 : 이렇게 느낀 대목이 "우리 5·18의 정신을 헌법의 정신으로 하고 5·18의 정신을 민족 기치의 국치로 해야 된다."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김어준 : 그게 와닿으셨어요?

 

허장환 : 그런 의지를 가지신 분이라면, 또 그리고 현 문 정부는 촛불집회에 의해서 이루어진 정부입니다. 국민의 성원에 의해서. 그러면 주변의 지원이 없이, 다시 말해서 빚이 없는 정부입니다. '이런 정부만이 이런 참뜻을 구현시킬 수 있겠구나.' 이런 마음이 들어서 저도 여기에 이제는 결심을 하고 이 진실을 규명하는 데 앞장서야겠다, 이런 각오로 나왔습니다.

 

김어준 : 서로 두 분이 두 분을 찾았고, 먼저 찾으신 건 김 선생님이 허 선생님의 연락처를 찾아냈고 그리고 허 선생님은 김 선생님한테 가서 설득해서 이렇게 해서 증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 이미 많은 증언을 하셨습니다, 사실은. 이게 발포가 아니라 사살 명령이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편의대라고 하는 듣지도 못했던 특수부대에 대한 투입도 들었고. 그런데 제가 최근에 두 분의 인터뷰를 쭉 읽으면서 들었던 가장 핵심적인 의문 사항은 뭐냐 하면 허 선생님이 "시나리오다." 몇 번에 걸쳐서 이야기를 하셨는데, 큰 틀에서 볼 때 그렇다면 5·18이라는 게 우연히, 어쩔 수 없이 진압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이것은 시나리오였던가? 그리고 광주는 거기서 하필 그런 시위가 격화돼서 일어난 게 아니라 광주는 선택한 것인가? 이 전체가 하나의 기획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단 말이죠. 우선 결과적으로 그것부터 두 분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각각 다른 관점에서 당시를, 당시 두 분 다 광주에 계셨으니까 보셨겠지만 이게 기획이고 시나리오가 맞습니까? 결론적으로 먼저 말씀드리자면.

 

김용장 : 맞습니다. 시나리오입니다.

 

김어준 : 당시 미 육군 관점에서 그렇게 파악하신 거죠?

 

김용장 : 그렇습니다.

 

김어준 : 그럼 보안사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시나리오입니까?

 

허장환 : 보안사의 관점이 아니고 제가 봤을 때, 또 그 당시 시나리오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김어준 : 본인이 직접 시나리오에 참여하셨으니까요.

 

허장환 : . 그런데 필연적이다 하는 건 동일합니다. 전두환 씨 입장에서 필연적으로 정권 찬탈을 해야 되는 필연성이 있었고 광주를 타겟으로 삼아야 되는 필연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필연성에 목표를 둔 명확한, 확연한 시나리오입니다. 이 시나리오를 짜지 않으면 그렇게 완벽하게 그 각본이 써내려 갈 수가 없었습니다.

 

김어준 : 이게 처음 나온 이야기거든요, 사실. 이게 비극이지만 시민과 당시 계엄군이 부딪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상황이 어지럽고 격하게 벌어져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결과론적으로. 이것과 처음부터 그걸 의도했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두 분으로부터 이것은 의도한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굉장히 충격을 저도 받았는데. 그러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도시도 선택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도 하셨어요, 증언 와중에. 도시는 어떻게 선택이 된 겁니까, 그러면?

 

허장환 : 여러 도시를 예상을 하고,

 

김어준 : , 물망에 처음에 있었다?

 

허장환 : 사전에 대상에 올렸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김어준 : 여러 도시를 검토하는 단계가 있었던 거죠, 앞에?

 

허장환 : , 검토는 했죠. 그런데 그건 서울에서 이루어졌고, 그다음에 광주를 해야 되겠다는 필연성은,

 

김어준 : 다른 도시 어떤 어떤 게 검토됐습니까?

 

허장환 : 그건 미 국무성에 보고한 저분이 아주 정확하게 분석해서 보고를 했으니까 알고 계실 겁니다.

 

김어준 : 도시 선정 과정에서 어떤 도시들이 검토됐습니까?

 

김용장 : 이건 제 의견입니다. 보고를 한 건 아니고,

 

김어준 : 당시에 파악한.

 

허장환 : 보고하려고 했던 사안이죠.

 

김용장 : 광주에서는 과거 역사를 보면 19271127일 광주 학생운동이 있었고 광주는 저항의 도시로 이렇게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 연고지도 되고, 비록 그분이 목포에서 태어나셨지만.

 

김어준 : 정치적 연고지라고.

 

김용장 : 그렇죠. 정치적인 연고지고, 그래서 가장 쉽게 광주를 타겟으로 삼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유리한 점들이,

 

김어준 : 다른 도시들은 어디가 거론이 됐어요? 마산 이야기도 나오고.

 

김용장 : 마산 같은 경우는 규모가 좀 적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대구, 부산 같은 데는 너무 크고.

 

김어준 : 목포는 너무,

 

김용장 : 목포는 너무 후미진 곳에 있고 인구도 적고.

 

김어준 : 너무 멀다. 대전 같은 곳은요?

 

김용장 : 대전은 서울에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리고 기질 자체가 대전 같은 경우는 그렇게 저항을 하지 않는, 그렇게 판단을 했을 겁니다.

 

김어준 : 그렇게 판단을 했다는 거죠, 당시에는? 그래서 최종적으로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아서 결론적으로 광주가 나온 거네요?

 

허장환 : 가장 큰 요인은 김대중 씨의 연고지다. 그리고 민족 간의 묘한 지역차별주의,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서 광주를 건드리면 가장 극대적인 효과를 점할 수 있다, 이런 판단을 해서 광주를 타겟으로 삼은 겁니다.

 

김어준 : 그러니까 도시가 선택된 게 먼저라는 거죠?

 

허장환 : 그렇죠.

 

김어준 : 그것 자체가 이미 기획인 거죠?

 

허장환 : .

 

김어준 : 그러면 당시 김대중 야당 총재를 제거해야 했던 이유는 뭡니까? 군부가 가장 먼저.

 

허장환 : 이 이야기가 좀 오래전 이야기로 갑니다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존해 계실 때 보안사령관 또는 정보부장으로 양대 아침 보고를 받습니다. 간밤에 한반도에 일어났던 정세에 대해서. 그때 박 전 대통령이 상당하게 촉각을 세운 부분이 북계의 동정이 좀 이상하다, 북한의 동정이.

 

김어준 : 그건 뭐 당연한 것이고.

 

허장환 : 그다음에 야당 당수격인, 지도자격인 김대중 씨가 좀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일탈된 행동을 보인다. 이런 보고를 받으시면 상당히 신경이 예민해졌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보안사와 정보부가 이분한테 심려를 끼쳐 드리지 말아야겠다는 차원에서 합동적인 공작을 벌이게 됩니다.

 

김어준 : 김대중 당시 야당 총재를 상대로.

 

허장환 : . 그래서 그것이 일명 'KT공작'입니다, 그 유명한. 저는 광주하고 호남 지역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쪽이 고향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KT공작 요원으로 선발이 돼서.

 

김어준 : , 처음 광주를 가신 게 김대중 당시 야당 총재를 사찰하고 정보를 취합하는 요원으로 처음에 광주를 가신 거군요?

 

허장환 : . 그런 과정에서 광주항쟁이 발발이 됐을 때 ', 광주가 타겟이 되겠구나.' 하는 것을 이해를 했습니다. 광주를 타겟으로 삼은 이유를.

 

김어준 : 그렇군요. 그게 시나리오였다. , 그러면 시나리오임이 분명함을 드러내는 편의대, 그러니까 평상복장을 입는다는 거죠. 편한 옷을 입고 전쟁에 나가면 적의 후방에 투입되는 특수부대를 말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편의대가 한 일이 뭡니까?

 

허장환 : 미리 말씀을 드리는데 편협적으로 장갑차가 털렸다, 무기가 털렸다, 편의대가 운영됐다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편협적인 거고 전체적인 각본 속에, 시나리오 속에 그런 부분 부분적인 역할들이 다 있었습니다.

 

김어준 : , 계획이 처음부터 있었다?

 

허장환 : 일단 첫 단계, 계엄을 확대 계엄을 하고, 예비 검속을 하고, 대상자들을. 그렇게 해서 예비 검속 대상자들이 김대중 씨를 비롯한 재야인사, 광주에서 정신적인 지주격에 있는 그런 분들을 유치시킴으로써, 연행함으로써,

 

김어준 :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잡아들였죠, .

 

허장환 : 그렇게 유치시킴으로써 시민들을 자극을 시켜서,

 

김어준 : 그러니까 5·18 전에 잡아들이는 것부터가 다 기획이군요.

 

허장환 : 그렇죠. 그게 벌써 예비 검속자 명단이라고 해서 그것이 이미 하달돼서 계엄이 확대되기 전날 밤 일제히 검거를 합니다. 그 검거 현상이 순식간에 알려지고 학교를 폐교하고 그당시에 우리나라 부마 지역도, 다시 말해서 부산·마산 지역도 똑같은 데모 양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그때 데모를, 다시 말해서 확대 계엄을 할 필연성이나 이런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조선대학은 교내 문제로 학생들이 거리에 나오는 시위하는 양상이었고, 국립대인 전남대생들은 앞으로 정국을 지켜보자, 이런 추이였고.

 

김어준 : 그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허장환 : 그래서 데모를 진압하는 전투 경찰들도 휴식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종교인들은 석가탄신일이 앞으로 곧 다가오니까 거기에 대한 준비에 바빴고.

 

김어준 : 그때 당시에 광주에서 그런 정보를 취합하셨던 분이니까 정확하게 아시겠네요.

 

허장환 : 그걸 제가 보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 학생들만 몇 명 연행을 하고 재야인사 몇 명만 불러서 점잖게 타일러서 내보내면 정국이 안정될 것 같습니다.

 

김어준 : 광주는 평온한 편이다, 이렇게 보고를 하셨는데.

 

허장환 : 그랬더니 상당히 질책을 받았어요. 급하지도 않은 ... 이런 거나 하라고 저한테 이야기를 했는데 갑자기 16일 날 사령부 이학봉 차장이 전국 보안부대 대공수사과장들을 소집해서 긴급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 이튿날 부대 귀대한 제 상관이 "확대계엄이 선포된다." "예비 검속자들 명단이 하달됐다." 이래서 그때부터 시작해서 다시 말해 시나리오에 들어가는데,

 

김어준 : 그게 첫 단계고.

 

허장환 : 그때 제가 묘한 질문을 한 가지 했습니다. "김대중 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저는 당연히 KT공작원이니까 김대중 씨의 근황이 궁금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미 서울에서 검거했다." 이 말은 이 전체적인 사항이 시나리오다, 하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김어준 : 그래서 김대중 당시 야당 총재를 구속하고 그러면 광주가 흥분하겠지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광주가 평온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엄군을 투입했는데, 계엄군이 원하는 만큼 흥분 상태가 안 되니까 편의대를 투입한 겁니까?

 

허장환 : 그렇죠. 그래서 시민들을 자극하고, 선동하고. 조금 더 가열화됐을 때 2차적으로 유언비어 유포조, 무기고 탈취조, APC 장갑이라는 것은 광주에 소유되어 있던 방산업체에서 생산한 시제품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제품을 만들어서 군에 납품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시제품.

 

김어준 : , 시제품에 불과한 것이요?

 

허장환 : 시제품인데 그걸, 기능이 달리되는 그 시제품을 조작할 수 있는 시민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김어준 : 그렇죠. 완전히 새로 나온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딱 와닿네요.

 

허장환 : 그런데 공수부대원들의 임무가 모든 적성국가의 무기나 또는 장비, 이런 것을 조작하는 만능자들입니다. 맥가이버들입니다, 그들은. 그리고 임무 중 하나가 적 후방에 투입돼서 적 후방을 교란시키고, 적 지휘부를 타격하는 그런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 공수부대의 평상 업무입니다. 훈련도 그렇게 하고. 그런 가운데서 각 조 임무를 달리해서, 예를 들어서 넝마 복장을 한 사람이 무슨 차원 높은 공작을 펼치면 시민들이 눈치를 챌 거 아닙니까? 넝마 복장을 한 사람은 넝마 복장을 한 사람답게 자기 임무를 수행을 하고.

 

김어준 : 유언비어를 펼친다든가.

 

허장환 : 이런 식으로 조를 편성해서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그런 역할들을 다 분담시켰습니다.

 

김어준 : 그렇게 해서 더,

 

허장환 : 가열화시키고.

 

김어준 : 그렇죠. 폭력적으로 만들어서 진압의 명분을 만들고.

 

허장환 : 그리고 한편으로 진압군은 잔혹하게 진압을 하고. 제가 그 데모 양상을 그 당시에 광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 관광호텔입니다. 거기에 제 비인가 사무실이 있었는데 거기에 주로 상주를 많이 했습니다. 거기 옥상에서 보면 참 이상한 현상이다. 이렇게 가열화 되게 되면 공수부대원들이, 진압군들이 빠져나갑니다.

 

김어준 : , 오히려?

 

허장환 : 또 그럼 강압 진압을 하고. 그러면 그 흥분된 분위기가 고조되면 또 빠져나가고 이런 식의 진압을 하고 있는 양상이고.

 

김어준 : , 계속 흥분시키기 위해서 들어갔다 나왔다.

 

허장환 : 참 이상한 방법으로 쟤들이 데모 진압을 하는 구나, 하고 어렴풋이 제가 그때 느꼈는데 그 실무, 시나리오에 참석을 하면서 확연하게 알았죠.

 

김어준 : 그냥 처음에 볼 때까지만 해도 이상하다고만 했는데,

 

허장환 : 초기에.

 

김어준 : 초기에는. 그런데 그 시나리오에 직접 참여하게 되면서 이게 다 시나리오라는 걸 확실하게?

 

허장환 : , 맞습니다.

 

김어준 : 본인도 그 시나리오에 참여하셨으니까, 나중에는 또.

 

허장환 : ,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그때 제 직책이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 상급자들이 그때는 초기에는 저한테 조금 감추다가 나중에는 제가 거기 참여를 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전체적으로 윤곽을 취득하게 됐죠.

 

김어준 : 이건 그냥 들은 이야기가 아니네요. 허 선생님은 그냥,

 

허장환 : 들었다 카더라가 아닙니다.

 

김어준 : 카더라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참여하셨으니까.

 

허장환 : 맞습니다.

 

김어준 : 미군도 당시 이런 시나리오 정황들을 다 파악하고 있었습니까?

 

김용장 : 미군에서도, 특히 미 국무성에 보낸 보고서를 보면 이미 알았어요.

 

김어준 : , 미군도.

 

김용장 : 그래서 그 기록들이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보고서들이. 제가 알기로는 약 40건을 JTBC 봉지욱 기자가 발견했다고 해요.

 

김어준 : 그런 관련?

 

김용장 : ,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그게 비밀이 안 됩니다. 40.

 

김어준 : 미국도 5·18이라는 것은 당시 신군부가 김대중 야당 총재를 제거하고 정권을 찬탈하려는 데 꼭 필요했던 시나리오로 여겼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는 거네요?

 

김용장 : 그러니까 시나리오라기보다도 그 진행 과정을 그분들도 세밀하게 검토하고 그러니까. 그 과정들이 다시 말하면 시나리오거든요. 간접적인 표현으로 하면. 허장환 씨가 말하는 것은 시나리오고, 미국에서 볼 때는 진행 과정을 보면 ', 이거 시나리오구나.' 그걸 알았어요.

 

김어준 : 실제로 투입된 편의대도 보셨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김용장 : , 봤습니다.

 

김어준 : 선생님은 직접 보신 거 아닙니까? 그렇죠?

 

김용장 : .

 

김어준 : 넝마를 입은 그런 사람들?

 

김용장 : , 맞습니다. 19일인가 20일인가 아마 날짜는 하루 정도 오차가 있습니다만 C-130으로, 수송기로 30명 내지 40명이 왔는데요. 이미 그 사람들이 격납고에 들어갔고. 그런데 우연찮게 제가 30~40m 거리에서 두 사람이 밖에 나온 것을 봤어요. 한 사람은 나이가 한 30대 초반, 머리는 옆머리를 짧게 자른 것.

 

김어준 : 스포츠.

 

김용장 : . 얼굴은 새까맣고, 옷도 넝마, 아주 허름한 옷. 그것을 입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이미 가발을 쓰고 있었고. 가발이 아주 어울리지 않는 가발. 굉장히 우리 김어준 씨 머리처럼 그렇게 큰 걸 썼어요.

 

김어준 : 저는 가발이 아닌데 머리가 그냥 큰 겁니다.

 

김용장 : 김어준 공장장님 머리는 그야말로 오리지날인데 그 사람들이 쓰는 가발이,

 

김어준 : 보자마자 가발이라고?

 

김용장 : 그렇게 보여요, 30-40m 밖에서는. 그래서 '참 이상하다. 저 사람들이 왜 저기 가 있지?'

 

김어준 : 왜 저런 복장을 하고 있을까.

 

김용장 : . 그 사람들이 편의대인 것을 보고를 했습니다. 바로 보고했고, 하는 역할을 몰랐어요. 저 사람들이 광주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죠.

 

김어준 : 군이 틀림없이 위장을 했는데 무얼 하려고 저렇게 하는지 처음에는 모르셨다?

 

김용장 : , 몰랐죠. 그러니까 보고서에 몇 줄만 적었습니다. "편의대가 왔다." 이것만 적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사람들이 공작 활동을 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허장환 : 그 당시에 반군부 세력들은, 저는 신군부라고 하지 않습니다. 반군부라고 그러는데, 그 반군부 세력들은 처음에는 강압 진압을 하고 이렇게 하면 광주 시민들이 흥분해서 자기들의 뜻대로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조작 시나리오를 좀 각색을 달리하는, 방법을 달리하는.

 

김어준 : 처음에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흥분할 줄 알았는데, 광주가?

 

허장환 :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거기에 참여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김어준 : 초반에는.

 

허장환 : 점점 도수를 더해 가는 그런 과정에서 제 직무상 자연히 거기에 접하게 되는 것을 우려해서 저를 같이 참여를 시켰는데,

 

김어준 : 어쩔 수 없이 알게 될 테니.

 

허장환 : 그 기점이 도청에서 발생된 독침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어준 : 독침 사건이요?

 

허장환 : . 저희 대공수사관들은 독침이라고 하면,

 

김어준 : 간첩이죠.

 

허장환 : 북계 대남 공작원들이 사용하는 살상 무기라는 걸 단번에 압니다. 그래서 수사관들이 출동해야 된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지만 북계가 침투했다는 흔적이 있으면 이건 용납되지 않는다고 출동 태세를 갖추려고 하는 찰나에 수사부국장이 "출동하지 마라. 이미 타 기관에서 체포했다." 이렇게 해서 그때,

 

김어준 : 독침 사건도 조작 사건입니까, 그럼?

 

허장환 : 와중 속에 저희 수사관들이 그걸 잊어버렸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사과장이 저를 개인적으로 불러서 데리고 온 동행자를 소개를 하면서 독침 사건의 주범들을 저한테 신변보호를 요청을 했습니다. 그날부로 제가 ', 이게 시나리오의 완벽한,'

 

김어준 : , 독침 사건도 시나리오였군요. 그러니까 북한에서 침투했다는 걸 만들어 내기 위해서 독침 사건이 없는데 만들어 낸 거군요.

 

허장환 : 그 사건 이후로 선무공작의 총 지휘를 맡은 보안사령부의 홍성률 대령이 저하고 다시 말해서 디스커싱(Discussing), 시나리오의 디스커싱을,

 

김어준 : 어떻게 더 이걸 더 폭력적으로 만들어 나갈까.

 

허장환 : 제 아이디어를 요구도 하고, 어떤 것을 가미하면 좋겠느냐,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어떻다, 이런 걸 저하고 상세하게 디스커싱을 했습니다.

 

김어준 :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텐데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극렬하면 만들 것인지,

 

허장환 : 자기들이 구상했던 시나리오대로 광주 시민들이 움직여 주지 않으니까,

 

김어준 : 너무 평화로우니까.

 

허장환 : 무기도 반납을 하고, 시민들이 스스로. 무장을 했던 시민들이 무기도 스스로 반납하고 한 건의 우발적인, 폐륜적인 사건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좀 도시가 그냥 진흙탕이 돼야 되는데 평화롭게 민주적으로 자기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니까 이건 아니다 싶어서 더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싶은 의도에서 시나리오가 가열화된 겁니다. 다른 섹션이 가미가 되고.

 

김어준 : 질서를 유지하러 간 게 아니라 질서를 파괴하러 간 거네요, 계엄군이.

 

허장환 : 결론적으로 그렇죠. 그래서 더 극대화를 시켜야 이게 국란이다. 그래서 국란을 극복하는 전두환 장군이다, 이런 명분을 확립하기 위해서.

 

김어준 : 국란의 중심에는 김대중이 있고.

 

허장환 : 그렇죠. 그런 식으로 몰고 가기 위한 수순에서 자기들의 작전이 삐거덕거리니까, 의도된 대로 가지 않으니까 더 가열화시키기 위해서 시나리오의 각본을 더 강하게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무기고 탈취, 편의대 운영 이런 것들이 진행이 된 겁니다.

 

김어준 : 그러면 그 대목에서 저희가 잠깐 교통 상황을 들어야 되는데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그렇게 자극하기 위한 것 중에 혹시 최근에 당시 계엄군 병사로 투입됐던, 지금은 목사인 한 분이 최근에 증언을 했습니다. 성폭력이 있었는데 그게 거의 19일 날 다 발생했다는 거예요. 이상하죠, 특정한 날짜에 다 몰려 있다는 게. 그런데 당시 병사로 있었기 때문에, 본인이. 성폭력도 519일이라는 날짜에 집중적으로 발생됐다. 그런데 지금 말씀 듣다 보니까 이것도 일부러 그렇게 그런 기획도 있지 않았을까?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긴 한데 성폭력도 의도된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더 자극하기 위해서. 그런 추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용장 : 저는 그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요. 성폭력에 관한 보고는 분명히 했습니다. 길게는 않고 한 서너 줄. 팩트만. 공수부대 요원들에 의해서 광주 젊은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했다. 이렇게 간단히만 보고서를 올렸지,

 

김어준 : 일어난 건 팩트고.

 

김용장 :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제 보고서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김어준 : 어떻게 보십니까? 이 대목은. 그때는 물론 시나리오에 참여하기 전이시긴 한데 나중에 직접 시나리오에 참여하고 나서는 그럴 개연성도 있는 거 아닙니까? 지금 되돌아보니까 그런 생각도 드는데요.

 

허장환 : 그 당시에 우리 공수특전단들의 부대 지휘하는 양상이나 투입병들의 오만방자한 태도는 점령군이 점령지에 들어가서 마음껏 만행을 저지르는 그런 기분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이해가 곤란하시겠지만 병사 개개인 스스로도 그런 자가당착적인 망상에 빠져서 자기가 어떤 행위를 자행하는지도 모르고 그때 그 분위기에 젖어서 전쟁을 하면 예를 들어서 항복지, 점령지에 들어가서 부리는 만행, 이런 것들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가 그것이 아니었나 생각을 하는데. 제 관점으로는 그것이 명령으로 하달된 것은 아니고 자가발생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음껏 해도 좋다, 마음대로 해라,

 

김어준 : 하라고는 안 했지만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허장환 :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설마 여성들을 상대로, 자국민을 상대로 성폭행을 해도 좋다고 누가 허가를 했겠습니까?

 

김어준 : 저도 당연히 상상할 수 없는데 지금 자국민을 죽이는 것도 계획을 했다고 하니.

 

허장환 : 제가 분노하는 것은 2차대전 당시에 히틀러가 아이히만을 시켜서 유태인 600만을 학살하는 것은 이방인입니다, 서로간에. 그런데 광주민들은 우리가 같은 국민이고 병력의 의무를 다하고 세금을 내는 자국민입니다. 그 자국민을 그것도 백주에 살상을 했다? 최신 무기로 살상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짓입니다.

 

김어준 : 여기까지 듣고 저희가 잠시, , 그렇군요. 저희가 이 인터뷰 맥이 끊어질까 봐 마지막으로 옮기겠습니다, 캠페인을. 성폭력에 관해서는 직접 지시를 했을까 싶으시고, 다만 그래도 무방하다는 분위기는 당시 군에 있었다?

 

허장환 : 개개인의 인성을, 전투시에는 그렇습니다. 사병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지휘관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병들이 조금 일탈된 행동을 하더라도 방관을 해야지 기를 꺾어 버리면 전투력이 저하됩니다. 그런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김어준 : 여기는 점령지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니까 군인들이 자국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막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하긴 총으로 쏴서 죽이기까지 했으니까요.

 

김용장 : 일종의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당시 분위기가.

 

김어준 :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그때 분위기가 그랬다는 거죠?

 

허장환 :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고,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김어준 : 이 대목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게 열흘간의 작전인데 5·18 시작해서 527일 날 마무리가 됐으니까요. 전남도청을 기점으로 해서. 그런데 39년간이고 그동안 많은 정권이 지나갔고, 사실은 88년에 청문회라든가 이런 시도들이 많았습니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그때 허 선생님께서도 그때 나와서 홀로 증언을 하셨지만 지금처럼 김 선생님의 백업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이야기하시다가 책도 쓰셨어요, 사실은. 그런데 오히려 거꾸로 그 일로 굉장히 큰 곤욕을 치렀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허장환 : , 맞습니다.

 

김어준 : 최근까지도.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그냥 산 속에 들어가다시피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그런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어떻게 다 밝혀지지 않았을까. 나중에 문서도 나오고 할 텐데. 그런데 그 답을 주셨어요. 511 연구회라는 게 5·18이 끝난 다음에 당시 전두환 신군부에서 만들어져서 자기들이 했던 일을 막 지웠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이게 언제 만들어졌고 누가 참여했고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허장환 : 511 연구회라는 것은 그 후에 붙여진 명칭이고 처음에는 511 분석대책반입니다. 분석대책반은 광주를 평정하고 난 직후에 현지인 505보안부대 단위로 자신들이 한 업적을 평가하고 분석하고 통계를 내기 위해서 505전사라는 책자도 만들어 내고 사망자가 몇 명, 부상자가 몇 명, 또 우리 아군 피해가 얼마, 실탄 소요 만발이 몇만 발 이런 식의 통계적인 문제, 이런 것에 처음에는 접근을 하고 그런 의도였는데 하다 보니까 이것이 나중에 혹시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후세인들이 봤을 때 심각한 문제가 발견이 되다 보니까 좀 변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그분들이 느꼈습니다.

 

김어준 : 기록을 조작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허장환 : . 그래서 505보안부대의 영향만으로 안 될 것이라는 것이 사령부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령부 단위로 진행되다가 보안사령부 단위로 진행되기는 너무 큰 사건이다, 이게.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에 관한 사항이 많이 나오니까 이건 전문적인 용어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한다.

 

김어준 : 변호사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허장환 : 그렇죠. 법조인들의 법리적인 해석이 후세에 필요할 것 같다.

 

김어준 : 나중에 법정에 갔을 때 혹은 법적 권한을 따질 때 아무래도 변호사가 처음부터 개입해서 그걸 조정해야 된다?

 

허장환 : 그런 와중에 50청문회가 시작이 되니까 그 필요성이 더 절실히 요구됐습니다. 그래서 그때 511 연구단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각계의 전문인들이 그 단체에 영입이 됩니다, 그 조직에. 그래서 상당한 비밀 조직이었지만 청와대 그 당시 민정수석을 했던 이학봉 씨 주관으로 그분이 총괄 지휘를 하면서 거대한 조직으로,

 

김어준 : 자기들의 죄를 다 지운 거네요, 한마디로.

 

허장환 : 그렇죠. 그게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해당될 정도로 크게, 광주 문제에 관한 문건이라면 전부 비밀 표시를 해서 비밀 등급으로 분류해서 일반인들은 접근 못하게 해 버리고.

 

김어준 : 당시 전두환 사령관 이름이 등장하면 다 지워 버린다든가.

 

허장환 : 그렇죠. 제가 퇴직 후에 광주 문제를 언급하는 원고가 유출돼서 보안사 수사분실에 연행이 됐었는데 저를 취조하던 수사관이 저한테 "네가 어느 선까지 알고 있느냐, 광주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광주 문제에 관한 모든 문헌을 삭제를 하고 있는데, 또 대통령이 한 번 더 위임을 하려고 하는 마당에 왜 네가 나와서 설치느냐?"

 

김어준 : 대통령 한 번 더 하려고 하는데, 전두환 씨가. 네가 여기서 나오면 어떻게 해, 이런 말이네요.

 

허장환 : 그렇죠.

 

김어준 : 그러니까 그때 대통령 한 번 더 하려고 했던 거네요?

 

허장환 : 수사관이 분명히 저한테 그렇게 이야기했고 그 당시 정서적인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외부적으로 노출은 안됐습니다만 그때 친위적인 역할을 한 각 기관이나 동조 세력들은 그런 각오로 또 한 번 더 하시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방해 세력이다." 그 무렵에 제가 최초부터 분석대책반이 구성될 때부터 제가 그런 기구가 발족이 됐다는 걸 다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김어준 : 당시에는, 사람들이.

 

허장환 : 그래서 511 연구단이 광주문제를 희석을 했고 두 번째로 정치적 배경이 광주 문제를 덮은 거 아니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어준 : 그렇게 당사자들, 일당들은 스스로 지웠고 그리고 나서는 정치적 이유로 해서 이때까지 왔다. 그런데 지금이 기회다. 이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셔서 직접 나서신 거 아닙니까? 그렇죠?

 

허장환 : .

 

김어준 : 저희가 30여 초밖에 안 남았는데 김 선생님께 한 가지만 짧게 말씀드릴게요. 미국은 이게 다 전두환 당시 신군부가 정권을 잡기 위한 거라는 걸 알고 있었죠?

 

김용장 : , 알고 있었습니다.

 

김어준 : 마지막으로 두 분이 혹시, 39주기인데, 이틀 후면. 광주 시민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 혹시 있으시면 짧게.

 

허장환 : 광주 시민들에게 드리는 말씀도 있고,

 

김어준 : 시간이 다 되어 버렸네요.

 

허장환 : 현 정부에 제가 바라는 것은 현 정부는 빚이 없는 정부입니다. 이 정부만이 지금 우리가 국치가 없는 상태니까 이 광주 정신을 헌법에 유입을 시켜서 헌법정신으로, 저희 민족들이 앞으로 나가야 될 민족정신으로 지정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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