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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21(화) 김용장 전 미군 군사정보관 & 허장환 전 보안대 특명부장과의 인터뷰
작성자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록일 2019-05-21 10:37:21
분류 기타 조회수 435

* 내용 인용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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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2공장]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학살과 은폐 시나리오의 전말 2!

- 김용장 씨 (당시 미군 501정보여단 군사정보관)

- 허장환 씨 (당시 보안사 505보안대 특명부장)

 

김어준 : 지난주에 미 육군501 정보여단의 군사정보관 김용장 선생님과 보안사령부 505보안대 특명부장 허장환 선생님 모시고 충격적인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날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어서 두 분을 다시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용장 : 안녕하십니까.

 

허장환 : 안녕하십니까.

 

김어준 : 그 사이에 지난 토요일 5·18 39주년 추모식에 참석하셨죠, 두 분 모두?

 

김용장 : , 참석했습니다.

 

김어준 : 특히 김용장 선생님은 그 이후에 광주를 처음 가신 거 아닙니까?

 

김용장 : , 그렇습니다.

 

김어준 : , 그렇군요. 39년 만에 처음 가신 거군요.

 

김용장 : .

 

김어준 :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김용장 : , 남달랐습니다.

 

김어준 : 유가족들도 만나 보셨죠?

 

김용장 : 많이 만났습니다.

 

김어준 : 그분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김용장 : 제가 이렇게 말하면 자화자찬이 될까 봐 좀 어렵네요. 그러나 그분들 말을 빌리면 "당신은 영웅이다." 라고 이렇게 말을 해 주셨어요. 그래서 "왜 내가 영웅입니까? 나는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라고, "당신이 우리 마음을 정말로 위로해 줬고 우리들이 하지 못한 일을 당신이 해 줬고 또 당신을 통해서 많은 진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말씀들을 하시더라고요.

 

김어준 : 큰 계기가 됐죠. 선생님이 JTBC 인터뷰를 한 게 정말 큰 계기가 됐고요. 그때 지난 3월에 5·18 당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방문했다, 여기서부터 모든 게 출발했거든요, 사실.

 

김용장 : .

 

김어준 : 허 선생님도 같이 참석하셨잖습니까?

 

허장환 : .

 

김어준 : 국내에 계시긴 하셨는데 지난 39년간 광주를 여러 번 방문하셨어요? 아니면,

 

김용장 : 아닙니다. 제가 이번까지 딱 세 번을 광주를. 공식적으로 여러분들이 초청해서 간 건 이번이 처음이고.

 

김어준 : 그 전에 개인적으로 가셨던 게 두 번 정도?

 

허장환 : 두 번을 제가 개인적으로. 다른 일도 좀 있고 해서 갔었는데, 두 번은 낮에는 제가 못 가고 밤에 망월묘지를 방문을 했었습니다.

 

김어준 : 개인적으로 몰래?

 

허장환 : .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제도 그런 경우를 제가 보고 참 신기한 현상이다 했는데 어제도 광주에 비가 많이 왔습니다, 행사 때. 행사가 막 시작을 하려니까 거짓말같이 비가 딱 그치는 걸 보고 참 기이한 현상이다. 제가 방문을 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맑은 하늘이 뜨더라고요. 이상하게 방문을 하면 비가 오고 그랬어요.

 

김어준 : 두 분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증언을 하고 방송도 나오시고 하는 걸 가족들은 걱정을 안 합니까? 김용장 선생님은 부인이 한국을 못 가게 하셨잖아요, 한국을.

 

김용장 : , 그렇습니다.

 

김어준 : 지금은 뭐라고 하세요?

 

김용장 : 제가 우리 집사람한테 전화를 안 하고 왔어요.

 

김어준 : 못 가게 하니까.

 

김용장 : 걱정이 돼서 못 가게 하니까 아예 이번에는 전화도 안 하고 혼자 허장환 씨랑,

 

김어준 : 그러면 사모님이 한국 TV를 통해서 간 사실을 알게 되신 거예요?

 

김용장 : 그렇죠. 한국 들어가면 큰일 난다.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

 

김어준 : 돌아가시면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이제?

 

김용장 : 이제 그렇게 됐죠.

 

김어준 : 지금은 뭐라고 하세요?

 

김용장 : 이제 돌아가면 호주에 있는 우리 집사람한테 전화를 해야겠어요. 그러니까 사후 승인.

 

김어준 : 자녀분들도 뭐라고 안 하세요?

 

김용장 : 우리 아들은 뉴질랜드에 있어요.

 

김어준 : 다 흩어져 사시는군요.

 

김용장 : 뉴질랜드에 있는데 "아빠 정말 감사해요. 아빠 큰 용단을 내렸습니다. 아빠를 존경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마음이 좀 울컥하더라고요, 그 말 듣고 보니까.

 

김어준 : 사모님한테 혼날 일만 남으셨군요.

 

김용장 : 그러니까 이제 우리 집사람은 제 신변을 생각하죠. 지금 나이가 많은데 걱정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김어준 : 허 선생님은 국내에 계속 계셨는데, 더구나 지난 88년에 양심선언을 했다가 그 이후에 고초를 많이 당하신 걸로 제가 들었는데 이번에도 그럴까 봐 사모님이 뭐라고 안 그러세요?

 

허장환 : 김용장 씨는 이제서 나타나신 분이고 저는 39년 바로 직후부터 1년에 몇 번씩 이사를 해야 되고 가택 수색을 당해야 되고 또 조금씩 피해 있어야 되고 그런 경우를 왕왕 당해서.

 

김어준 : 그런데 88년 특히 양심선언하고 책까지 쓴 이후로는 더욱 그러셨을 거 아닙니까?

 

허장환 : 그때는 조금 만성화됐을 시기고 그전부터, 제가 보안사령부를 그만뒀을 때부터 이제는 만성이 돼서 한두 달 집 떠나 있는 것에 대해서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김어준 : 지금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선 것에 대해서는 사모님은 뭐라고 하세요?

 

허장환 : , 그때도 그랬으니까.

 

김어준 : 그때하고 또 양상이 다르지 않습니까? 지금은 아예 언론에 등장하셔서 계속 말씀 중이신데.

 

허장환 : "딱 한 가지만 내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라고 저한테 아침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당신 눈이 있으면 한번 봐라. 내가 손에 류마티스가 생길 정도로 당신 일평생 나한테 단돈 10원 한 장이라도 벌어 준 적 있냐." 그러면서 이 친구가 왜 이러나 할 정도로 숙연한 분위기를 만들더라고요. 그러더니 "과거에 독립운동을 하고 했던 그런 분들은 지금도 달동네에서 비참하게 자손들이 살고 있는데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들은 호가호위를 하고 살고 있지 않느냐."

 

김어준 : 사모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허장환 : . "그걸 조금 유념을 하세요."

 

김어준 : 돌려서 그렇게 때리셨군요.

 

허장환 : . 참 미안했습니다.

 

김어준 : 지금은 그래도 조금 생각이 바뀌지 않으셨습니까?

 

허장환 : 어제 저녁에 제가 최초로 피지 갔다 와서부터 집에 한 번을 못 들어갔습니다.

 

김어준 : , 그러세요?

 

허장환 : , 우리 김용장 선생님 모셔 오고.

 

김어준 : 불성실한 가장이네요.

 

허장환 : 그리고 저녁에 최초로 전화를 살며시.

 

김어준 : 혼날까 안 혼날까 생각하며.

 

허장환 : 조심스럽게 전화를 했더니 "이제는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이야기해라. 우리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참다운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답게 사는 거다 하는 것을 당신 스스로가 알지 않느냐."

 

김어준 : 허 선생님을 조종한 게 사모님 아닙니까?

 

허장환 : 원격 조정을 좀 했죠.

 

김어준 : 비겁하게 살지 말라, 이런 이야기를 하신 것 같은데.

 

허장환 : 그런 숨은 공로가 그런 의지와 남다른 생각이 저를 주눅 들지 않게 했습니다.

 

김어준 : 지난 30여 년간 이 일로 인해서 돈을 못 벌어다 준 것은 맞나 보네요.

 

허장환 :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김어준 : 그럴 경우에 보통 다가와서 회유도 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우리 편으로 다시 돌아와, 이런 회유는 없었습니까?

 

허장환 : 모처로부터?

 

김어준 : , 모처로부터.

 

허장환 : 제가 얼마 전에 국회 회견이 끝나고 끝을 맺으려고 했더니 어느 기자분이 마지막 질문이라고 하면서 저한테 질문을 하셨습니다. 방금 똑같은 그, 어려움이 어떤 것이 어려움이 있느냐. 그래서 제가 원고에 있는 내용도 아니고 제가 평소에 생각해 둔 바도 아닌데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울먹이는 마음으로 제가 이 이야기를 한 바가 있습니다. 제가 한 장의 연탄에, 한 줌의 밀가루에 참 눈물 짓던 그런 순간이 수시로 있었습니다.

 

김어준 : 가난 때문에.

 

허장환 : 그때마다 용하게 그 타이밍을 맞춰서 511연구단이라든가 이런 데서,

 

김어준 : 511연구단은 소위 5·18을 감추기 위해서 보안사령부에서

 

허장환 : 그 사람들이 그것도 하면서 전직 부대원들의 일탈 행위, 자기들 말로는 배신이죠.

 

김어준 : 선생님 배신자 아닙니까, 그들에게는.

 

허장환 : , 저 나갈랍니다.

 

김어준 : 그래서 와서 뭐라고 합니까?

 

허장환 : 그때마다 달콤한 솜사탕을 저한테 흔듭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제 이름이 원래 아명이 '허두일' 입니다. 그런데 가친께서 이름이 너무 기가 세다, 이래서 장할 장, 빛날 환 자로 이름을 개명을 했습니다.

 

김어준 : 선생님, 좀 짧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허장환 : 그런데 별로 약효가 없으신 것 같아요.

 

김어준 : 어쨌든 달콤한 솜사탕이라는 게 결국 돈 아닙니까? 그렇죠?

 

허장환 : 무슨 자리를 제공하겠다 그런 것도 있었고.

 

김어준 : 김 선생님은 워낙 아무 말도 안 하셔서 그런 제안도 없으셨겠어요.

 

김용장 : 저는 그런 거 없었습니다.

 

김어준 : , 이 사람은 조용히 있는구나 싶으니까.

 

허장환 : 중요하게 생각 안 했죠.

 

김어준 : 제가 모신 이유 중 하나는 지난번에 오셨을 때 광주는 시나리오라는 이야기를 하셔서 그 대목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는데 추가적으로 또 여쭤보고 싶은 게 광주가 시나리오라는 관점에서 사전에 알고 있었다, 소위. 보안사령부는 당연히 기획했으니까 알고 있었겠죠. 뿐만 아니라 미군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전에 광주가 기획되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광주를 타겟으로 하여 그런 일을 벌일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 관련해서 5·18 직전에 광주에 거처하는 미국 시민권자들을 다 빼냈다, 광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요?

 

허장환 : . 제가 그런 임무를 지시를 받고,

 

김어준 : 어디서부터 지시를 받으신 겁니까?

 

허장환 : 제 상급자한테.

 

김어준 : , 보안사령부로부터.

 

허장환 : . 그래서 빨리 소개를 시켜라.

 

김어준 : 광주 내 미국 시민권자들은 다 빼내라, 광주에서 소개해라?

 

허장환 :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고 외국인들은 전부 다.

 

김어준 : , 그래요? 미국 시민권자를 포함해서?

 

허장환 : 그분들을 위한 선처의 마음도 있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분들이 그런 참상을 보고 나중에 본고로 돌아갔을 때 이것이 파급되지 않겠냐 하는 그런 염려도 있었고.

 

김어준 : 국제적인 문제가 된다든가 그런 것도 있었겠죠.

 

허장환 : . 그래서 그 선교사들이라든가 미문화원 또는 종교인들, 이런 분들을 빨리 소개시켜라, 안전 지대로.

 

김어준 : 이게 그러니까 5·18이 일어나기 전의 이야기 아닙니까?

 

허장환 : 전에 지시가 됐는데 전에는 저희들이 예비 검속자 검거 때문에 바빠서 그 후로, 17일 후로.

 

김어준 : , 실제 명령은 그전에 내려졌고?

 

허장환 : , .

 

김어준 : 그러면 궁금한 대목이 이겁니다. 그때 왜 여러 도시를 검토하다가 광주가 선정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김용장 : , 그렇습니다.

 

김어준 : 그런데 당시 계엄령 상황이니까 다른 도시에서도 이런 불안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다른 도시에서도 다 이렇게 외국 시민권자들을 빼냈느냐, 아니면 광주만 빼냈느냐를 보면 광주를 처음부터 타겟으로 한 것이 맞는 것이다, 이렇게 역으로 검증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광주에서만 있었나요?

 

허장환 : 부마사태니 여러 상황들이 혼란한 시기가 있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그런 사례가 광주가 처음입니다.

 

김어준 : 광주만.

 

김용장 : 미국은 소개 계획이 있어요, 대피 계획이. 큰 사건들이 나오면 미국 시민권자들을 광주 같은 경우는 광주 K57에 있는 미군부대가 있잖아요. 그쪽으로 전부 소개를 하고 거기서 비행기로 오키나와로 소개하는 계획이 그전부터 있었습니다.

 

김어준 : 원래 있었다.

 

김용장 : . 5·18 당시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소개 계획이 있어요. 그런데 5·18 당시에는 제가 기억하기로는 사전이 아니고 5월 한 22일경으로 기억을 해요.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때 광주에 미국 시민권자들이 약 25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민간인들은 전남대학교 교수 한 분인가 있었고, USIS 미문화원장이 있었고, 또 그 외에는 전부 다 선교사들이었어요.

 

김어준 : 몰몬교 선교사들이 그때 있었다고.

 

김용장 : 그런데 그 속에는 기독교 병원의 치과 의사로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투이 씨라고. 저는 개인적으로도 알아요. 그 부인이 마샤 한투이고. 또 다른 두 분이 계셔요, 부부가. 그 외에는 선교사들인데 25일경에 몰몬교 선교사 12명이 금남로 4가 정도에 거기 교회가 있습니다. 걸어서 서창 검문소까지 왔어요. 12km 정도 될 겁니다.

 

김어준 : 12km를 걸어서.

 

김용장 : . 그래서 이제 우리 사무실에서,

 

김어준 : 미군 사무실에서?

 

김용장 : 우리 사무실에서.

 

김어준 : 그러니까 정보여단 사무실인 거죠?

 

김용장 : . 그때 노바라고 8기통짜리 아주 큰 세단이 있었어요. 두 번,

 

김어준 : 나눠서.

 

김용장 : . 한 번에 한 16명씩, 그러니까 아주 거기에다가 빽빽하게 탔죠. 두 번 왕래해서 그분들을 소개시킨 적이 있어요.

 

김어준 : 두 분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보안사에서 내려왔던 건 사전에 내려왔고.

 

허장환 : 제 기억으로는 사전에 그때 내려왔을 때는 소개의 목적이 아니고 그때 문서상의 제가 기억하는 것은 '외국인들로부터 광주에 관한 걸 차단시켜라' 이렇게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김어준 : 그리고 나서 이 사태가 점점 커지자 완전히 소개하는 것으로.

 

허장환 : .

 

김어준 : 그러니까 광주에서 이렇게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적어도 보안사령부에서는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허장환 : 당연하죠.

 

김어준 : 시나리오라고 하셨으니까. 그런데 그중 한 사례로 미국 시민권자라고만 보도됐는데 실제로는 외국 시민권자들.

 

허장환 : 외국인 형상을 갖춘 외모가 다른 사람은 무조건 차에 태워서.

 

김어준 :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보안사령부가. ... 혹시 밖으로 나와서 이 진상을 전하게 될까 봐. 그리고 또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다친다든가. 미국하고 외교적 마찰이 생긴다든가 그러면 나중에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건데 거기서 문제가 될까 봐 이런 사람들을 아예 빼내는. 두 분이 그때도 서로 존재를 알고 계셨습니까?

 

김용장 : 잘 알았죠.

 

허장환 : 그전부터 알았는데요.

 

김어준 : 그렇군요.

 

김용장 : 허장환 씨는 제 대학교 후배고 또 505보안부대에서 근무할 때 자주 연락을 하고.

 

김어준 : 서로 정보기관에 있다 보니까.

 

김용장 : .

 

김어준 : 그런데 제가 여쭤보는 이유 중 하나가 김용장 선생님의 존재에 대해서 언론에서는 선생님이 과연 이런 일을 했는가 의문을 품는 분도 있긴 있어요.

 

김용장 : 모르죠. 왜 모르냐 하면 거기에 사무실 있는 것 자체도 몰라요. 그렇게 우리는 비밀리에 근무했습니다.

 

김어준 : , 존재 자체가 문서상에 등장하지 않는다?

 

김용장 : 501정보여단 광주 사무실이 있는지 그 자체도 몰랐어요. 그렇게 비밀리에 우리는 일을 했습니다.

 

김어준 : 그래서 문서상에 잘 안 나온다고.

 

김용장 : 안 나오죠.

 

김어준 : 저분이 그때 근무하신 건 맞습니까?

 

허장환 : 제가 그 사무실에 놀러도 가고 그랬는데요.

 

김어준 :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거군요.

 

허장환 : .

 

김어준 : 이 대목에서, 미국 시민권자들을 소개했다는 대목에서 이 질문도 드려 볼게요. 미군, 더 크게는 미국이죠. 이런 작전을 미군 몰래 할 수 있습니까?

 

김용장 : 다 알죠. 모르게 할 수 없습니다. 다 압니다.

 

김어준 : 광주와 관련된 병력 이동이라든가 혹은 그런 계획을 갖고 있다는 걸 몰래 할 수가 없어요?

 

김용장 : 다 알죠. 단지 미국은 자기들 국익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고 당시 미 대사 글라이스틴은 많은 보고서가 신군부에 유리하게 했어요.

 

김어준 : , 당시 미 대사는,

 

김용장 : 글라스틴이.

 

김어준 : 신군부에게 유리하게 미국 본국에 보고를 했다?

 

김용장 : 그리고 신군부는 사전에 긴밀하게 보고하고 사후에 승인을 받고, 이런 것들이 곳곳 보고서에 나옵니다. 국방성으로 보낸 보고서뿐만 아니라 국무성에 보낸 보고서에 나와 있어요.

 

김어준 : 신군부가 모종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권력을 찬탈해 가는데 그 과정 전체에 대한 보고가 곳곳에 등장한다는 거죠?

 

김용장 : 그런데 저는 그걸 충분히 이해를 해요. 왜 이해를 하냐 하면 그 당시 카터 대통령이 한 대외 정책은 도덕주의, 인권중시주의, 이런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결국 그 도덕주의나 인권을 중시하는 정책이 안보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했어요. 안보. 우리 한국은 안보가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김어준 : 미국의 관점에서는 한반도는 안보의 관점에서 보지.

 

김용장 : 그런데 바로 그 직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냐 하면 이란이 넘어갔단 말이죠.

 

김어준 : 호메이니 정권 등장하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김용장 : 그렇죠. 아마 거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예요, 카터 대통령이.

 

김어준 :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신군부가 등장해서 소위 쿠데타 과정을 거치지만 정권 찬탈 과정을 거치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 신군부가 미국 입장에서는 안보적인 측면에서 나쁠 게 없다 싶어서 그냥 사후 승인을 하고 묵인했다, 이런 말씀이신 거죠?

 

김용장 : 그렇습니다. 바로 그 말입니다.

 

김어준 : 보안사가 군을 움직이지 않습니까? 공수특전단을 비롯해서 20사단, 여러 사단을 움직이는데 여기서 미국이 승인해야 움직일 수 있는 부대도 있습니까?

 

허장환 : 우리 예비군하고 또 공수특전단하고는 한미 방위조약에서 제외되는 부대입니다.

 

김어준 : 거기부터 움직였죠.

 

허장환 : 미국의 승인이 없이도 병력 가동이 가능한 부대가 그 부대입니다.

 

김어준 : 그런데 한미연합사가 승인을 해야 되는 데도 있습니까?

 

허장환 : 일반 전투 부대는 다 그렇죠.

 

김어준 : 예를 들어서 20사단도 투입됐다고 하는데,

 

허장환 : 20사단은 당연히 한미연합사의 승인을 받아야 됩니다.

 

김어준 : 그러면 광주에 20사단이 투입됐다는 건 미국이 적어도 묵인하거나,

 

허장환 : 그런 문제 때문에 지금 이것이 언론이나 신문지상에 발표되지 않은 사항이고. 저희 그때 장군들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를 하는데 저희 관할 지역에 계시는 장군 한 분이, 오 모 장군이 행방이 갑자기 묘연해졌어요.

 

김어준 : 당시 보안사가 감찰하고 있는 상황에서?

 

허장환 : 505보안부대에서.

 

김어준 : , 보안부대에서? 장군 동향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연락이 안 된다, 갑자기.

 

허장환 : 체킹을 하는데 갑자기 이분이 사라지셨어요. 그래서 난리가 났죠. 저희 시야에서 사라졌으니까. 그래서 나중에 사령부에서 "여기 있으니까 찾지 마라. 소란 떨지 마라." 그런데 그분이 미국 측에, 그분이 영어를 잘하셨나 봐요. 그래서 미국 측에 그간 20사단 병력 이동에 관한 문제라든가 이런 것을 해명을 하기 위해서 미국 측에 차출이 돼서 올라가셨다, 그런 이야기를 나중에서 확인했습니다. 저희도 들었는데. 그럴 정도로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한미연합사의 동의도 없이 20사단 병력이 움직였고 그 병력 움직인 것에 대한 미국 측의 항의를 염려해서 우리 측 장성 한 분이 가서.

 

김어준 : 가서 해명을 했다? 사후 승인이네요, 이 경우는.

 

허장환 : , 그렇게 해서, 미국은 항상 안보와 인도, 이런 것이 쌍방으로 동시에 부각이 됐을 때,

 

김어준 : 인권 이야기 하다가 한편으로 전쟁하고 그러잖아요.

 

허장환 : 자기들의 안보를 택하지.

 

김어준 : 부딪힐 때는 자기들의 인권이 아니라 미국의 국익의 관점에서 선택하게 된다?

 

허장환 : 자기 국익을 택하지 인도, 안보. 안보를 우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상황이.

 

김어준 : 그러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당시 전두환 신군부에 대해서 미국은 그냥 승인한 거네요? 그러니까 그 승인을 전두환 당시 신군부도 알고 있었던 거고요. 그렇죠?

김용장 : 당연히 알죠.

 

김어준 : 미국이 우리를 밀어 주고 있다.

 

김용장 : , 그렇습니다.

 

김어준 : 그런 군부가 등장할 때 미국이, 미국은 소위 자유민주주의의 전파자고, 표면적으로는. 독재 정권을 반대하지 않습니까?

 

김용장 : 그게 대외 정책이죠.

 

김어준 : 대외 정책의 표면적인 기치인데,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그렇지가 않아요?

 

김용장 : 특히 우리나라 상황은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안보 위주 아니겠습니까?

 

김어준 : 민주주의가 좀 무너지더라도, 군인이 등장하더라도 미국 관점에서 거기 군만 안정된다면 사후 승인 하는 것이다.

 

김용장 : .

 

김어준 : 정권의 정당성이 좀 없다고 하더라도.

 

김용장 : 그렇습니다.

 

김어준 : 그게 실제로 쭉 지켜보신 미국의 대외 안보 정책이군요.

 

김용장 : .

 

김어준 : 사실 광주에 있던 분들은 당시 미군이 자신들을 구해 주러 올 거라는 생각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김용장 :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김어준 : 그런데 그건 뭐 어림도 없었던 거군요, 실제로는.

 

김용장 : 어림도 없습니다.

 

김어준 : 실제로는 미국의 승인을 받고 간 것과 마찬가지다.

 

허장환 : 실례로 저희 역사 속에서 제주 4.3 사건이라든가 여순반란 사건이라든가 이런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미국이 깊이 개입을 하는데, 그런 사례만 보더라도 안보우선주의지 인도주의는 그 상황 속에서는 약간,

 

김어준 : 평화로울 때. 미국 관점에서 안보가 위협받지 않을 때.

 

허장환 : 그걸 대외적인 면으로 보면 합리성이 있는 것 미국의 대외 정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광주 시민들의 그 당시 입장으로서는 상당히 섭섭하고 안타까운 현상이었죠.

 

김어준 :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죽었으니까요, 그때. 아무도 구해 주지 않고. 미국 잠수함이 와서 구해 준다, 이런 기대를 가졌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광주 시민들은.

 

허장환 : 우리 연안에 그 당시 미 항무가 접안을 했었습니다.

 

김어준 : , 실제로.

 

허장환 : 그러다 보니까 광주민들의 기대가, 상당히 많은 기대를 하고 그 당시 그런 여론도 저희들이 입수를 했습니다.

 

김어준 :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자국 군인이 와서 자기들한테 총을 쏘잖아요.

 

김용장 : 그렇죠.

 

김어준 : 그래서 처음에는 광주 시민들이 '이 사람들이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인가'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라고 하던데. 그런데 자국 군인들이 자기들을 쏘는데 구해 줄 사람들은 그럼 미국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죠, 그때 당시로는.

 

김용장 : .

 

허장환 : 당연한 생각을 그렇게 광주 시민들은 했겠죠.

 

김어준 : 그런데 그렇기는커녕 사실은 정반대로 이야기가 다 된 것이다. 이것도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사실관계에 대한 증언을 많이 하셨는데. 이건 의견입니다, 의견. 두 분이 적접 목격하거나 체험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당시 보안사에 계셨고 정보 관계에 계셨으니까. 어제도 보도가 있었는데 세월호 사고 직후에 기무사에서 계엄을 검토한 문건이 나왔어요. 이건 주장이 아니라 계엄 문건이 실제로 나왔습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게 반정부 시위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 조기 계엄을 검토해야 된다, 이런 문건이 처음으로 나왔어요. 그리고 또 탄핵 촛불집회 때 그때는 많이 보도됐지만 기무사에서 계엄 문건을 준비했다는 거 아닙니까? 이게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이해가 안 가거든요. 시민들이 나와서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걸 탱크를 투입해서 진압을 한다는 생각, 또는 선박 사고가 났는데 거기에 대해서 정부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걸 계엄을 선포해야 된다는 이런 발상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거든요. 그런데 기무사라는 게 결국은 과거에 몸 담고 계셨던 보안사령부고 군의 정보기관 아닙니까? 두 분 다 군의 정보기관에 계셨는데. 이걸 정보기관에 있는 그런 군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의견을 제가 여쭤보고 싶어요.

 

김용장 : 제 생각인데요. 그런 일은 기무사령부 임무 중 하나입니다. 그분들은 당연히 해야 될 일이고.

 

김어준 : 그분들이 보기에는 이 사람들이 반정부 세력이니까?

 

김용장 : 그렇습니다. 다만 준비를 하고 있다가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내리면 행동으로 옮기는. 기무사가 그래서 존재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김어준 : 그렇긴 한데 이게 그런 계엄 상황이라는 건 도저히 기존 치안으로, 뭐 경찰력이라든가 치안 유지가 안 된다든가 정말 과격한 시위로 정부의 기능이 마비됐다든가 그럴 때나 생각하는 거지 그냥 촛불 집회를 하는데 이걸 생각한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김용장 : 그러니까 항상 준비는 하고 있어야죠. 그걸 실행하느냐, 안 하느냐.

 

김어준 : 그렇긴 한데, 촛불집회를 그렇게 보는 시각에 대해서 궁금한 겁니다.

 

김용장 : 그러니까 그분들은 그 시각으로 보는 거예요.

 

김어준 : 촛불집회에 국민들이 나와서 정당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시위 자체를 싫어하는 거군요, 그러니까. 정부에 대해서 시위하는 것을. 특히 보수 정부에 대해서.

 

김용장 : 기무사령부 임무 중 하나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저는 그렇게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어준 : 그런데 그걸 좀 더 들여다보면 시민들이 자기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아무리 평화적으로 하더라도 군의 정보기관에 있는 일부에게는 그게 반정부로 보이고 이건 계엄으로라도 때려잡아야 된다, 이런 식으로 사고가 된다?

 

김용장 : .

 

김어준 : 더 자세히 아실 거 아니에요?

 

허장환 : 그런데 정부의 정보는 두 가지로 대별이 됩니다. 자연발생적으로 발생된 정보를 일선 정보관이 채집해서 위에 보고하는 정보가 있고, 정보의 최종 사용권자가 그 정보를 필요로 해서 이 정보를 발생시켜라 하고 지시하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두 건의 집회나 계엄 문건은 제가 봤을 때 정보의 사용권자가 필요로 했던 정보입니다.

 

김어준 : 이게 사용권자라는 건 당시 기무사령관입니까 아니면 더 위의 청와대입니까?

 

허장환 : 저희들은 항상 정보의 사용권자는 국가 최고 수반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입니다.

 

김어준 : 그러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시 이걸 필요로 하는 정황이 있었을 것이다. 일단 그걸 생각해야 되는 거네요?

 

허장환 : 정황이나 마나 정보사 우리 계엄 문건 자체를 어느 방송에서 저한테 보여 주더라고. 그런데 그 내용 자체가 일선 정보관이 채집를 해서 그런 스타일의 정보가 아니고 정보 사용권자가 필요해서 요구한, 생산하라 한 그런 정보에 의해서 된 건데. 방금 김용장 씨가 말씀하셨다시피 보안사는 국가 위기 상황 또는 북괴가 침투할 여지가 있는 그런 요소가 보이는 상황이 전개됐을 때는 그런 계엄 문건을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작성하는 게 아니라 그걸 예를 들어서 밑에 채집자가 생산해서 보고했다면 그건 쿠데타입니다. 그런데 최종 사용권자가 정보를 필요로 해서 이 정부에 대해서 분석해서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을 때는 쿠데타하고는 거리가 먼 겁니다.

 

김어준 : 그건 뭐 친위 쿠데타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허장환 : 그걸 엄격하게 구분을 해야 되는데 그 당시에는 보안사가 방금 김용장 씨가 말씀하셨다시피 국가의 위기 상황이라는 판단하에서 평소 보안사의 임무 중 하나지 제가 말씀드리기는 너무 예민한 부분이지만,

 

김어준 : 그럼 이렇게 두 분의 해석대로라면 당시 청와대가 촛불시위를 정부를 전복하려고 하는 시도로 간주하고 이게 군에 의해서 진압될 정도의 사안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 기무사한테 계엄 문건을 만들어 봐 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이죠?

 

허장환 : 그것도 일종의 시나리오다 그러면 계엄 문건을 사전에 작성했다는 것을 우리 민간 차원에서 바라보면 '사전 시나리오다' 이렇게 규정 지을 수 있는데 그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 국가의 통수권자가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만약의 경우에 군을 투입시켜라, 계엄을 적용시켜라 하는,

 

김어준 : 계엄을 한다면 어떻게 할 건지 미리 준비해 둬라.

 

허장환 : 명분 형성을 하기 위한 문건이 아니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어준 : 기무사 자체적으로 이걸 했다기보다 기무사에 그런 요청을 했고, 기무사는 그걸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거네요.

 

허장환 : .

 

김어준 : 그렇게 보여진다, 그때 당시 기무사에 안 계셨으니까.

 

허장환 : 그건 너무 예민한 부분이라서 코멘트를 좀 아끼겠습니다.

 

김어준 : 적어도 이건 확인할 수 있네요. 촛불을 든 시민을 어떻게 봤느냐.

 

김용장 : 그렇습니다.

 

허장환 : 다시 말해서 국가 누란의 위기가 닥쳐온다, 이렇게 판단을 한 문건입니다.

 

김어준 : '시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가 아니라 '나라를 뒤집으려고 하는 거구나' 이렇게 본 거네요.

 

허장환 : 국가를 참칭하고 일종의 내란 행위다, 이렇게 판단을 했겠죠.

 

김어준 : 시민들이 내란을 일으키니까 저거 군대 투입해서 막아야 되겠구만.

 

허장환 : 반정부 세력이 뒤에서 부채질을 하고 이런 무례한 집단이다.

 

김어준 : 이 틈을 타고 북이 개입할 수도 있다, 광주 때처럼. 그렇게 연결될 수도 있었겠네요, 사고방식은.

 

허장환 : 당연하죠.

 

김어준 : 이야. 큰일 날 뻔했네요. 소위 기무사의 계엄 문건이 보도되면서 이거 광주가 한번 더 있을 뻔했구나, 이런 생각도 하셨을 것 같아요. 광주를 직접 경험하신 분으로서.

 

김용장 : 그럴 가능성도 있죠.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김어준 : 직접 경험하신 분으로서.

 

허장환 : 그건 그 상황을 보고 '참 큰일 날 뻔했다. 잘못하면 광주보다 더 큰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이렇게 그 당시 제가 판단했습니다, 촛불집회에 대한 계엄 문건을 제가 보고는. 광주는 일부 병력들이, 공수특전단이나 데모를 진압하는 일부 병력들이 투입된 상황이고 이건 수도 서울에서 이루어진 상황입니다. 그러면 규모나 이런 작전 규모가 광주의 몇 배나 됩니다. 전투 병력이 투입이 돼도 시원찮을 정도로 촛불집회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는데 그걸 진압하는 과정에서의 불상사가 상당했겠구나. 그때 국제적인 시각이 그 계엄 문건을 실행 못 하는 상황은 미국 측에서, 제가 유추를 하는 겁니다만 이건 광주하고 다르다.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그래서 제어를 해서 디타임을 늦게 잡았지 않느냐.

 

김어준 : , 디타임을. 그러니까 기무사의,

 

허장환 : 계엄 문건에 의해서 액션에 들어가는 시간이 좀 지체되지 않겠나. 계엄 문건으로 봐서는 시급하게 군을 투입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내용이었습니다.

 

김어준 : , 그래요?

 

허장환 : .

 

김어준 : 그 문건대로라면 하시라도 투입될 수 있을 정도로 짜여졌던 겁니까, 내용이?

 

허장환 : 완벽한 계엄 문건입니다.

 

김어준 : 그러니까 선생님 판단은 계엄 문건과 당시 국내에 있었으니까 국내 상황을 종합해 보자면 작전 개시의 시점을 미루다 미루다 놓쳐 버린 것이지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셨다고요?

 

허장환 : .

 

김어준 : 으슬으슬한 내용이네요. 그랬을 수도 있다.

 

허장환 : 그렇죠.

 

김어준 : 그리고 탱크를 광화문에 보내고 국회 앞에 보내고 하는 구체적인 계획들이 있었잖아요. 실제 벌어졌다면 그게 다 투입됐겠네요. 탱크도 오고.

 

허장환 : 그건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김어준 : 알겠습니다. 하여튼 아찔했다. 김용장 선생님은 오늘 출국하십니까?

 

김용장 : , 오늘 출국합니다.

 

김어준 : 가시면 언제 오십니까?

 

김용장 : 이제 공장장님이 불러 주신다면 또 와야겠죠.

 

김어준 : 자주 모셔야겠네요. 다시 돌아오실 계획을 당장 잡고 있지는 않고요?

 

김용장 : 아직은 없습니다.

 

김어준 : 허 선생님은 어디 가시지 않죠?

 

허장환 : 저는 갈래도 갈 데가 없습니다.

 

김어준 : 오늘도 이야기를 다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듣고요. 그러면 허 선생님 어디 안 가시니까 허 선생님 저희가 앞으로 몇 번 더 모시고 모시다 모시다 허 선생님만으로 이야기가 빈다 싶으면 또 김 선생님을 다시.

 

허장환 : 제 개인적인 심정은 참담했던 39년 전의 일들을 다시 회상하고, 물론 그 당시 상황을 알려야겠다는 소명의식도 있지만 제가 이 순간은 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착잡한 심정이고 암울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이렇게 동서가 분열이 돼서 광주 문제를 갑론을박할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없어져야 됩니다. 서로 합의된 마음으로 동서가 화합되고 상처를 치유하고 밝힐 것은 밝히되 그 문제로 언제까지나 이렇게 국론이 분열되고 그런 참상이, 뭐 참상이라고 해야죠.

 

김어준 : . 40주년 추도식에는 이게 해결되고 추도식을 해야죠.

 

허장환 : 암담하다고 생각했는데, 40년 넘어서면 곤란한 현상이 아니냐.

 

김어준 : 그렇죠. 올해 돼야 됩니다.

 

허장환 : 그래서 하루빨리 통일이 되고 서로 화합하고 그런 계기가 되는, 다시 말해서 봉합해 버리는, 이제는 광주를 잊자. 그런 과정에서 서로 양보를 하고 서로 이해를 하고 지금같이 무슨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 이런 현상이 줄기차게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어준 : 알겠습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요. 저희가 약속 드리는데 두 분을 또 모실 겁니다. 피지에 오래 계시지는 못할 것이다, 말씀드립니다. 허장환 선생님, 그리고 김용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용장, 허장환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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