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서해성의 박학다설] 국군과 경찰의 기원

조주연

tbs3@naver.com

2018-04-0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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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 작가
서해성 작가
  •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8. 4. 6. (금)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 김종배 : 이 코너 기다리셨던 애청자 여러분들 많으시죠? 우리시대의 지식광대 서해성 작가와 함께 하는 박학다설 시간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 서해성 :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오늘 어떤 말씀해 주시겠어요?

    ▷ 서해성 : 우리 국군의 경찰의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 김종배 : 왜 국군과 경찰인지 저 감 잡았어요. 제주 4.3사건과 연관되어서?

    ▷ 서해성 : 그렇습니다. 대통령께서 4.3사건에 대해서 아주 적극적인 의사를 개진했지 않습니까? 역사적으로 중요한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4.3사건은 명백하게 미군정체제하에서 시작되었고요. 미군정이 최종책임자라는 뜻이죠. 곧 미국이 책임자라는 뜻이죠. 그리고 우리나라 국군이 한국 국민에 대해서 저지른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 한 번 깊이 있게 생각을 해봐야 되겠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한 행위들이 보통 이방의 군대가 다른 종족을 해칠 때보다 더 잔인한 부분이 있거든요. 그건 참 놀라운 일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왜 그랬을까요, 진짜로?

    ▷ 서해성 : 그러니까요. 그런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분석도 해야 되겠습니다만 그보다도 가장 중요한 게 한국 군대와 경찰이 자의식이 빈곤합니다.

    ▶ 김종배 : 그 말씀은 다시 말해서 이때 당시에 경찰이나 군이 민족DNA가 과연 심어져있었느냐?

    ▷ 서해성 :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 김종배 : 바로 그 지적이신 거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자기들이 월급 받는 사람 말고, 권력기구라는 것 말고, 자기들이 왜 진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식빈곤, 아주 심각한 문제거든요. 사실 그건 지금까지 상당부분 이어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부분을 한 번 짚어보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기원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찰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개념을 말씀을 드리자면, 사회학적 개념을 말씀드리자면 일상에서 자신의 안위를 스스로 지켜야 되는 게 인간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근육, 혹은 집에 있는 여러 가지 연장,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자기 집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데,

    ▶ 김종배 : 내 몸은 내가 지킨다.

    ▷ 서해성 : 네. 그렇게 되어버리면 미국처럼 총을 집에 갖고 있다든지 예컨대,

    ▶ 김종배 : 그러니까 바로 그게 문제,

    ▷ 서해성 : 그런 것들을 할 수가 없으니까, 또 그렇게 살면 그 폭력의 등가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했을 때 저쪽에 돌려주는 것, 그런 것들이 공정하기 쉽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굉장히 감정적인 행위도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그걸 국가에다 위임한 게 경찰제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상적으로 집행되었다고 느끼지 않는 거죠, 4.3이라든지 지난 광복 이후에 73년이 지나는 동안 상당부분에서 그렇게 못 느끼고 있는 거죠.

    ▶ 김종배 : 그러니까 경찰은 당연히 국민들을 보호해야 되는데 오히려 정반대를 했으니,

    ▷ 서해성 : 국민 위에 군림하고 해치는 그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거죠. 요새는 또 많이 달라졌습니다만, 또 정권에 따라서 굉장히 다양하게 사실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요.

    ▶ 김종배 : 요즘은 그런 얘기 안 씁니다만 군사독재정부 때만 하더라도 경찰은 민중의 목탁이 아니라 민중의 몽둥이다, 이런 얘기 다 하고 했잖아요, 사실은.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군대도 마찬가지거든요. 근대의 국가의 군대라는 건 국민개병제 국가입니다, 대부분의 국가가. 그 말은 누구나 다 군대를 간다는 얘깁니다. 과거에는 군대를 다 가지 않았습니다. 이 시간에 다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말씀드리자면 중세에는 일종의 용병이었습니다. 근대사회가 되면서 그랬는데 그런데 이 폭력이, 그러니까 이걸 국가폭력이라고 그러는데요. 국가폭력이라고 그러니까 여러분 부정적인 뜻이 아닙니다. 국가가 가지고 있는 어떤 물리력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시민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던 물리력으로 근대국가를 만들었는데 그걸 우리가 시민혁명이라고 합니다. 그 시민혁명이 생긴 거대한 시민의 물리력을 국가에다 위임한 겁니다. 왜 위임했냐면 외침, 우리가 생각한 민주공화정, 민주주의 혹은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서 외침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 위임한 것이고 그럴 때 내는 세금, 일본말로 혈세라고 합니다. 몸으로 낸다는, 피로 내는 세금이라는 뜻입니다. 일본말입니다.

    ▶ 김종배 : 혈세도 일본말이에요?

    ▷ 서해성 : 네. 일본말입니다. 원래는 일반세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병역의무를 말할 때 혈세라고 합니다.

    ▶ 김종배 : 또 하나 배우네요.

    ▷ 서해성 : 그러니까 그런 시민물리력을 국가에 위임한 것이죠. 그런데 과거에 한 몇 년 전 지난 정권의 기간 동안에 일어났던 일인데 교육방송 강사가 학생들을 강의를 하면서 이게 국가폭력이라는 말을 했다가 몰매를 맞고 쫓겨난 적이 있었거든요.

    ▶ 김종배 :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 서해성 : 기억나시죠? 사실 맞습니다. 국가폭력입니다. 국가폭력기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시민 개개인이 갖고 있는 폭력이라는 물리력을 국가에 위임한 것을 국가폭력기구 혹은 국가물리력,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상한 말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그걸로 쫓겨나셨던 거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드리고 한국 군대와 경찰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겠다, 그 말입니다.

    ▶ 김종배 : 지난주에 방송 끝나시고 미국 다녀오신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오늘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과도 상관이 있는,

    ▷ 서해성 : 관련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윌로스라는 곳을 제가 가기 위해서 출장을 갔다 왔는데요. 그게 한국 공군의 기원일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에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제가 다녀왔습니다.

    ▶ 김종배 : 한국 공군의 기원이 한반도에 있어야지 왜 미국에 있어요?

    ▷ 서해성 : 그러니까요. 그 당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의 차원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많은 기원들이 한국 안에 그 당시에는 있기가 어려웠습니다. 식민지체제였기 때문에, 이따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김종배 : 그럼 군의 기원부터 살펴봐야 될 텐데 육해공이니까 육군부터 한 번 살펴볼까요?

    ▷ 서해성 : 네. 현재 우리나라 육군은 46년 1월 15일 날 미군정에 남조선국방경비대가 편성된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방 이후에 되었다는 것이죠. 그 당시에 핵심적인 구성인자들은 백선엽, 양국진, 김백일, 신학균, 박동균, 이런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만주군 출신들입니다.

    ▶ 김종배 : 일본이 세운 만주국,

    ▷ 서해성 : 괴뢰정부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 게 일본군이죠. 그리고 유재홍, 이런 분도 일본군이고요. 이런 사람들 핵심으로 해서 남조선국방경비대, 그 당시 말은 남조선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제가 북한에 대입해서 쓴 그런 말은 아닙니다. 정식명칭이 남조선국방경비대입니다. 그런 사람들로 구성이 되었는데 정말 놀랍게도 광복 뒤에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의 총탄에 서거할 때 현장에 근처에 있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 김종배 : 당시 육군참모,

    ▷ 서해성 : 네.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빼놓고는 모두가 다 육군참모총장이 일본군과 만주군이나 아니면 학병출신, 이런 사람들 100% 구성되어 있습니다.

    ▶ 김종배 : 아니. 그러니까 참 뭐한 게 우리군의 기원은 당연히 광복군이 되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 서해성 : 제가 얘기하려고 한 걸 하시면 어떡합니까?

    ▶ 김종배 : 아니. 이건 상식이잖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임시정부가 1920년에 독립전쟁 원년을 선포했습니다. 정부를 수립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그러니까 사실 조금 더 소급해서 얘기하자면 의병들, 그러니까 의병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한 거지 그럼 무엇 때문에 했습니까? 그리고 독립군들, 여러 수많은 독립군들, 만주, 미주지역에 있었던, 러시아령에 있었던, 이런 것, 그리고 한독당에서도 당군을 만들었거든요, 김구의 한독당에서도, 39년도에. 그리고 한국광복군이 마침내 1940년 9월 17일 날 충칭에서 결성되었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요. 이 정통성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우리군이 창설이 되어야 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 서해성 : 우리 헌법으로 따지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광복군으로부터 그 기원을 찾아야만 되는 것인데 현재까지 우리 육군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 김종배 : 그래서 광복군 출신 몇 명이 들어갔다가 오히려 만주군, 이런 사람들한테 밀리고,

    ▷ 서해성 : 지금 제가 위에서 최초의 군을 편성한 사람들 얘기했는데 거의 대부분이 일본군과 만주군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서 왜 그럼 이게 기원이 중요하냐면요. 그럼 군인이 어떤 자부심을 갖겠습니까? 우리군은 애초부터 외적과 싸우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근대 군대의 핵심적 개념과 딱 맞닿는 거고 실제로 국민들의 가슴속에서도,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들도, 내가 정말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항일운동의 역사를 내가 잇고 있는 자랑스러운 광복군, 독립군의 후예도다라고 생각을 100%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 고도의 자부심을 갖게 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는 운명을 갖고 출발하고 있고 현재도 그걸 얘기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군대 문화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바로 이 사람들이 지위가 아니고 중간간부들, 주요 고급간부들이 다 일본군 출신이다 보니까 일본에서는 없어진 일본군대가 한반도에 계속해서 잔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김종배 : 육군사관학교는 어땠어요?

    ▷ 서해성 : 육군사관학교도 1945년 12월 5일 날 미군정청에서 만든 군사영어학교를 기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렇군요.

    ▷ 서해성 : 이것도 참 아쉬운 일이죠. 그때 최초로 110명을 배출했는데요. 기쁜 소식이 한 가지 있습니다. 2018년, 며칠 전이죠. 3.1절에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충무관 앞에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세웠습니다.

    ▶ 김종배 : 육군사관학교 원조는 신흥무관학교가 되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제가 사실 이 일로 육군사관학교 교장이신 김완태 장군을 만났거든요. 제가 이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만났는데 이분이 굉장히 적극적이시더라고요. 이런 동상을 세워야 할 뿐만 아니라 육군사관학교의 기원을 신흥무관학교로 소급해야 한다. 제가 이 심포지엄도 다녀왔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멋진 게요, 이번에 세운 흉상이 육군사관학교 생도들 포함해서 장병들이 사용한 실탄 탄피 300kg을 녹여서 만들었습니다.

    ▶ 김종배 : 의미가 있네요.

    ▷ 서해성 : 이게 참 뼈저리게 느껴지더라고요.

    ▶ 김종배 : 그러니까요.

    ▷ 서해성 : 그래서 거기에 이렇게 표지석 상단에는 ‘우리는 한국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아가, 나아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라고 하는 압록강 행진곡에 나와 있는 한 대목을 거기에 세웠습니다. 육군사관학교가 얼마나 멋집니까?

    ▶ 김종배 : 상당한 변환데요.

    ▷ 서해성 : 이 방송을 들으신 분들도 기뻐하실 거예요. 바로 그런 육군사관학교를 만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수학여행으로 육군사관학교는 반드시 신흥무관학교 전적들 답사하는 거예요, 예컨대. 만주에 있는데,

    ▶ 김종배 : 그런데 만주에 신흥무관학교 유적이나 이런 게 남아있어요?

    ▷ 서해성 : 남아있습니다. 비록 희미하지만 남아있습니다.

    ▶ 김종배 : 다행이네요.

    ▷ 서해성 : 청산리 전투지역도 가고 예컨대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고 광복군 훈련장도 가보고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정말 누구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서 장교가 되는가?

    ▶ 김종배 : 딱 나왔네. 육군사관학교 수학여행은 만주신흥무관학교 거기로 가면 되겠네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요.

    ▶ 김종배 : 딱 좋네. 그리고 미국 가서 공군의 기원 보셨다고 했는데 공군 얘기 좀 하죠. 공군은 어떻게 생겼어요?

    ▷ 서해성 : 공군도 48년도 미군에게, L-4라는 그 연락기입니다. 비행기 10대를 양도받은 것을 우리나라 공군의 기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한국전쟁 기간 동안 머스탱 전투기를 타고 폭격을 한다든지 예컨대 그런 일을 했던 것을 기원으로 삼고 있는 거죠. 아쉬운 대목이죠. 그 공군 얘기는 이따가 다시 또 해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 김종배 : 해군은요, 그러면?

    ▷ 서해성 : 해군은 다행히, 해군이 어찌 보면 정통성이 가장 좋은, 육해공 중에서, 그런 기원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광복 직후에 해사협회라는, 해사협회(마린 어소시에이션)이라는 뜻입니다. 그걸 만들었는데 그걸 주도하신 분이 손원일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 김종배 : 어떤 분인데요?

    ▷ 서해성 : 손원일이라는 분은 임시정부 의정원,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국회의장이죠. 국회의장이었던 손정도 목사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해군을 만들었습니다.

    ▶ 김종배 : 민간인이 해군을 만들었어요?

    ▷ 서해성 : 네. 다행스러운 게 이분이 독립운동하신 분이에요. 이분이 주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육해공 중에서 역사적 정통성이 가장 좋다고나 할까요?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이분이 해방병단을 만들었고요. 이게 결국에 조선해양경비대로 발전하고 나중에 이게 48년도에 대한민국 해군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원일이 초대 해군참모총장, 그 당시 이름 총참모장인데 총참모장이 되었고 이 양반에 의해서 해병대도 만들어졌고 이 양반이 해군사관학교도 만듭니다.

    ▶ 김종배 : 해군의 아버지네?

    ▷ 서해성 : 아버지죠, 진짜로요. 그런데 이 역사의 정통성이 어쨌든 간에 당신 아버지께서, 손정도 목사께서 임시정부에 계셨다는 점에서 본다면 해군은 일정하게 임시정부의 역사를 당시에도 이으려고 했다는 측면을 같이 얘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당시에 이분이 미국에서 사왔던 배가 있었는데 백두산함입니다. 미국에 사온 그 당시에, 미국이 갖고 있었던 배 이름은 백두산함이 아니었죠.

    ▶ 김종배 : 사와서 이름을 붙인 거죠.

    ▷ 서해성 : 네. 사와서 이름을 붙인 건데 50년 6월 25일 날 새벽에 대한해협 근처에서 600여명, 인민군 600여명과 탄약을 싣고 오던 무장 수송선을 격침시켰습니다.

    ▶ 김종배 : 6월 25일 당일에?

    ▷ 서해성 : 6월 25일 날, 네.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면요. 이게 부산으로 오려고 했던 인민군이거든요. 부산 점령을 하려고 시도했던 인민군을 처단한 겁니다.

    ▶ 김종배 : 저 이 대목 갑자기 이순신 장군이 떠오르는 게, 그러니까 뭐냐면 외병들이 육로로 진격하면서 또 해로로 한성으로 들이치려고 했는데 그걸 차단한 게 바로 이순신 장군이잖아요.

    ▷ 서해성 : 손원일도 그런 겁니다. 후방으로 들어오고 있던 인민군을 차단했던, 그러니까 정말 전통성이 있는 해군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다른 두 개의 군에 비한다면요.

    ▶ 김종배 : 그럼 6.25 최초의 승전이겠네요, 이게 또?

    ▷ 서해성 : 그렇죠.

    ▶ 김종배 : 당일이니까,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육해공 기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또 하나 지금 반드시 점검해야 되는 게 국군의 날 기원 아닙니까? 이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국군의 날이 현재 10월 1일로 되어 있는데요. 이게 50년 10월 1일 날 당시 38선을 돌파했던 육군 제3사단이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 날을 만든 것은 56년 10월 1일 날 이승만 정권이었습니다. 3사단, 거기 장병들, 근무하셨던 분들 모욕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거기에 이끌었던 사람들이 상당들이 서북청년단들이 거기 좀 있었습니다. 많이 있었습니다, 거기. 이 양반들이 거기 있으면서 철모에 많이 그려 넣었던 게 해골이었습니다. 그래서 3사단 별명이 백골사단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백골부대가 이렇게 해서 나온 거예요?

    ▷ 서해성 : 네. 백골부대가 나온 겁니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는 게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정일권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 김종배 : 그 유명한,

    ▷ 서해성 : 일본육사를 나온 사람이죠. 그리고 이종찬이라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친일부분이 덜하긴 합니다만 일본군사학교 군인출신이죠, 그러니까. 이걸 기원으로 삼고 있는 것 자체가 뭐냐면 친일장교들을, 참모총장을 기용한 이승만 정권, 그리고 서북청년단을 정치깡패 내지는 테러, 제주도 4.3학살을 진행했던 그런 부분을 했던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구성되어 있던 그걸 기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죠.

    ▶ 김종배 : 왜 그랬을까요, 도대체?

    ▷ 서해성 : 바로 이런 근거 때문에 도리어 그런 거죠. 사실은 국군의 날을 아까 말씀드렸던 40년 쪽으로 소급해가면 9월 17일, 우리 광복군을 만들었던 그 날로 기원을 해간다면 국군의 날 역사가 성질이 바뀌게 되고 또 하나는 국군의 날 행진도 광복군부대로 이렇게 연출을 한 그런 부대원들이 앞에 행진을 하고 그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김종배 : 지금 문자로 카카오톡 바람따라구름따라님이 문자 주셨는데 현충일이 뜬금없이 노르망디 상륙일이 되었네요? 이렇게, 맞는,

    ▷ 서해성 : 노르망디 상륙일하고 날짜는 같습니다. 그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기원한 것은 아니고요.

    ▶ 김종배 : 그런데 기원은 다른 데 있고, 그런데 우연으로 날짜는 같다?

    ▷ 서해성 : 네. 44년 6월 6일 날 새벽 4시 정도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했는데요. 그것하고는 다른 얘기입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지금 육군 이야기 잠깐 나왔고 하니까 역대 육군참모총장 한 번 면면을 살펴보면 대충 흔히 이야기하면 족보가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 서해성 : 간단하게 불러드리면요. 초대 이응준 참모총장 일본육사 26기, 2대부터 4대까지 했던 채병덕 일본육사 49기, 3대를 했던 신태영 일본육사 26기, 정일권 5대, 8대 참모총장 일본육사 졸업, 그다음에 6대 이종찬 일본육사, 7대, 10대 참모총장 봉천군관학교, 9대 이형근 일본육사, 송요찬 일본군조로 갔다가 부사관 상사로 제대했는데 한국 육군참모총장, 12대를 했던 최영희도 일본군 소위출신, 13대 최경록도 일본 도요하시 예비사관학교 졸업, 장도영도 일본군 소위, 김종오도 일본군 소위, 민기식도 일본군 소위, 김용배 일본군 소위, 김계원 일본군 소위, 서종철 일본군 소위, 노재현 일본군 소위, 이세호 일본군 소위, 정승화만 바로 아까 얘기했던 10.26사건 때 현장에 있었던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만 팔로군 소속 소년병 출신인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21대 육군참모총장까지가 전부 다 일본군과 연결되어 있는,

    ▷ 서해성 : 네. 이러니 어떻게 우리, 저는 이런 농담을 합니다, 가끔 이런 얘기할 때마다. 형식적으로라도, 거짓말로라도 한 번 광복군이나 이런 사람 출신 끼워줘야 되는 것 아닌가요?

    ▶ 김종배 : 그렇죠. 구색 맞추기라도,

    ▷ 서해성 : 구색 맞추기. 신발가게 가면 안 신는 신발, 이상한 신발, 굽이 너무 높고 안 신는 신발도 끼어 있잖아요, 사실은요. 그런 것처럼 그랬어야 하는데 1대부터 21대까지 단 한 번도 민족군대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 분이 참모총장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 김종배 : 아까 서두에서 제주 4.3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군과 경찰을 이야기하면서 자의식이 없다는 말씀하셨고 민족DNA가 안 새겨져 있었다, 이 얘기를 하셨는데 그게 바로 지금 여기서 그대로 다 드러나는 거잖아요. 경찰 기원도 한 번 말씀을 해 주시죠.

    ▷ 서해성 : 경찰 현재 기원으로 삼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미군정청에서 경무국을 설치한 10월 21일로 이 날을 꼽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알다시피 친일경찰을 기용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유명한 사건이니까,

    ▷ 서해성 : 이 날은 친일경찰을 재등용한 날로 봐야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경찰은 적어도 친일에 대해서 외형상 죄를 완전히 지운 날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저도 주워들은 이유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검경수사권 조정, 그러면서 수사권을 검찰이 가지게 됐던 게 바로 아니, 친일들이 장악한 경찰, 얘네들한테 어떻게 믿고 수사권을 주느냐? 그래서 임시변통으로 잠깐만 검찰이 수사권을 준다, 이렇게 했다는 것 아닙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게 지금까지 왔다는 거잖아요.

    ▷ 서해성 : 그렇죠. 그걸 한 번 생각해보시면 얼마나 비극적이냐는 겁니다, 사실은요. 자기 동포를 괴롭히고 민족을 괴롭혔던 그 사람들이 그대로 아무 징벌을 받지 않고 그대로 다시 경찰이 된 일이죠. 이 또한 57년도에 이승만 정권에서 이걸 지정을 했습니다. 이런 날들이 경찰의 날이나 국군의 날, 이런 것들이 국가기념일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국가기념일이 되려면 정말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그 기원을 따져서 제대로 된 기념을 해야 되겠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요. 해방 당시에 한국에는, 남북한 다 포함하는 겁니다. 2만 6,677명의 경찰관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한국인, 그 당시 조선인이라고 불렀는데 조선인은 1만 619명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시급, 높은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경시급에 해당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노덕술이라는 사람이었죠.

    ▶ 김종배 : 그 유명한,

    ▷ 서해성 : 네. 그리고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전봉덕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전봉덕은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 돌아가실 적에 그 당시에 헌병 부사령관이었는데 김구 선생 그 일을 처리하는, 정확하게 말하면 감추는 그런 일을 했던 사람인데 유명한 수필가 전혜린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가장 높았던 사람은 윤종화라고 하는 사람인데 그 당시에 황해도 경찰부장을 했는데 이분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떤 국회의원의 큰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분은 이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알만한 분들은 아실 테니까요. 일본인들의 추천으로 이 양반이 가장 높은 급에 있었던 거고요. 나머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했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대략 정확하게 45년 8월 8일 오전에 경기도 경찰부, 그러니까 지금 정부종합청사 건너편에 치안본부 별관 건물에서 일본이 망한다는 걸 이미 그날 통보를 받았습니다.

    ▶ 김종배 : 지금 방송 들으시는 우리 애청자 여러분들이 화가 나셨어요. 문자가 계속 들어오는데 2594님은 듣는데 열 받아요, 이렇게 문자 주셨고, 5797님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요? 누구의 잘못인가요? 이렇게 또 문자를 주셨는데, 또 김혁종님은 역사를 바로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여기에 한숨이 묻어있는 이런 문자인 것 같은데, 이러니까 결국은 제주에서 4.3학살이 있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경찰의 날을 말씀드리자면 경찰의 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 관제에 따라서 1919년 11월 15일 날 경무국을 창시했습니다.

    ▶ 김종배 : 경무국, 임시정부가?

    ▷ 서해성 : 네. 19년에요. 그런데 바로 초대 경무국장이 누구냐면 바로 백범 김구 선생입니다. 경찰들이 얼마나 자부심이 가질 수 있습니까? 최초의 경찰 선배가 누구라고요?

    ▶ 김종배 : 백범 김구 선생이면 얘기 끝난 거지.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면 얼마나 좋으냐고요. 어떻게 노덕술을 기원으로 삼느냐는 거예요. 이 방송을 하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어가지고 지금 말이 안 나오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이런 게 다 적폐잖아. 이런 게 적폐지, 뭐.

    ▷ 서해성 : 적폐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실 그런 문제인 거죠. 정말 이런 날들이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김종배 : 아까 미국에 가시면서 공군의 기원 얘기를 잠깐 하셨다가 뒤로 미루셨는데 그건 무슨 얘기에요?

    ▷ 서해성 : 제가 여러 가지 독립운동에 관심이 있어서요. 오랫동안 이런 일들을 해왔는데요. 제가 며칠 전에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한 250km 정도 가면,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고속도로가 좋질 않아가지고요.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한국 고속도로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고속도로 중에 하나죠.

    ▶ 김종배 : 그런가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길이 고속도로는 고속도로인데 프리웨이라고 그래서 미국은 서부 쪽은 통행료를 안 내고 다니고요, 대략. 동부 쪽은 돈을 내고 다니고 그러는데 하여튼 차가 많이 막혔고, 하여튼 그때가 이스터라고 그래서 부활절, 그 시즌에 차도 많이 막혔고 도로도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한 250km 정도 가면 거대한 평원지대가 나타납니다. 그곳에 가면 윌로스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그곳에 갔습니다. 관광지도 아니고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곳도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아주 소중한 그런 공간입니다.

    ▶ 김종배 : 왜요?

    ▷ 서해성 : 바로 그곳에서 한국 공군이 창성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3.1운동이 이제 세계사를 정말 한국역사를 바꾸는 거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니까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당시 미국은 상당히 발전된 나라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윌로스 바로 그 옆에 있는 레드우드라고 하는 도시에서 그곳에 비행기학교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다니면서 어떻게 비행기 기술을 배워가지고 일본 왕이 살고 있는 동경을 폭격할까 하는 이런 연구들을 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임시정부가 이제 성립했습니다, 19년도에. 그러자 당시 임시정부에서 노백린 장군께서 미국을 방문하여가지고, 요즘 말로 하면 국방부장관이었습니다. 노백린 장군께서 미국을 방문하여가지고 비행학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윌로스라고 하는 곳에 비행학교를 만들었습니다.

    ▶ 김종배 : 이곳에?

    ▷ 서해성 : 네. 그곳에 가보니까 비행을 공부하거나 그렇게 하긴 정말 좋은 공간이더라고요. 사방에 산도 없고 정말 끝없이 넓은 들판입니다. 그곳에 활주로도 만들었고요. 학교도 세웠고 기숙사도 있었고 그런 학교 시스템들을 거기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돈을 댄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이 거의 방송에서는 거의 소개된 적이 없었을 텐데요. 김종림 선생이십니다. 이분이 빈손으로 미국에 건너가가지고 솔트레이크라고 하는 얼마 전에, 몇 년 전에 동계올림픽 했던,

    ▶ 김종배 : 유명한 곳, 솔트레이크시티.

    ▷ 서해성 : 그곳으로 철도를 놓는 건설노동자, 이런 노동하다가 이분이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샌프란시스코로 나와 가지고 이제 쌀농사를 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쌀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한 것은 1912년입니다. 그 전에도 쌀농사를 하긴 했습니다. 중국인들이 골드러시 때, 황금광시대 때 미국으로 건너와가지고 먹고 살아야 되니까 쌀농사를 짓긴 했습니다만 미국이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한 건 1912년인데 그 무렵에 1차 대전이 터집니다.

    ▶ 김종배 : 그렇죠. 연도로 보면 그러네요.

    ▷ 서해성 : 1차 대전이 터져가지고 바로 캘리포니아 윌로스 지역에서 한국인 4명 정도가 집단적으로 농장을 운영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이 바로 김종림 선생이 그중에 가장 크게 운영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략 한 해에 300만 달러 정도의 쌀 수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실은 전체 이익금의 10%밖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당시 한국인은, 아시아인은 미국에서 제대로 재산권을 행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농사 짓는 것의 수익금의 10% 정도만 취할 수 있었습니다.

    ▶ 김종배 : 왜요?

    ▷ 서해성 : 미국법이 그러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그런 큰 돈을 번, 그래서 미국신문에 ‘라이스킹’ 이렇게 소개됐습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쌀왕, 백미왕이죠.

    ▶ 김종배 : 왜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은 이분의 이름 석 자를 모를까요?

    ▷ 서해성 : 해방이 되고 나서 이분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죠.

    ▶ 김종배 : 김종림.

    ▷ 서해성 : 네. 그래서 바로 이분이 돈을 전액을 낸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게 이분이 쌀의 나라 한국에서 건너가가지고, 전혀 쌀을 안 먹는 미국에 가가지고 당시 1차 대전으로 전 세계 밀 값이 아주 앙등합니다. 바로 그때 쌀을 팔아가지고 그 돈으로 비행기를 사고, 활주로를 만들고, 그리고 학교를 짓고 해서 한국독립군을 길러냈다고 하는 점입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여쭤볼 것도 많은데 이건 나중을 위해서 질문만 드리고 지금 답변은 못 듣고, 시간이 없어서, 옛날 노래에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저는 그래서 공군하면 안창남부터 떠올렸는데 전혀 지금 이분 이름 석 자는 등장을 안 했어요.

    ▷ 서해성 : 안창남보다 앞서서 하신 분이죠.

    ▶ 김종배 : 그러니까요. 이 얘기는 나중에 속편으로 기약을 하면서 짧게 마무리 좀 부탁드릴게요, 작가님.

    ▷ 서해성 : 제가 오늘 군대와 경찰의 기원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그 까닭은 아무 이유도 없고요. 국군이, 그리고 경찰이 국민의 사랑을 받게끔 하려면 국민에게 사랑받게끔 하는 역살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김종배 : 그럼요.

    ▷ 서해성 : 그렇게 하기 위해선 우선 군대와 경찰이 자신들을 자부심을 더 갖는 역사를 먼저 찾아내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야겠다. 그래야 4.3학살 같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광주학살 같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하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 시간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종배 : 아니. 정통성의 표상이 있는데, 역사적으로, 왜 그러니까 복원 안 시키냐고, 간단한 거잖아, 어찌 보면.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건데,

    ▷ 서해성 : 그렇죠. 일제 군대와 일제 경찰을 기원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 김종배 : 그렇죠. 알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마무리하고 인사 나누겠습니다.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해성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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