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서해성의 박학다설] 안국역에서 만난 사람들 - 안국역 3.1운동 100년역(서울 이야기.3)

백창은

tbs3@naver.com

2018-10-1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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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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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성의 박학다설] 안국역에서 만난 사람들 - 안국역 3.1운동 100년역(서울 이야기.3)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8. 10. 19. (금)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 김종배 : 우리시대의 지식광대입니다. 서해성 작가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서해성 :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 서해성 : 네. 오늘 여기 오니까 강바람도 불고, 완전 가을 같은,

    ▶ 김종배 : 아주 코발트색의 목도리를 두르고 오셨습니다.

    ▷ 서해성 : 보이는 라디오 한 번 하세요.

    ▶ 김종배 : 보이는 라디오?

    ▷ 서해성 : 네.

    ▶ 김종배 : 할까요?

    ▷ 서해성 : 한번 하시죠, 인터넷으로. 라디오하면서 인터넷 한 번 하시면 청취자들도 같이 또 참여하시고, 그럼 좋죠.

    ▶ 김종배 : 작가님 얼굴 비추시고 싶으신 거죠?

    ▷ 서해성 : 제 얼굴이 나오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여기 2년 정도 방송을 했는데, 가끔씩 이렇게 그런 이벤트 같은 게 또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청취자들하고 같이 만나서 또 한 다섯 분 정도 불러서 얘기도 같이 하고,

    ▶ 김종배 : 조금만 기다리세요. 알겠습니다.

    ▷ 서해성 : 네.

    ▶ 김종배 : 오늘의 주제는 어떤 건가요?

    ▷ 서해성 : 메트로 역, 어떤 역 하나를 소개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지하철역?

    ▷ 서해성 : 네.

    ▶ 김종배 : 어떤 역이요?

    ▷ 서해성 : 안국역입니다. 서울 종로에 있는,

    ▶ 김종배 : 3호선 안국역.

    ▷ 서해성 : 네.

    ▶ 김종배 : 왜 안국역을 고르셨어요?

    ▷ 서해성 : 이 안국역이 서울시에서 한 1년 정도 작업을 해가지고 독립운동 테마역으로 새롭게 단장해서 태어났습니다.

    ▶ 김종배 : 저번에 잠깐 얼핏 예고형으로 한 번 잠깐 말씀해 주신 적 있었어요.

    ▷ 서해성 : 네. 말씀드린 적도 있었고, 언론에 아주 많이 나갔는데, tbs에만 안 나가더라고요.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그래서 tbs 소개를 하려고,

    ▶ 김종배 : 지금부터 마음껏 소개하셔도 됩니다. 이게 내년이 이제 3.1운동 100주년 되는 해잖아요. 이것하고 연결이 되어있는 거잖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하철이라는 게 사실 일상의 공간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럼요.

    ▷ 서해성 : 그런데 그 위에다 역사를 결합시킨 그런 형태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전국에 메트로 역이 960개가 있습니다, 정확하게.

    ▶ 김종배 : 이렇게 많나요?

    ▷ 서해성 : 이제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이렇게 있어서 그런데, 이제 그중에서 독립운동을 테마로 하고 있는 역은 사실 안국역뿐입니다. 좀 아쉽죠, 사실은요.

    ▶ 김종배 : 그러게요.

    ▷ 서해성 : 사실 이 방송하는 이유가 안국역을 단지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지자체들에서도 이렇게 독립운동 중심의 뭘 기록했으면, 우리 근현대사,

    ▶ 김종배 : 그러니까 지금 그 말씀은 어떤 일상의 공간에 역사의 옷을 입히자, 그거잖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여기서 안국역은 독립운동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거죠. 그러니까 사실은 좀 더 발전하면 민주화운동도 역도 만들 수 있겠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못 만들 이유가 사실 없지 않습니까? 부마항쟁을 기려서 부산, 마산에, 광주에도 만들 수 있고, 서울도 만들 수 있고, 사실은 만들 수 있는 거죠.

    ▶ 김종배 : 그럼 이제 역사가 살아나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이제 서울시에서 그 모델을 따와 가지고 이런 형태로 일상의 공간에다가 우리 김종배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역사의 옷을 입히는, 내용물을 역사로 채우는, 그런 거죠. 그러니까 제가 오늘 얘기하는 게 서울 이야기 세 번째인데요. 이제 어디를 가야 되는지 굳이 추천을 안 드려도 저절로 들리시면 이제 가실 수 있겠죠. 약속을 하시다가 시간이 문득 남는다. 그런 자투리 시간에 슬쩍 안국역에 들러가지고 여러 가지 것들 같이 볼 수 있겠죠.

    ▶ 김종배 : 그러면 본격적으로 한 번 안국역 탐방을 해보죠. 왜 안국역이에요?

    ▷ 서해성 : 안국역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북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이 많이 가는.

    ▶ 김종배 : 지금 삼청동, 이런 데,

    ▷ 서해성 : 네. 북촌도 말씀드리자면 사실은 우리는 북촌이 조선시대부터 그냥 거기 그렇게 크게 한옥이 많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 시간에 잠깐 소개한 적 있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 3.1운동 직후에 일종의 민족자본가, 이런 분들이

    ▶ 김종배 : 맞아요. 말씀하신 적 있어요.

    ▷ 서해성 : 일본인들이 몰려오는 걸 저지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도시형 한옥을 지으면서 오늘날 북촌이 형성된 겁니다.

    ▶ 김종배 : 그때 어떤 인물도 등장을 했는데, 그걸 요즘 개념으로 분양하는,

    ▷ 서해성 : 그렇죠. 분양을 했죠, 그 당시에요. 그러니까 정세권이라는 분인데, 그분이

    ▶ 김종배 : 맞아요.

    ▷ 서해성 : 그런 것처럼 북촌도 내년이 되면 서울시에서 거기에다 그런 안내문을 붙입니다. 북촌도 3.1운동의 유산이라는 것을, 사실이고요, 그것이요. 그런데 하여튼 서울 중심이 북촌이었지 않습니까? 당연히 독립운동가들 다수가 거기 몰려 살았습니다. 일부러 몰려 산 게 아니라 거기 원래 사람이 사는 곳이었으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렇죠.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그 북촌 일대에 학교가 중고등학교, 요즘말로 하면 중고등학교죠. 그땐 중학이었으니까 5년제 중학인데, 중학교도 7개나 있었습니다.

    ▶ 김종배 : 지금 정독도서관으로 되어 있는 그때가,

    ▷ 서해성 : 경기중이죠, 경기중.

    ▶ 김종배 : 그 자리, 네.

    ▷ 서해성 : 그러니까 경기중, 보성학교, 지금 조계사 자리가 바로 보성학교 자리거든요. 그러니까 보성학교,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게 중앙학교, 중앙고등학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죠. 지금 현대 본사 건물이 휘문중학

    ▶ 김종배 : 거기가 휘문중 자리였어요?

    ▷ 서해성 : 휘문중학입니다. 휘문중학이 그러니까 휘문고등학교죠, 그 당시에는. 이전할 때는 그게 강남으로 가고, 거기에 현대 본사가 들어왔던, 계동이죠. 그러니까 그런 거죠. 생각해보십시오. 중요한 인물들이 살고, 학생들이 살고, 사회적 의사표현을 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사람이 그 당시 한국에서 가장 많이 몰려 살고 있던 곳이 바로 이 안국동 일대였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고요. 또 하나는 당시 동학운동 이후에 한국인들이 가장 믿고 따르고 있던 게 천도교였지 않습니까? 천도교의 본부가 그 일대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덕성여중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새로운 천도교 사무실은 그 당시에 짓고 있었습니다. 현재 있는 그 건물이 19년도에 이제 공사를 시작해가지고 완성했는데요. 오래된 건물이죠, 그러니까.

    ▶ 김종배 : 그렇네요.

    ▷ 서해성 : 그런 공간이었기 때문에 안국역을 선택하기 적절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김종배 : 거기서 3.1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바로 3.1운동이 거기서 일어났다는 거죠. 그러니까 바로,

    ▶ 김종배 : 태화관 얘기도 해야 되는 거잖아요.

    ▷ 서해성 : 네. 그렇죠. 바로 그 안국역에서 거리로 치면 한 200~300m 정도 가면 태화관이 있죠. 음식점 이름인데, 이 방송 우리가 아마 1회에 했던 것 같습니다, 태화관 소개. 태화관이 우리가 생각하는 룸살롱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하고 많이 다른 집이다, 이런 소개를 한 적이 있었는데,

    ▶ 김종배 : 맞아요.

    ▷ 서해성 : 그곳에서 33인, 우리 교과서에서 맨날 배우는 독립선언문을 낭독했고요. 서울시에서 지금 거기에다 33인 광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 김종배 : 지금 만들고 있습니까?

    ▷ 서해성 : 네. 현재 만들고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럼 내년 3.1운동 100주년 때 어떤,

    ▷ 서해성 : 네. 완공됩니다. 그렇게 하고 있고, 그러니까 이제 그곳에서 지금하고는 길이 조금 다르게 그 길이 승동교회로 이어졌습니다. 그 바로 뒤에 승동교회가 있는데, 그리고 거기서 이제 탑동공원, 파고다공원, 탑골공원 얘기하는 겁니다. 파고다공원으로 이어지는 그 길이었고, 만세가 바로 그 공원에서 터졌죠.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입니다. 그 전에 인천에도 공원이 있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우리나라 최초 공원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뭐냐면 그건 조계지에서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주체가 되어서 세운 게 아니라 서양인이 주체가 되어서 세웠기 때문에 그걸 1번으로 치지 않고, 우리가 탑골공원을 첫 번째 공원으로 치고 있는데, 그곳에서 만세가 터졌죠. 그러니까 그곳은 한국인의 만세의 고향이자 근대 대중의 고향입니다.

    ▶ 김종배 : 그렇네요.

    ▷ 서해성 : 네. 근대 대중이 사실 여기서 처음 출현했습니다.

    ▶ 김종배 : 근대 대중이 만세운동을 벌인 곳, 이렇게 얘기하면 되겠네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사실 탑골공원은 다시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냥 3.1운동의 만세만 터진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근대 민주공화정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불특정다수 대중의 주권을 대변하는 거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러면 불특정다수 대중이 어디선가 모여서 자기의사를 표현해야 하는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런 점에서 탑골공원, 저는 근대 대중, 근대 시민, 혹은 각성된 시민의 최초로 출현한 그런 곳이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 이제 만세 행렬이 그 공원을 나와서 종로로 향했습니다. 종각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운집했습니다. 아주 대중이 커져가지고 덕수궁 앞에 이르러서 거기서 절을 올렸습니다.

    ▶ 김종배 : 절을?

    ▷ 서해성 : 네. 고종황제가, 유해가 그 당시에 아직 덕수궁에 누워있었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이제 지금 서울시청 앞 광장에 운집해서 있다가 그 당시에는 이제 경성일보 신문사였습니다, 지금 서울도서관 자리가. 그리고는 이제 조선은행 쪽으로 이어지는 소공로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그 길 이름은 장곡천정통이었습니다.

    ▶ 김종배 : 지난주에 소공로 말씀해 주셨었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바로 그 길이었습니다. 장곡천정이라는, 장곡천이라는 말은 하세가와 요시미치, 당시 총독 얘기하는 거죠.

    ▶ 김종배 : 그게 한자로 표기하면 그렇게 되는 건가요, 장곡천?

    ▷ 서해성 :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바로 그 사람이 3.1운동을 가혹하게 진압했던 장본인이죠. 그런데 또 하나 재미있는 말씀을 드리면 일제가 우리를 지배한 이후로 이 3.1운동이라고 하는 게 최초의 대중옥외집회였습니다.

    ▶ 김종배 : 그렇게 되나요?

    ▷ 서해성 :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일제 통치기간이 34년 11개월 보름 동안이었거든요. 정확하게 12시간, 1시간 차이 없이 보름이었는데, 그 기간 동안에 단 한 번도 옥외집회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그러니까 이 말씀,

    ▶ 김종배 : 유일한 경우다?

    ▷ 서해성 : 아니. 옥외, 허용 받은 게 아니죠. 불법으로 한 거죠, 굳이 말하면요. 6.10 만세운동 당연히 불법이죠. 신간회라고 하는 조직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컸던 국내 독립운동조직이죠.

    ▶ 김종배 : 좌우 합작조직이라고 하는,

    ▷ 서해성 : 네. 그런데 그게 옥내집회를 딱 두 번 했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창립대회하고 해소집회 할 때 딱 두 번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가끔 식민지 근대화론 얘기하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진짜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돈도 벌어주지도 않았지만 최소한의 이런 자유권에 대한 보장도 없는 그런 사회가 어떻게 근대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김종배 : 그러니까요.

    ▷ 서해성 : 일제 식민지사회는 근대하고는 무관한 사회입니다. 완벽한 파쇼 통치시대였습니다.

    ▶ 김종배 : 파쇼가 딱 맞죠.

    ▷ 서해성 : 그러니까 그럼 조선시대 때는 집회가 가능했냐, 그럼요. 만민공동회를 그럼 어떻게 해서 했겠습니까?

    ▶ 김종배 : 그리고 저기 경복궁 앞에서 유생들이 무릎 꿇고, 그것도 시위죠.

    ▷ 서해성 : 그러니까요. 시위입니다.

    ▶ 김종배 : 집회죠.

    ▷ 서해성 : 네. 집회죠. 그러니까 도리어 조선시대보다 훨씬 못한 시대였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 김종배 : 다만 이제 ‘통촉 하시옵소서’지, 집회죠, 집회.

    ▷ 서해성 : 만민공동회는 그 정도가 아니고, 아예 왕한테 몰려가 상의하고, 이렇게 했었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러니까 바로 그런 것들이 모이는 거점으로써 현재 대중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가 바로 안국동이다.

    ▶ 김종배 : 그러면 안국역이 이런 역사를 어떻게 지금 표현을 하고 있는 거예요?

    ▷ 서해성 : 네. 거기에서 재미있는 게 우선 승강장에 스크린도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네.

    ▷ 서해성 : 스크린도어가 안국역에서 북쪽으로 갔을 적에, 그러니까 우리가 그걸 상행선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러니까 이제 구파발 방향으로 가는 것?

    ▷ 서해성 : 네, 구파발 방향으로 가는 것. 거기에는 이렇게 3.1운동의 주요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그리고 하행선, 교대역이겠죠.

    ▶ 김종배 : 강남 쪽으로 가는,

    ▷ 서해성 : 강남 쪽으로 가는 거기에는 이제 임시정부 요인들의 얼굴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스크린도어에,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80명의 독립운동, 40명씩의 독립운동가들이 양쪽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왜 40명이냐면요, 기차가 모든 우리 메트로 기자가, 열차가 열량입니다. 열량이고, 각 열차마다 4개의 문이 있습니다.

    ▶ 김종배 : 맞아요.

    ▷ 서해성 : 그러니까 80명이 되는 겁니다. 그 스크린도어마다 독립운동가들 얼굴이 들어있고, 그분들의 어록이 들어있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그 3.1운동 할 때 33인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40명이 되면 추가로 일곱 분이 더 거기에 새겨져있는 건가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33인 중에서도 친일 나중에 하거나 이런 분들은 빠졌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그렇게 해서 이제 그런 것들 조절해가지고 이런 거죠, 그러니까. 그리고 지하철의 스크린도어의 문양은 석고문 문양이라는 문양입니다. 석고문 처음 들으시는 분도 많을 텐데,

    ▶ 김종배 : 뭐에요, 그게?

    ▷ 서해성 : 그게 뭐냐면 다 아시는 거예요. 우리 상해임시정부 모양 보면 문 입구가 약간 돌 모양으로 테두리가 둘러져있는 그런 모양이지 않습니까? 그게 이제 상하이에 당시에 생겼던 중국식과 서양식이 이렇게 결합되어 있는 그런 건축양식입니다.

    ▶ 김종배 : 대충 그림이 그려지네, 뭔지.

    ▷ 서해성 : 그렇죠. 그 문양을, 그러니까 임시정부 정문 모양을 따와 가지고 문이 열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죠? 메트로를 탈 때마다 임정의 문으로 들어가는 거죠, 시민들이요. 그렇게 이제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문양을 또 이 안국역 4번 출구에 하늘문이라고 그래서 문을 그냥 다니면 출입이 복잡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늘 위에 달아가지고 천장을 문 모양으로 해놓은 거죠.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그래서 그걸 볼 수 있고요. 그리고 이제 거기 내려오자마자 이제 표현되어 있는 동학혁명에서부터 촛불집회까지 시민이 주체가 되어서 무엇을 했던,

    ▶ 김종배 : 의미 있네요.

    ▷ 서해성 : 그걸 했던 것을 100년 강물이라 그래서 100년 동안 강물처럼 흘렀다, 한국인들이, 중단 없이.

    ▶ 김종배 : 민중혁명의 역사가 쭉 백 년 동안 펼쳐져있는 거네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게 이제 거기 표현되어 있고요. 전반적인 색깔은 청색입니다, 강물이니까 청색으로 표현되어 있는 그런 게 있고, 그리고 이제 지하철 들어가면 빈자리들이 좀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이제 하나를 만들어놓은 게 100년 충전소라는 게 있습니다. 여기에 휴대전화를 두고 충전할 수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그래서 충전소, 역사와 접속하여서 디지털 디바이스를 충전하는, 그렇게 되어 있고요. 또 그 디바이스 충전할 수 있는 그 안쪽에는 뭐가 있냐면 우리 역사 100년을 창조해낸 인물들을 100초 동안에 만날 수 있는, 800여명을 100초 동안에 만날 수 있는 100년 기둥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100초 작동하는 100년의 역사를,

    ▶ 김종배 : 동영상이니까 100초 동안 그렇게 작동이 되는 거예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미술이라 생각하면 되겠죠. 그리고 좀 지나가고 나면 우리 헌법 100년 헌법사를 한 눈에 볼 수 100년 헌법 같은 게 있고요. 그리고 이제 지하 4층 아까 스크린도어가 있었던 곳에 가면 100년 걸상이라 그래서,

    ▶ 김종배 : 100년 걸상은 또 뭐에요?

    ▷ 서해성 : 거기에 가면, 지하철 메트로에 가면 거의 대부분의 역이 기둥이 7개에서 8개 정도가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런가요?

    ▷ 서해성 : 안 무너지게 하기 위해서요. 큰 기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둘레에 작은 의자들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김종배 : 맞아요.

    ▷ 서해성 : 그런데 안국역에서는 그 의자를 엄청나게 높이 키웠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천장까지.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천장까지 키워가지고 거기에다가,

    ▶ 김종배 : 키웠다는 게 이제 걸상의 등받이를,

    ▷ 서해성 : 등받이를 키웠습니다. 거기에 그리고는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새겨놨습니다.

    ▶ 김종배 : 등받이에다가?

    ▷ 서해성 : 네. 새겨놨는데, 그게 아마 어쩌면 아마 박물관에서도 이렇게 많은 이름을 새겨놓은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 김종배 : 그러면 하나만 소개를 해 주세요. 예를 들어 어떤, 새긴 내용이 어떤 게 있는 거예요?

    ▷ 서해성 : 가령 이제 하나가 아니라 몇 개만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가령 이제 ‘붓을 들던 손에 칼을 쥐고, 괭이 잡던 손으로 창을 움키고 의병들은 내달렸다’. 그래서 의병 중에서 보훈처 기준으로 상을 받으신 분들 182명의 이름이 새겨져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있는데, 서울시가 그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포상, 무슨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 김종배 : 국가기관인 보훈처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 서해성 : 인정한 사람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가령 그중에서 걸인 독립운동가들도, 걸인들도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여러 군데에서 했습니다. 특히 진주 걸인들 열심히 싸웠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글씨가 되어 있습니다. ‘한 끼 밥은 구걸할 수 있어도, 나라를 구걸할 순 없다.’

    ▶ 김종배 : 멋있다.

    ▷ 서해성 : 그렇게 되어 있는데, 문제는 아무 이름도, 글자가, 이름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걸인들이다 보니까 이분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그 기록은 분명히 남았는데, 이분들 이름을 아직 우리가 찾질 못했습니다.

    ▶ 김종배 : 저는 걸인들이 독립운동했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처음 듣고요. 그런데 기생분들이 독립운동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어요.

    ▷ 서해성 : 네. 현재 기생은 독립운동으로 인정받고 있는 분은 쉰한 분이십니다, 인정받고 있는 분만 해서. 그런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분들이 남자였다고 한다면 아마 500명은 기록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우리나라 여성 독립운동에 대해 굉장히 뭔가 기록이 누락되어 있거나 잘 기록하지 않고 있는 측면이 있는데, 기생들의 설명글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기생들이 일어섰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래와 춤은 만세, 만세, 만세 행진이다.’

    ▶ 김종배 : 멋있는 표현인데요.

    ▷ 서해성 : 네, 이렇게 되어 있고요.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외국인들,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와준 많은 분들이 있거든요. 외국인들에 대한 것도 거기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독립 운동했던 분도 같이 기록되어 있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같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아까 이제 스크린도어에 도합 80명의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어떤 이름과 기록이 새겨져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다 들을 수는 없는 거고, 한두 케이스만 소개해 주신다면?

    ▷ 서해성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크린도어 1-1번에는 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독립운동가,

    ▶ 김종배 : 누군데요?

    ▷ 서해성 : 김상옥, 일 대 천으로 싸운, 정말로 진짜 일 대 천으로 싸운,

    ▶ 김종배 : 폭탄 투척했던 분이죠?

    ▷ 서해성 : 네. 유명한 분이지 않습니까? 그 양반의, 우리 김상옥 의사의 얼굴과 그분이 남긴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 만납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진 않겠소, 이런 말씀하고, 의열단이잖아요. 이렇게 가셨는데, 실제로 서울 지금 현재 대학로 근처에서, 효제동인데, 정확하게는, 효제동에서 일본군 천 명의 포위 속에 이렇게 순국하셨죠. 그러니까 이게 장부가, 이런 장부가 있었다는 얘기는 제가 2천 년 역사에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 김종배 : 일본군 천 명이 포위했다고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일 대 천으로 싸웠습니다. 그랬는데, 그 아침에 그곳을 지나가고 있던 중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경신중학교 학생 한 명이. 구본웅이라는 나중에 화가가 된 소년이었습니다. 그걸,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른들 틈 사이에서, 그래서 나중에 훗날 그걸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김상옥 의사의 의거의 그 현장을 본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서 남아있는 거죠.

    ▶ 김종배 : 그림이 지금도 남아있어요?

    ▷ 서해성 : 네. 그림이 남아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참 예술가가 역사에서 조금만 애를 쓰면 참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걸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김종배 : 그렇네요. 1-1에 그러면 김상옥 열사의 이름과 그분이 남긴 어록이 새겨져있다, 이런 이야기네요?

    ▷ 서해성 : 네. 그리고 이제 그중에 우리가 너무 잘 아는, 5-3번에는 유관순 열사, 너무 잘 아시는 분이니까 소개 안 해도 되지 않습니까? 이분이 이런 말씀하셨어요.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코와 귀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정말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 광복된 나라에 살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좀 전에 안국역을 이야기를 하면서 일상의 공간에 역사의 옷을 입혔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비슷한 것이 어떤 안국역처럼 어떤 지하철역 말고, 다른 공간에도 이런 어떤 지금 시도가 있나요?

    ▷ 서해성 : 네. 서울시에서는 버스정류장에다가도 독립운동가들 이름을 병기하는 사업을 현재 추진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올해만 해도 몇 개가 생길 텐데, 내년에도 많이 생길 것이고요. 버스정류장을 타고 가면 많은, 가끔 제가 제일 섭섭하다고 할까요, 그럴 때마다 ‘어느 약국 앞입니다’,

    ▶ 김종배 : 맞아, 맞아. 네.

    ▷ 서해성 : 그러느니 거기에 독립운동 이름이 낫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사실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역사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죠.

    ▷ 서해성 : 그러니까 제가 바로 동네 골목에도 이분들 이름을 바로 올리는, 버스정류장과 이름을 병기하는,

    ▶ 김종배 : 이건 이제 동네의 역사를 복원하는 사업이 되겠네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마을버스에다가도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지날 때마다 가령 여기는 안국동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김상옥역입니다, 이렇게 같이 말해 주는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그러면 이제 승객들이 왜 김상옥역일까, 한 번은 돌아보게 되는,

    ▷ 서해성 : 그러면 서울시 홈페이지를 누르면 그걸 찾아볼 수 있도록 그렇게 설계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렇군요. 서울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 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또 우리 작가님 말씀을 듣다 보니까 벌써 시간이 다 됐는데, 마무리를 해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 서해성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울 이야기 첫 번째 정순왕후 송씨, 봉건시대에, 그러니까 단종의 왕비, 봉건시대 시련을 주체적으로 돌파해간,

    ▶ 김종배 : 창신동.

    ▷ 서해성 : 네. 그러면서 옷감에 물을 들이면서, 그리고 세조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한 시대를 살다 갔다는,

    ▶ 김종배 : 노동을 하셨던 왕후.

    ▷ 서해성 : 네, 노동을 하셨던 왕후, 왕비 얘기했고, 두 번째는 대한제국의 탄생과 현재 남아있는 흔적을 얘기했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대한제국의 도시계획에 대해서,

    ▷ 서해성 : 네. 같이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3.1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어떻게 일상에서 손쉽게 혹은 쉽게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곳을 추천했습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동시에 서울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해방이 되고 나서 지금까지 오래도록 살 방도만 몰두해왔습니다.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었죠. 생존만 있는 공간에서는 시간이 소멸합니다.

    ▶ 김종배 : 그렇죠. 맞아요.

    ▷ 서해성 : 그러니까 시간이 부재한 도시는 죽은 도시입니다. 전통이 없는 도시니까요.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시간의 나침반을 가슴에 품고 서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중에 하나의 공간인 안국역을 오늘 여러분께 추천해드립니다.

    ▶ 김종배 : 역사의 현장, 기억의 공간이 꼭 차 타고, 비행기 타고 몇 시간 가야 있는 곳이 아니고, 우리 주변도 그런 곳이다.

    ▷ 서해성 :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바로 내 주변이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 김종배 : 바로 이걸 확인하면서 오늘 박학다설은 모두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작가님.

    ▷ 서해성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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