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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의 박학다설] ‘불의 노래’ 프레디 머큐리의 경우

최은지

tbs3@naver.com

2018-11-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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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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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성의 박학다설] ‘불의 노래’ 프레디 머큐리의 경우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8. 11. 23. (금)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 김종배 : 우리시대의 지식광대죠. 서해성 작가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서해성 : 네.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 서해성 : 네.

    ▶ 김종배 : 오늘 이야기 어떤 이야기입니까?

    ▷ 서해성 : 그 왜 락보컬 그룹 퀸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네.

    ▷ 서해성 : 유명한 영국의 보컬그룹인데, 그중에서 보컬을 담당했던 프레디 머큐리, 원래 본명은 파로크 발사르 혹은 불사르, 이렇게 하는데요. 그 사람을 중심으로 퀸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지금까지의 박학다설과는 주제가 상당히 좀 다릅니다?

    ▷ 서해성 : 사실 이제 팝뮤직이나 이런 걸로 한다면 한 10부작 할 수 있는데, 제가 DJ가 아니기 때문에,

    ▶ 김종배 : 우리 작가께서 또 이렇게 팝에 또 조예가 있는지는 또,

    ▷ 서해성 : 팝과 시대사에 대해서 제가 관심이 있었고요. 그런 글도 써본 적이 있었고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럼 박학다설 다음 시리즈로 그걸 하면 어때요? 팝과 시대,

    ▷ 서해성 : 사실 팝뮤직은 굉장히 대중들의 반응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시대를 반영합니다. 근래에 와서 이제 특히 이제 발라드뮤직이 나오면서 시대상과 멀어진 측면이 있습니다만 20세기 미디어와 함께 팝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사실은 시대의 특성을 반영했고요. 그중에서도 락은 더구나 그렇습니다. 락은 사실 좀 거친 음악이고요. 기본적으로 라이브를 중심으로 하는 그런 음악이고, 그 시대와 함께 한 그런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죠.

    ▶ 김종배 : 그러니까 이제 지금 오늘 이 이야기를 꺼내시는 이유가 영화 때문이죠, <보헤미안 랩소디>?

    ▷ 서해성 : 영화 때문이라기보다는 근래에 와서 많은 분들이 영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 김종배 : 보셨어요, 그런데?

    ▷ 서해성 : 저는 영화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사실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것들을, 저는 그렇게 거기에 나오는 내용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좀 그런 태도가 있습니다.

    ▶ 김종배 : 왜요?

    ▷ 서해성 : 왜냐하면 대개 보면 사실과 좀 많이 다른 그런 측면이 있어서요.

    ▶ 김종배 : 잠깐만, 그건 좀 고정관념하고 완전히, 다큐멘터리니까 그나마 사실에 근접했다, 이렇게들 생각을 하는데,

    ▷ 서해성 : 네. 그나마 그렇긴 한데,

    ▶ 김종배 : 정반대의 말씀이시네?

    ▷ 서해성 : 드라마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대개 다큐멘터리가 다큐를 아마적 요소를 좀 갖고 근래에 계속 만들어지는 걸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큐에다가 드라마적 요소를 같이 결합하게 되기 때문에 뭔가 이게 감동을 끌어내기 위해서 약간 사실과 조금 다르게 하는데, 어찌 보면 사실과 조금 다른 것이 본질을 많이 다르게 할 수도 있다.

    ▶ 김종배 : 다큐에 재연극이나 이런 게 들어가기도 하고, 이러더라고요.

    ▷ 서해성 : 네.

    ▶ 김종배 : 그래서?

    ▷ 서해성 : 그리고 더구나 이제 저는 영화를 홍보하는 그런 방송을 하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보다는 이제 우리 세대에 특히 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퀸의 음악은 제일 많이 들은 세대라고 할 수 있겠죠, 지금 50대들이. 그러니까,

    ▶ 김종배 : 그렇죠, 저희가 20대 때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도리어 영화에 나오지 않는 얘기들 혹은 영화와 다른 얘기들 같은 것들도 같이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오늘 영화가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 이 사람한테 초점을 맞춘다는 건데,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어떤 사람입니까?

    ▷ 서해성 : 프레디 머큐리는 굉장히 모순 속에 살다간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이 많은 모순들이 있었습니다, 자기 삶에서. 그런데 프레디 머큐리, 대개 이제 위대한 사람들, 혹은 뛰어난 사람들, 혹은 우리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그 모순을 사랑한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회피하고, 때로는 넘어서야 했고, 그랬겠지만 그 모순이라는 게 한 개인이 만들어낸 무엇이 아니고, 이른바 시대라는 겁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그것을 이제 자기 삶 속에 녹여내서 음악으로 승화시켰던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세상의 거대한 모순을 자기화하고, 이런 걸 했을 때 우리가 그런 걸 참 주술적이다, 혹은 예술가로서 대속적이다, 이렇게 늘 말을 하죠.

    ▶ 김종배 : 대속적이다.

    ▷ 서해성 : 네. 프레디 머큐리는 그런 측면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 김종배 : 어떤 점이 그런데요?

    ▷ 서해성 : 그러니까 프레디 머큐리의 모순에 가장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건 사실 이 사람이 믿었던 종교입니다. 이 사람이 믿었던 종교가 그 유명한 조로아스터라고 하는 불의 종교입니다.

    ▶ 김종배 : 불을 숭상하는,

    ▷ 서해성 : 네. 배화교라고 흔히 그럽니다.

    ▶ 김종배 : 그렇죠. 맞아요.

    ▷ 서해성 : 이 조로아스터라고 하는 게 사람 이름입니다. 짜라투스트라라고 왜, 니체가 쓴 그 유명한 책에 나오는 그 사람이 바로 조로아스터입니다.

    ▶ 김종배 : 그런가요?

    ▷ 서해성 : 네. 짜라투스트라가 그리스로 퍼졌을 때 그 교가 그리스식 발음이 조로아스터가 되는 겁니다. 그 짜라투스트라라고 발음을 해야 될지, 짜라투스슈라라고 발음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th'기 때문에요. 무슨 얘기인지 아시잖아요.

    ▶ 김종배 : 네.

    ▷ 서해성 : 그러니까 그렇습니다. 이 짜라투스트라는 현존했던 이름이고요. 박트리아라고 그래서 힌두쿠시산맥에서 아무다리야 사이에 있는 옛날에 고대국가입니다. 거기서 이제 태어난 사람인데, 이 사람이 만든 종교가 나중에 그리스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종교 내용은 아주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리면 아후라 마즈다라고 하는 창조주가 있습니다. 선의 신입니다, 선한 신.

    ▶ 김종배 : 아후라 마즈다?

    ▷ 서해성 : 네. 그리고 이제 앙그라 마이뉴라고 하는 악의 신이 있습니다. 종국적으로 이제 아후라 마즈다가 당연히 승리한다고 하는 거죠.

    ▶ 김종배 : 선악이네요?

    ▷ 서해성 : 네. 그런데 이 경제는 원본이 현재 없습니다. 그러니까 의식만, 리추얼(ritual)만 남아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랬는데, 이때 이제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명부와 암부라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과 지옥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 개념이 여기서 처음 등장을 했고요.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 등장한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게 이제 빛의 신으로만 완성되는 것, 곧 태양신이죠, 그러니까. 그게 미트라라는 신입니다. 이런 신앙들이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대신앙이나 기독신앙에 결정적 영향을 주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종교학자들이. 그러니까 나중에 이제 그러니까 미트라적 요소가 로마로 건너가게 됩니다. 로마로 건너가서 원래 로마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휴일, 사투른 데이라고 그러는데, 그러니까 토성축제하고,

    ▶ 김종배 : 새터 데이(Saturday),

    ▷ 서해성 : 네. 지금 크리스마스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축일과 미트라 축일이 결합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문화적 기원, 역사적 기원으로 보고 있는데, 바로 그런 것의 가장 뿌리가 되는 그런 종교를 믿는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이제 우리가 조로아스터교 하면 고대종교,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이렇게 생각해서 지금은 믿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는 얘기잖아요?

    ▷ 서해성 : 조금 믿는 사람 있는 거죠.

    ▶ 김종배 : 신도가 지금 얼마,

    ▷ 서해성 : 지구상에 보면 0.00몇 % 정도 되는 사람인데, 최대치로 한 20만 명 정도 믿는 것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 김종배 : 전 세계에서?

    ▷ 서해성 : 전 세계에서.

    ▶ 김종배 : 그중에 한 명이 프레디 머큐리였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제 이라크전쟁 때 이라크를 횡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궁금해서 한 번 가봤거든요.

    ▶ 김종배 : 전쟁 때?

    ▷ 서해성 : 네. 폭격이, 토마호크가 떨어지고 있을 적에,

    ▶ 김종배 : 무섭지 않으셨어요, 전쟁 때? 거길 갔었어요?

    ▷ 서해성 : 이라크 사람들이 더 무섭겠죠. 저야 뭐 나그네고, 그런데 하여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이제 이라크 동북쪽에 있는 쿠르디스탄이라는 데 간 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 일대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 짜라투스트라교를 믿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갔더니 그때가 마침 이제 그때 그 사람들이 설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계획을 갖고 갔던 건 아닌데, 그 설을 노르주라고 부릅니다, 그 사람들이 부를 적에.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설은 춘분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크리스마스라는 건 뭐냐면 동지절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해가 처음 뜨는 때를 얘기하는 거고, 춘분이라는 건 해와 달이, 해와, 낮과 밤이 같은 때를 얘기하는 겁니다. 바로 이때가 이제 이 사람들의 기원인 거죠. 대략 지구상에서 한 3억 명 정도가 이 노르주를 쇠고 있습니다. 현재 이란, 이라크, 이런 데 사람들, 특히 이란에서 노르주를 크게 쇠고 있습니다. 휴일이 자그마치 13일씩이나 줍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법정휴일은 3일인데, 실제로 사람들은 13일씩 휴일을 쇠는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 김종배 :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는 휴일이 너무 적어요, 그렇죠?

    ▷ 서해성 : 그렇죠. 사실 휴가가 일주일짜리는 좀 짧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요. 그러면 지금 조로아스터교 신도들만 한 20만 명,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게 조로아스터가 니체가 이야기했던 짜라투스트라,

    ▷ 서해성 : 네. 오늘 뭐 철학 시간은 아니기 때문에 그 얘기를 길게 할 수는 없고요.

    ▶ 김종배 : 갑자기 이게 니체로 가면 머리 아파지는데,

    ▷ 서해성 : 그렇지는 않고요. 니체가 주목했던 이유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니체 박사 논문이 디오니소스에 관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시대는 사실 19세기는 이성의 시대였기 때문에 디오니소스를 섬길 상황이 아니었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니체가 거기에 반격을 한 거거든요, 말하자면요.

    ▶ 김종배 : 맞아요. 맞아요.

    ▷ 서해성 : 그러니까 이 로고스의 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훨씬 더 혼돈의 신이고, 그러다가 이제 점점 공부를 하는 이제 마침내 짜라투스트라까지 옮아간 거죠. 인류의 뭐라고 할까요, 이런 종교의 혹은 이런 말씀에 가장 기원이 되는 그런 쪽으로 이동해갔다,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그런데 이제 프레디 머큐리가 조로아스터교의 신도 가운데 한 명이었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걸 흔히 파르시 혹은 영어 발음은 파시, 이렇게 되는데, 그게 이제 그 파시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뭐냐면 페르시아에서 쫓겨 와 가지고 인도 같은 데 사는, 파키스탄, 이런 데 사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릅니다, 그러면서 조로아스터를 믿는 사람들.

    ▶ 김종배 : 족보가 그렇게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바로, 프레디 머큐리가 바로 그런 집안 출신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죠? 전 세계 최대 잡아서 20만밖에 안 되는 종교를 믿는 종교적 소수자인 거죠, 사실은요.

    ▶ 김종배 : 정말 소수인이네요, 네.

    ▷ 서해성 : 샤머니즘보다 훨씬 숫자가 작은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20만이면.

    ▷ 서해성 : 그러니까 원초적으로 소수자였다, 프레디 머큐리는. 이런 것 말할 때 흔히 우리가 그것의 온재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이 이런 종교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주류가 되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 김종배 : 오히려 편견의 대상이 되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편견 대상이 되는 사람이 특성이 두 가지입니다. 끝없이 자기를 설명하거나 침묵하거나 둘 중에 하나거든요.

    ▶ 김종배 : 그렇죠. 설명하다 지쳐 가지고 침묵으로 가는 경우 많죠.

    ▷ 서해성 : 프레디 머큐리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조로아스터교는 현재 지구상에 어디에서도 종교적, 사회적 권력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자기를 설명하기는 참 어려웠을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그러니까 어떤 주류 사회에서 어떤 이 종교적 믿음에 대한 정체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던,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겠네요?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음악에 그런 특성들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제 그걸 얘기하기 위해서 사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김종배 : 그러면 프레디 머큐리의 지금 인생에 투영되는 두 번째 모순은 어떤 거예요?

    ▷ 서해성 : 가장 핵심적인 것이 아마 사회적으로 이것일 텐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잉글랜드, 곧 영국이라고 흔히 말하는 잉글랜드에서 활동을 했지만 이 사람 출신은 아프리카 동쪽 바다에 있는 인도양에 있는 작은 섬이거든요, 사실. 잔지바르라는 섬 출신입니다.

    ▶ 김종배 : 잔지바르.

    ▷ 서해성 : 잔지바르. 그러니까 그건 인도도 아니에요. 부모는 인도사람이란 말이죠, 또.

    ▶ 김종배 : 인도계라고 하더라고요?

    ▷ 서해성 : 인도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인도사람이에요. 그런데 인도에서 했는데, 이 프레디 머큐리는 인도가 아니라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거죠. 그러니까 잔지바르는 향신료의 산지로 유명합니다. 이 말은 이곳이 오랫동안 식민지였다는 뜻입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향신료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게 유럽 사람들이었으니까요.

    ▶ 김종배 : 그렇네.

    ▷ 서해성 : 그러니까 아라비아 사람들이 점령했다가, 포르투갈 사람들이 점령했다가, 영국 식민지였다가, 무슬림 시대였다가, 다시 공화정 시대로 되고, 이렇게 복잡한 운명을 거치는 것이죠. 그중에 이제 가장 큰 도시가 스톤타운이라는 곳인데, 바로 스톤타운에서 이 프레디 머큐리가 성장합니다. 사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영국, 당시 잔지바르가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그때 아버지가 영국의 식민지, 운영하는 총독 쪽, 총독부 쪽, 그쪽 사람으로 이주해왔던 것이거든요.

    ▶ 김종배 : 총독부 관료였군요?

    ▷ 서해성 : 네. 공무원이었어요, 그러니까요. 공무원으로서 여기에 와서 살게 되었던 거죠. 그런데 이제 이 프레디 머큐리는 이게 참 힘든 게 이게 인도사람도 아니고, 잔지바르 사람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니고, 묘한 정체성을 갖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거기에 또 혁명이 일어나요, 그러다가 이제. 그러니까 64년도에 혁명이 일어나니까 프레디 머큐리가 8살 때 인도로 가서 공부했거든요. 학교를 거기서 다니다가 이제 거기서 권투선수도 하고, 학교 아마추어 권투선수죠. 밴드도 만들고, 이렇게 했는데, 다시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 거예요. 돌아와서 이제 중등교육과정, 고등학교죠 그러니까. 그걸 마쳤을 그 해에 이제 혁명이 일어나 가지고 당연히 쫓겨나죠. 그렇지 않습니까? 총독부 쪽 그쪽인데, 혁명이 일어나 가지고 쫓겨나게 되어서 영국으로 오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해에 프레디 머큐리가 잔지바르를 떠났던 그 해에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탕가니카라는 나라하고 잔지바르가 둘이 통합해버립니다. 그러면서 잔지바르가 국가로서 소멸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프레디 머큐리는 고향은 있지만 고국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죠.

    ▶ 김종배 : 그러니까 종교적으로도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민족적, 국가적으로도 정체성이 없고, 그렇네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독특한 운명을 지닌 사람인 거죠. 문학적으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할 수 있겠죠. 아프리카 섬에서 태어난 어설픈 인도인이었고, 무슬림을 믿는 잔지바르에 사는 이상한 신앙인이었고, 잔지바르는 다 무슬림 사람들이거든요. 이상한 신앙인이라는 것은 조로아스터를 얘기하는 거죠. 그리고 식민지 출신 영국인이었죠. 그러니까 이게,

    ▶ 김종배 : 혹시 이름을 바꾼 게 그런 것 때문이라고 봐야 되는 건가요?

    ▷ 서해성 : 직접 그러니까 자기가 밝히지는 않았기 때문에 할 수는 없습니다만 프레디라는 말은 파로크라고 하는 발음이 어려워서 프레디로 바꿨다, 이런 말이 있고요. 이건 사실인 것 같고요.

    ▶ 김종배 : 음이 비슷해 가지고?

    ▷ 서해성 : 네. 그리고 이제 머큐리는 이제, 머큐리가 헤르메스지 않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의 심부름꾼, 뭔가 전달하는 자,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아마 음악의 전령사, 이런 뜻으로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김종배 : 본인은 밝힌 적이 없고, 이제 추정이 그렇다는 거죠.

    ▷ 서해성 : 추정이 그렇다는 거죠. 그러니까 바로 머큐리처럼, 헤르메스처럼, 헤르메스는 끝없이 이제 유랑하는 존재거든요, 실제로 신화에서도요. 아마 이런 것들이 자기의 의식 속에 조금은 들어있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우리가 그런 것 한다고 해서 다 설명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자기가 종교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그러니까 준거집단이 없으니까 떠도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사실 헤르메스를 한국말로 번역하면 경계인입니다.

    ▶ 김종배 : 그 말이 딱 맞네요.

    ▷ 서해성 : 네. 경계인입니다. 그러니까 헤르메스라는 그 어원 자체가 경계라는 뜻입니다. 헤르메스는 신이기 때문에 경계인이라고 할 수는 없고, 경계신이죠. 그러니까 그걸 한국말로 바꾸면, 사람으로 바꾸면 경계인이 되는 거죠. 아마 이게 프레디 머큐리가 영민한 사람인데, 우연히 이런 이름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종배 : 이름에 상당히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네, 이렇게 보니까.

    ▷ 서해성 : 네. 그러다가 영국에, 런던에 이제 건너왔지 않습니까? 건너와 가지고 이제 일링 아트 컬리지(Ealing Art College)를 다녔거든요. 그러니까 예술대학이라는 얘기죠. 거기서 이제 지금은 그 대학이 이제 ‘University of West London Ealing Campus'인데, 정식명칭이, 그리고 한국 학제가 좀 달라서, 왜냐하면 런던에 있는 학교들은 이렇게 UCL로 묶기도 하고, 이렇게 영국은 조금 다르게 학교를 운영합니다. 우리하고 조금 달라서 그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고요. 거기서 만난 친구가, 거기서 이제 프레디 머큐리가 산업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이게 이제 퀸의 시각적 표현에 굉장히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만난 같은 미술대학 친구가 이제 팀 스타펠이라는 친구입니다. 이 친구가 이제 음악을 하고 있었어요. 프레디 머큐리도 당연히 음악을 좋아하긴 했습니다마는 어렸을 때 피아노도 배우고 그랬으니까 이 친구의 당시의 이제, 지금도 그렇지만 영국에서 아주 가장 좋은 대학 중 하나인 임페리얼 콜리지에 다니고 있는 브라이언 메이하고 같이 밴드를 만들었던 거예요, 프레디 머큐리의 친구가. 그러니까 그래서 만든 밴드 이름이 스마일이었습니다.

    ▶ 김종배 : 스마일?

    ▷ 서해성 : 네. 그러다가 이제 임페리얼에 있는 치과대학 학생이었던 로저 테일러가 드러머로 결합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자기하고 같이 학교 다녔던 대학친구 팀 스타펠이 이 스마일 밴드를 떠나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이 친구 뭘 담당하고 있었냐면 베이스기타하고 보컬을 담당하고 있었거든요.

    ▶ 김종배 : 중요, 중요한 역할을,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베이스하고 보컬이 없으니까 당장 보컬을 그러니까 프레디 머큐리가 자연스럽게 보컬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요. 노래를 좀 할 줄 아니까,

    ▶ 김종배 : 역시 대타가 대박을 치는,

    ▷ 서해성 : 그렇죠. 대타가 대박을 친 거예요. 야구에서 대타를 집어넣었는데, 안타만 때리면 되는 줄 알았더니 홈런을 치는, 이런 경우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다가 이제 다시 베이스기타가 필요하기 때문에 베이스기타를 하나 또 구했는데, 그 사람이 존 디콘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그 친구는 이제 첼시 콜리지를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제가 이 말씀을, 학교 이름을 얘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퀸이 뭘로 유명했냐면요, 데뷔할 적에, 학력 차별하고자 하는 뜻은 추호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다 4년제 대학을 나온 아마 제가 알기로는 처음인, 거의 처음인 그런 보컬그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 김종배 : 그러면 엘리트 락 그룹입니까?

    ▷ 서해성 : 맞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평가를 받았던 그런 그룹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프레디 머큐리가 고집이 세거든요.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성장기를 거쳤기 때문에 고집이 세서,

    ▶ 김종배 : 딱 봐도 세게 생겼어요.

    ▷ 서해성 : 세게 생겼지 않습니까? 그렇죠. 스마일이라는 이름을 퀸으로 바꾸자고 그런 거요. 그룹 이름을 바꾸자. 그러면서 이제 자기가 남겨놓은 기록이 있어요. 퀸으로 바꾸게 되면 그 퀸이라는 그 이름은 시각적이고, 모든 종류의 음악이 가능하다, 이렇게 주장을 하면서 그걸 이제 바꿨죠.

    ▶ 김종배 : 알겠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어떤 그러니까 인생에 투영된 모순 이야기하고 있는데,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성 정체성, 이 문제잖아요.

    ▷ 서해성 : 그렇죠. 다들 아시는 얘기죠, 사실은요.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 그러니까 지금 앞에 말씀드린 두 가지도 소수자인데, 이것도 소수자죠.

    ▶ 김종배 : 그런데 그때 당시로 돌아가면 그 소수자의 지위가 지금하고 또 달랐던 거죠.

    ▷ 서해성 : 훨씬 낮았죠. 그러니까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87년도에 프레디 머큐리가 이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두고 스페니쉬 소프라노 가수하고 같이 바르셀로나라는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에이즈라는 게 나중에 밝혀지면서 그 바르셀로나올림픽위원회에서 음악을 빼버리는 겁니다, 목록에서.

    ▶ 김종배 : 금지곡 지정해버리는,

    ▷ 서해성 : 말하자면 금지곡까지는 아니지만 채택을 안 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만큼 편견이 심했다는 거죠, 사실은. 그 80년대라고 하는 걸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동성애 혹은 양성애자에다가 에이즈 환자였단 말이죠, 사실은요. 그 당시에 프레디 머큐리가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라는 걸 한 번 생각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이 라이브에이드, 유명한 1985년도 웸블리 공연이 프레디 머큐리의 그 질병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시면 그건 아니고, 그 당시에 프레디 머큐리는 이 에이즈가 걸려있다는 걸 사실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 김종배 : 본인도?

    ▷ 서해성 : 네. 87년도에 이제 진단을 받았고요. 그러니까 그것하고 연결해서 생각하실 필요는 전혀 없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이런 조건 속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살고 있었다 하는 생각,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자기애 없으면, 자기애가 없으면 무너져버리는 거거든요, 사실은요.

    ▶ 김종배 : 정신적 고통이 대단했을 것 같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보면,

    ▷ 서해성 : 나중에 이제 에이즈 소문이 퍼지면서 퀸이 런던에서 활동할 수가 없었어요. 프레디 머큐리의 패딩턴에 있는 집 화장실로까지 카메라 기자들이 들어오고, 막 이런 상황이 됐거든요. 그러니까 나중에 스위스로 떠납니다. 스위스로 떠나 가지고 이제 거기서 몽퇴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레만 호수 아주 아름다운 곳인데, 저도 가본 적은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몽퇴르에서 이제 작업을 했고, 지금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도 몽퇴르에 있습니다, 그래서, 런던에 있질 않고.

    ▶ 김종배 : 그러니까요. 지금 3개의 어떤 모순을 지금 작가님이 말씀해 주셨지만 상당히 어려운 거잖아요. 요즘 개념으로 멘탈이 대단했고, 내지 인내력이 대단했다, 이렇게밖에는 볼 수 없는 거잖아요, 사실은. 오히려 그리고 그걸 음악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승화시켰다, 이런 표현을 이때 써야 되는 건가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프레디 머큐리 유언을 제가 한 번 한 대목만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에이즈다. 에이즈는 결코 나을 수 없는 불치의 병이기에 나의 음악과 나의 영혼이 함께 묻혀 이 세상에 사라지기 전에 이 사실을 오늘에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이 지금 이 방송하고 있는 11월 23일이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그리고 이 말을 한지 24시간 뒤인 11월 24일에 사망했습니다. 내일이 그러니까 프레디 머큐리의 기일입니다.

    ▶ 김종배 : 그렇네요. 그런데 지금 작가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까 대표곡이 ‘보헤미안 랩소디’이고, 보헤미안하면 집시가 연상이 되고, 정체성 없이 떠도는 집단,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이렇게 연결하면 결국 프레디 머큐리의 삶인 거기도 한 거잖아요?

    ▷ 서해성 :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프레디 머큐리가 무슨 가사를 써놓고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사실 실제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데 흔히 이제 사람들이 머큐리의 옥타브가 높다, 그래서 대단하다, 이렇게 말하는데, 사실 옥타브가 높은 것하고 팝가수는 그렇게 큰 연관이 없습니다. 밥 딜런은 한 옥타브 반도 안 됐거든요. 노벨문학상도 받았고, 세계적인 가수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네. 그렇죠.

    ▷ 서해성 : 그러니까 그보다는 남자가 4옥타브를 올려야 될 때는 언제일까요? 울 때도 아니거든요. 말할 때도 아니거든요. 오직 울부짖고 절규할 때입니다.

    ▶ 김종배 : 그렇죠. 절규죠.

    ▷ 서해성 : 그러니까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 이 보헤미안 랩소디가 아름다운 것은 프레디 머큐리의 삶이 절규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4옥타브를 올려야 될 만큼의 그럴 이유가 이 사람의 삶의 성장기에 없었다고 한다면 4옥타브를 가질 필요가 없었겠죠.

    ▶ 김종배 : 그러니까요. 참 그렇게 보니까 이 대표곡도 새롭게 들리네요. 또, 그룹 퀸 얘기까지 갔으면 좋겠는데, 시간상 이건 도저히 갈 수가 없을 것 같고요.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 서해성 : 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 프레디 머큐리가 음악교육을 대학에서 받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거든요. 팝가수들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렇긴 한데, 디자인학과 출신이었다는 게 도리어 굉장히 장점이 되었습니다. 자켓 디자인을 대부분 이 사람이 직접 하거든요. 그리고 이제 의상도 그렇고, 물론 다른 영향도 받았습니다만,

    ▶ 김종배 : 런닝 셔츠,

    ▷ 서해성 : 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본격적으로 최초로 만든 그룹이 퀸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이제 프레디 머큐리가 갖고 있는 시각적 훈련 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리고 영향 받은 사람들, 이런 시각적으로 영향 받는 사람 중에 대표적으로 꼽는 사람 마를린 디트리라고 하는 독일 출신의 미국에서 활동했던 그런 사람들, 음악적으로 존 레논, 음악 내용적으로는 이런 영향을 받았습니다마는 또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받기도 하고, 그런데 그 얘기는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하여튼 그러니까 그 락이라고 하는 최고지에 도달했던 게 68년, 69년이거든요. 바로 언젠가 이 시간에 얘기한 적 있었습니다만 미국에서 있었던 그 유명한 우드스톡 페스티벌이죠.

    ▶ 김종배 : 네. 맞아요.

    ▷ 서해성 : 바로 68혁명이라고 하는 그 시기에 바로 이 대학을 다녔던 것이 퀸입니다. 그러니까 그룹을 결성한 것은, 퀸을 결성한 건 71년입니다만 바로 그 중심에 있었다 하는 것을 같이 말씀,

    ▶ 김종배 : 말 그대로 락 스피릿,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이게 뿌리가 거기에 있다, 이렇게 봐야 되는 건가요?

    ▷ 서해성 : 아니. 그러니까 그 피크에, 최정점에 올라왔을 적에 그랬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지 머큐리의 노래가 아름다운 것은 머큐리 유언에 나오듯이, 유언을 찾아보시면 다 나옵니다. 나오듯이 차별받은 소수자였습니다. 유언에 그 말이 나와 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차별받았는가에 대해서. 차별은 한국 법조문에는 없지만 관습범죄이고, 사실의 관습형벌입니다. 그러니까 프레디 머큐리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를 들을 때 프레디 머큐리의 가슴속에 들어있는 절규도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김종배 : 이렇게 설명말씀 듣다 보니까 노래가 새롭게 다가오네요. 정말 다시 한 번 들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집에 가서. 알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마무리하고 인사 나누겠습니다. 지금까지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해성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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