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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의 박학다설] 팝팝팝, 팝 이야기
최은지
tbs3@naver.com
2018-11-30 20:42
색다른 시선
[서해성의 박학다설] 팝팝팝, 팝 이야기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8. 11. 30. (금)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 김종배 : 우리시대의 지식광대입니다. 서해성 작가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서해성 : 네.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오늘 어떤 이야기 나눠볼까요?
▷ 서해성 : 지난주 방송한 뒤에요, 항의 아닌 항의를 좀 받았습니다.
▶ 김종배 : 왜요?
▷ 서해성 : 김종배 선생님 때문에 그렇죠.
▶ 김종배 : 네? 제가 왜요?
▷ 서해성 : 팝송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게 좋겠다.
▶ 김종배 : 아, 팝송 10부작?
▷ 서해성 : 네. 그렇게 얘기했더니 실제로 제 지인들이 그걸 팝송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하는 게 좋겠다. 왜냐하면 우리가 팝송을 많이 듣긴 하지만 사실 팝송의 내력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같이 기왕에 수십 년 동안 들어왔는데, 그 얘기를 한 번 정리해 주면 좋겠다,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 김종배 : 이럴 때 쓰는 이제 전문용어가 불감청고소원이라고,
▷ 서해성 : 그렇군요.
▶ 김종배 : 그럼 오늘부터 그냥 앞으로 10주 동안 팝의, 팝 10부작,
▷ 서해성 : 그럴 수는 없고요. 팝송에 대한 개념적인 얘기 오늘 좀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개념만 하고 만다고요? 아니. 세상에 제일 재미없는 게 개념인데,
▷ 서해성 : 개념도 재미있게 할 테니까 너무
▶ 김종배 : 개념만 하고 끝나면 재미가 없죠.
▷ 서해성 : 알겠습니다.
▶ 김종배 : 또, 또 항의 받아요. 10부작, 콜?
▷ 서해성 : 사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팝음악 소개가
▶ 김종배 : 대답을 안 하시네, 대답을.
▷ 서해성 : 지나치게 어떤 뭐랄까, 음악을 듣는 것 중심, 그러니까 유행중심, 소비중심으로만 이해해온 측면이 사실 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있죠.
▷ 서해성 : 사실은 그런 문화현상은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 김종배 : 제목도 딱 나왔네, 팝의 사회사.
▷ 서해성 : 뭐 그런 거죠.
▶ 김종배 : 10부작, 네. 지금부터 1탄 가겠습니다. 팝이란 무엇입니까?
▷ 서해성 : 네. 그렇죠. 팝이라는 말은 팝뮤직 혹은 포퓰러 뮤직, 그런 말의 줄임말이죠.
▶ 김종배 : 그렇죠. 그렇죠.
▷ 서해성 : 네. 그런데 이게 흔히 이제 미국 중심의 대중음악을 통칭하는 그런 말입니다. 한국말로 바꾸면 유행가죠, 사실은요. 대중 유행가죠.
▶ 김종배 : 그렇죠. 포퓰러 뮤직이니까 유행가네, 진짜.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듣기 쉽고, 따라 부르기 쉬운 그런 음악을 얘기하는 거죠. 그런데 한국인이 갖고 있는 어떤 특성이 있는데요. 한국인들이 팝뮤직이라고 말할 때는 주로 미국음악을 얘기합니다.
▶ 김종배 : 그런가요?
▷ 서해성 : 그런데 미국사람한테 팝뮤직이라고 그러면 그건 거기에는 케이팝도 포함됩니다. 한국이 팝뮤직이라는 말 속에서 일종의 미국에 대한 선망 같은 게 좀 들어있는 그런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텐데, 오늘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팝뮤직을 얘기하겠습니다. 미국인은 당연히 케이팝도, 제이팝도 그렇고, 당연히 그것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팝이라고 하는 게 사실 음악의 장르는 아닌 거죠.
▷ 서해성 : 그렇죠. 대중음악을 얘기하는 거죠. 그 특성은 이제 듣기 쉽고, 영어로 이제 그걸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 김종배 : 이지 리스닝?
▷ 서해성 : 네. 영어를 제가 표현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지 리스닝 뮤직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듣기 쉽고, 또 따라 부르기 쉬운 음악을 얘기하는 거고요. 노랫말은 대부분 아주 자연스럽고, 그리고 구어체입니다. 그러니까 입말이라는 거죠. 이렇게 문어체 투가 아니라는 거죠. 주제는 대부분이 로맨스한 내용입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이런 게 팝뮤직이 갖고 있는 특성인데, 사실 이런 역할은 중세시대에는 발라드라고 하는 것이 이런 걸 수행해왔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발라드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발라드는 무운시가를 얘기하는 겁니다.
▶ 김종배 : 원래 뜻이?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뭐냐면 일종의 기사문학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데 그 내용이 로망스했던 겁니다. 무슨 얘기냐,
▶ 김종배 : 로망스, 네.
▷ 서해성 : 네. 무슨 얘기냐면 그 기사가 그냥 싸우는 얘기만 있는 게 아니라 어디 가서 연애를 하는 거예요.
▶ 김종배 : 그러니까 미녀를 구해 주거나,
▷ 서해성 : 그렇죠. 그 얘기입니다.
▶ 김종배 : 그렇죠. 이렇게 가죠.
▷ 서해성 : 네. 그런 이야기를 그냥 얘기하면 이야기꾼이죠, 텔러가 하는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런데 그렇지 않고, 거기에 어떤 피들(fiddle), 그러니까 뭐죠? 바이올린인데, 민간인이 쓰는 속된 악기를 피들이라고 이제 그렇게 말하는데, 그런 것 같은 것들을 연주하면서 같이 이제 들려주는 거죠. 그러니까 그게 바로 싱어 송 라이터죠, 말하자면 요즘말로 하면요, 그러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그렇게 하는 들려주니까 사람들이 그걸 재미있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보면 재미없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스토리에다가 음악까지 입히면,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왜 그 당시에는 재미있었냐면요, 그 당시에는 이렇게 연이 있는, 연이 행동하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같은 사회, 이렇게 예술이 많은, 소비되는 문화가 많은 사회에는 중세가 전혀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인구이동이 거의 없었죠.
▶ 김종배 : 그렇죠. 그렇죠.
▷ 서해성 : 그리고 인구이동이 사실은 불법이었습니다.
▶ 김종배 : 농경사회니까 토지에 결박되어 있었죠.
▷ 서해성 : 네. 결박되어 있었죠. 그리고 결박됐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법으로 불법이었다고요.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그나마 이렇게 뜨내기로 인정받는 사람 혹은 집시, 이런 사람들이 외부 소식도 전해줬고요. 그렇죠. 우리 고을 말고 다른 고을에 있었던 얘기들도, 그리고 가락을 섞어서 소식을 전해줬죠. 그러니까 그 당시에 그런데 정치적 비판이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기사나 로맨스나 이런 얘기들을 불렀고, 사람들이 이런 경향을 ‘로만스’라고 부른 겁니다. 우리가 일본말로 그걸 낭만이라고 번역한 것 말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이 언어에 대해선 얘기했기 때문에 오늘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 김종배 : 그게 로망스다?
▷ 서해성 : 네. 그게 로망스가 된 것입니다. 일단 그런데 이제 이렇지 않습니까? 과거에 이제 락이 한참 유행할 적에 락을 하거나 포크송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팝뮤직 혹은 팝가수라고 부르지 않은, 않으려고 하는 그런 태도들도 있었습니다.
▶ 김종배 : 뭔지 알겠어요, 네.
▷ 서해성 : 이게 무슨 얘기냐면 포퓰러 뮤직이라는 건 사실 상업 음악을 얘기하는 겁니다.
▶ 김종배 : 난 너희와 달라.
▷ 서해성 : 그렇죠.
▶ 김종배 : 딱 있지.
▷ 서해성 : 네. 바로 이제 그런 태도들을 우리가 언더그라운드한 태도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다고 해서 비상업성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은 그것까지가 사실은 상업성이었는데, 비상업성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시장화 된 음악에 대한 일종의 저항적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대체로 그리고 이 음악들은 사회비판적인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보면 포괄적으로는 시장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러나 당시에는 대단히 의미 있는 행위였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그런데 팝이 보통 어떻게 나뉘는 거예요?
▷ 서해성 : 팝은 사실 구분하는 건 너무 간단합니다, 팝 구분하는 것은. 미국의 대중음악은 백인음악과 흑인음악으로 나뉘어서 발전해왔습니다. 간단한 겁니다, 그것은요. 그러니까 백인음악의 그 범주를 흔히 말해서 컨트리 음악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컨트리 음악은 특성이 밝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대해 그리워하고, 그리고 소박하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런데 그게 이제 이게 팝뮤직으로 이동해 가는데, 컨트리 웨스턴이라고 그래서 이제 컨트리 음악의 서부, 서부를 개척하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제가 지금 서부 얘기하려고 그랬어요.
▷ 서해성 : 네. 그쪽 개척하면서 그렇게 부르는 거고, 주로 이제 그 악기가 밴조(Banjo) 악기, 밴조,
▶ 김종배 : 밴조, 네. 그렇죠, 밴조.
▷ 서해성 : 네. 그 왜 포스터라고 하는 사람이 만든 노래, ‘밴조를 튀기며 나는 너를 찾아왔노라’라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 노래 있죠.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바로 그런 것처럼 그렇게 했던 것들이 이제 하나의 이제 팝 쪽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제 흔히 이제 컨트리 음악하고 포크뮤직을 혼동하실 수가 있는데, 컨트리도 포크의 일종이죠, 고전적 의미로는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포크라고 말하는 것은 모던 포크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모던 포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포크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트 시거(Pete Seeger)라고 하는 사람하고 몇몇 사람들이 이제 서로 만들어낸 하나의 장르입니다. 그래서 모던 포크는 하나의 지역, 어느 나라의 컨트리 뮤직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포괄적으로 각 지역에 있는 여러 가지 포크뮤직들을 묶어서 다시 근대적으로 재구성한 그런 음악을 얘기하는 것인데,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제가 얘기해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 김종배 : 2부.
▷ 서해성 : 워낙에 이제 포크 자체가 중요한 장르기 때문에요. 그리고 이제 흑인은, 제가 여기서 인종차별적인 표현이 될 수 있는 표현을 오늘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그러니까 앞으로 아메리칸 음악이라고 그렇게 말해야 되는데, 그럼 이게 흑인음악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럼 얘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제가 그걸 그냥 통칭해서 흑인음악이라고 말하는, 영어로 ‘블랙 뮤직’이라고 인종차별적으로 그렇게 사용했던 말이 있는데, 오늘 제가 불가피하게 그런 언어를 쓰셔도 좀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블랙뮤직’은 이제 기본적으로 출발이 가스펠입니다.
▶ 김종배 : 가스펠.
▷ 서해성 : 그리고 이제 블루스, 흔히 우리가 듣고 있는,
▶ 김종배 : 재즈.
▷ 서해성 : 재즈 그리고 알앤비, 이런 음악들이 흑인음악들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자면 사실은 컨트리 음악은 미국 음악에, 팝뮤직에 그렇게 큰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음악이 아닙니다.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의 상당부분들은 흑인음악,
▶ 김종배 : 흑인음악이죠.
▷ 서해성 : 흑인음악의 요소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음악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러니까 비율로 치면 아마 아무리 작게 잡아도 70% 정도가 이제 흑인음악에서 결정, 오늘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의 많은 부분들이 결정되었다.
▶ 김종배 : 맞아요.
▷ 서해성 : 네. 지금 우리가 나오고 있는 힙합음악 같은 것, 다 전적으로 그것도 다 흑인음악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사실 백인음악은 굉장히 단순해서 컨트리 뮤직이라는 것은 뭔 대단한 내용이 사실 없습니다. 하물며 이제 이렇게 되니까 나중에 락할 때 약간 분위기를 띄우는 음악을 오죽 했으면 ‘화이트 블루스’라고 그랬겠습니까? ‘백인 블루스’라고,
▶ 김종배 : 네. 그 얘기도 들어봤네요.
▷ 서해성 : 오죽 했으면 그렇게 나왔겠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백인들이 이렇게 음악을 못하는 거야?’라는 사실 그 안에 그런 게 들어있는 말이지 않습니까, 사실은요? 그러니까 하물며 그렇게까지 나아갔다. 이따가 조금 더 자서한 말씀드리겠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이제 팝의 이제 분류를 하셨는데, 보급도 좀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은데,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사실은 그 이전에는, 20세기 이전에 팝이라는 건 없었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음악적 기술이 없어서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 김종배 : 거의 대부분이 그냥 사람들 앞에서 그냥 직접 부르는 거였지.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결국은 전파수단이 나오면서,
▷ 서해성 : 네. 전파수단, 미디어 없이는 팝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 김종배 : 그렇죠. 그렇죠.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20세기 기술 진보와 함께 팝뮤직이라는 게 형성된 겁니다. 그 기술 진보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레코드죠.
▶ 김종배 : 레코드. 그렇죠, 레코드.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소리를 축적하는 기술, 일본이 그 영어를 축음이라고 번역한 겁니다.
▶ 김종배 : 축음기.
▷ 서해성 : 네. 축음은, 축음은 소리를 쌓았다는 뜻이거든요, 직역하면요. 그러니까 소리를 축적하는 그 기술, 레코드의 등장이죠. 그러니까 어떤 고체의 물건에 소리를 고정하는 장치를 얘기하는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에디슨이 이렇게 대중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소리 전파 기술, 무선 기술입니다, 그러니까.
▶ 김종배 : 라디오.
▷ 서해성 : 네. 유선으로도 할 수 있지만 유선으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러니까 무선 기술이 발전했는데, 바로 무선 기술의 그 무선, 음성신호를 붙잡는 장치를 레시버(receiver)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 레시버의 말이 래디오거든요.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무선 주파수를 잡아내는 장치 래디오가 등장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음악이 생기게 된 거죠. 그러니까 대중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을 넘는 리듬이 있는 소리를 공유하게 되었던 겁니다, 라디오의 등장과 함께요.
▶ 김종배 : 그러니까 대중음악이 말 그대로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게 바로 레코드와 라디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 1930년대 독일의 아주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는데요. 에른스트 블로흐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동시성의 비동시성, 그러니까 1930년대 독일이라는 게 19세기 요소하고, 21세기 요소하고, 20세기 요소하고 같이 있다, 말하자면, 아주 쉽게 구분하자면 그런 것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이게 음악에도 이 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이게 라디오라고 하는 게 세계의 공간을 비공간화한 것이거든요.
▶ 김종배 : 그렇죠. 공간을 뛰어넘는 거니까,
▷ 서해성 : 그렇죠. 뛰어넘는 거니까, 네, 바로 그겁니다. 바로 이 블로흐가 말했던 비동시성의 동시성 같은 것들이 이제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청각을 동일성으로 현재가 존재하게 되는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 직업이 뭐든, 공간이 어디든 관계가 없는, 그래서 사실 세계를 공유하게 되는 것 같은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거죠.
▶ 김종배 : 맞아요.
▷ 서해성 : 나중에 언젠가 이 방송에서 제가 박학다설 끝나기 전에 한 번은 하려고 그랬는데, 바로 이때 파시즘이 등장합니다.
▶ 김종배 : 그렇죠. 파시즘하고 라디오하고는 떼려야 뗄 수가 없죠.
▷ 서해성 : 라디오 시대가 파시즘의 시대입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아주 간단히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러니까 박정희 시대가 바로 라디오 시대였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네.
▷ 서해성 : 그렇죠.
▶ 김종배 : 라디오의 흑역사라고 해야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흑역사라기보다 사실은 라디오의 어쩌면 본질입니다. 시장화와
▶ 김종배 : 아니.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떡해?
▷ 서해성 : 그렇군요. 이 방송은 좋은 방송입니다.
▶ 김종배 : 지금 그 얘기하고 있는데,
▷ 서해성 : 이게 지금 우리가 라디오 방송하고 있었군요.
▶ 김종배 : 라디오에요, 라디오.
▷ 서해성 : 그렇군요. 그러니까 그런데 이제 라디오 기능이 점점 발전하면서 사회비평 기능도 생기는데, 지금 같은 비평기능을 하고 있는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그 말씀을 하셔야 되는 거지. 답변을 강요하고 있어, 지금.
▷ 서해성 : 소리의 대중화와 함께 정치권력이 이 소리를 이용하기 시작했던 거죠. 그 얘기는 따로 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라디오가 어떻게 나오게 되는 거죠, 이게?
▷ 서해성 : 라디오라고 하는 게 이제 우리가 다 알다시피 이제 20세기 정확하게 1901년에 최초로 이제 전파를 음성을 전달하는 기술이 생기게 되는 거고요. 그러다가 이제 1906년에 미국에서 이제 처음으로 그날이 일부러 크리스마스이브에 썼습니다. 12월 24일 날,
▶ 김종배 : 이 낭만.
▷ 서해성 : 그렇죠. 레지널드 페센든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무선송출을 했고요. 그리고 이제 그 목소리, 그 사람의 목소리와 마지막에 이제 캐롤이 흘러나왔습니다, 캐롤송이. 그리고 마지막 방송은 해피,
▶ 김종배 : 뉴,
▷ 서해성 : 메리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 이렇게 방송을 이제 했던 거죠. 이것을 당연히 누가 주목했겠습니까? 자본가와 정치가가 주목했습니다.
▶ 김종배 : 그렇겠죠.
▷ 서해성 : 네. 그렇습니다. 바로 최초 출발과 함께 시작된 게, 본격화된 게 1920년인데요. 미국 전자회사, 지금은 이제 이 회사가 원자로를 만드는 회사인데요. 웨스팅하우스라는 회사가 피치버그에서 세계 최초로 정규 라디오방송 KDKA를 개국했습니다. 그리고는 개국하자마자 곧 미국의 제29대 대통령선거 개표방송을 했습니다.
▶ 김종배 : 바로?
▷ 서해성 : 몇 개월 있다가, 그러니까 이렇지 않습니까? 신문이라는 게 영어로 하면 뉴스페이퍼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맞아요.
▷ 서해성 : 새로운 것이 찍혀있는 신문, 종이, 그 말이잖아요, 사실은요. 그런데 뉴스페이퍼는 이 전달능력에서 라디오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죠.
▶ 김종배 : 게임이 안 되죠.
▷ 서해성 : 아무리 빨라도 12시간 뒤늦게 오는 거죠. 그러니까 그래서 이 대통령, 29대 대통령선거 이후에 라디오가 대량생산체제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사실은 자본가와 정치인도 대중이 존재해야만 존재하는,
▷ 서해성 : 그렇죠.
▶ 김종배 : 그런 거니까,
▷ 서해성 : 그렇죠. 그리고 이제 라디오에 의해서 전 세계적으로 물건을 팔 수 있는, 그 전에는 소문을 듣고 알았는데, 이제 광고, 커머셜한 그런 것들이 송출되고, 또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었으니까,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섞거나 혹은 묶거나 할 수 있는 것들이 가능해졌다는 거고, 한국에서는 이제 27년도에 경성방송국이 개국했는데,
▶ 김종배 : 경성방송국.
▷ 서해성 : 네. 팝송을 소개한, 팝뮤직을 소개한 것은 64년도 KBS 라디오에 ‘금주의 히트 퍼레이드’ 그래서 ‘빌보드 원 헌드레드 차트 바운드’를 최초로 소개했습니다.
▶ 김종배 : 대한민국 라디오 역사에서 사실은 팝을 소개했던 DJ, 전설같이 내려오는 DJ 몇 분이 계시죠.
▷ 서해성 : 그렇죠. 이제 최초의 DJ가 최동욱이라고 하는 분이고요. 올해 돌아가셨던 분 있으시죠. MBC에서 박원웅이라고 하는 분이 있었고, 김기덕이라고 하는 분이 있었고, 다들 이제 은퇴하셨지만 그렇죠.
▶ 김종배 : 아마 그때가 라디오의 최전성기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 서해성 : 그 라디오 시대 때 등장했던 대표적인 사람 이수만이라는 DJ가 있었죠. 지금 SM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죠. 그런 라디오 시대가 있었죠.
▶ 김종배 : 그러게요. 제 어릴 때 라디오에서 라디오 드라마가 있었는데, 전 지금도 안 까먹는 게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라디오 드라마를 했는데, 저 청소년 시절에는 라디오를 끼고 살았죠, 사실은.
▷ 서해성 : 그렇죠. 집이 가난했다는 뜻이죠.
▶ 김종배 : 뭘 또 그렇게 연결을 해.
▷ 서해성 : 텔레비전이 없었다는 얘기,
▶ 김종배 : 그러니까 거의 특히 여고생, 여중생 같은 경우는 라디오 음악프로 DJ에게 어떤 사연 보내고, 채택되어서 라디오에 이제 소개가 되면 난리가 나는,
▷ 서해성 : 네. 그런데 그때 많은 라디오방송들이 생방송이었습니다.
▶ 김종배 : 네. 그러니까요.
▷ 서해성 : 이유가 뭐였냐면 녹음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생방송이었습니다.
▶ 김종배 : 계속 어두운 면을 강조하고 계시는,
▷ 서해성 : 어두운 면이 아니고, 그때 방송들이 상당히 재미있었다는 말씀을 제가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 김종배 : 그럼요. 레코드는 어땠어요, 레코드는?
▷ 서해성 : 레코드는 이제 19세기 중반쯤 되면 이제 음성을 기록하는 그런 것들이 나오고, 이제 유명한 벨, 우리가 벨이라는 말을 부르게 된 것도 1876년에 그람 벨이 전화기를 발명을 하고,
▶ 김종배 : 벨 하면 전화기였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1877년에 그 유명한 에디슨이 이제,
▶ 김종배 : 또 에디슨이,
▷ 서해성 : 원통형 레코드를 발명을 하죠. 원래 그 목적은 눈이 잘 안 보이는 분들을 위한 보조 장치로 이것을 개발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애초에는. 그랬다가 이제 이게 일본을 통해서 한국에 들어오게 됐는데, 우리가 축음기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 이제 바로 일본이 그렇게 번역을 했기 때문에 쓰게 된 거죠. 그리고 이제 최초의 레코드판을 만들 때는 지금 같은 이런 셀룰로이즈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레코드판이 던지거나 떨어뜨리면 잘 깨졌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다가,
▶ 김종배 : 맞아요.
▷ 서해성 : 점점 이렇게 이제 석유화합물로 점점 이전을 했던 거고, 또 하나 이제 그리고 옛날에 왜 레코드판에 바늘이라고 있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있었죠.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그 카트리지를 바늘이라고 그렇게 했는데, 사실 바늘이라는 말이 한국에서는 더 맞는 거죠. 그러니까 그 바늘을 자꾸 교체해 주는, 이제 그렇게 했던 거죠. 그러니까 레코드판에 어떤 수명이 있었던 거죠, 마모되는 수명이.
▶ 김종배 : 그러니까 요즘 다시 LP판이 부활하는 인기를 끌고 있다는 뉴스도 있고 했는데,
▷ 서해성 : 네. 실제로 LP판으로 들으면 더 좋은 건 사실입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왜냐하면 인간은 청각 중에서 CD로는 다 안 나오는, CD가 다 못 잡는 소리가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데시벨이, 그러니까 실제로 들었을 때 조금 더 약간,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드신 분들은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차피 그 데시벨은 들리지 않습니다. 젊은 분들이 LP를 듣는 것은 실제로 더 음악적으로 조금 더 매력 있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합니다.
▶ 김종배 : 그런데 LP 말고 SP도 있나요?
▷ 서해성 : 네. SP가 원래 먼저 나온 그런 것입니다.
▶ 김종배 : 어떻게 다른 거예요?
▷ 서해성 : SP는 스탠다드 플레이라고 원래 나왔는데, 분당 78번 회전하는 그런 거죠. 그렇습니다. LP라고 하는 것은 이제 콜롬비아사가 만든 레코드판 회사죠. 그러니까 그게 이제 33과 3분의 1 회전, 그러니까 이해 가시죠, 무슨 얘기인지? 롱 플레이 디스크라고 그래서, 이게 롱 플레이 디스크라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이제 RCA라고 유명한 레코드회사지 않습니까? 그 회사에서 이제 분당 45번 도는 그런 걸 만들었죠. 그러니까 나중에는 턴테이블이라고 해서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그걸 턴테이블인데, 턴테이블에 장치가 아예 두 개가 되어 있었죠. 하나는 33과 3분의 1이 도는 회전수가 있었고, 하나는 45번 회전하는 것이 있었고, 그렇게 애초에 이제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레코드판이라고 하는 것은 LP, 롱 플레이 디스크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롱 플레이 디스크가 왜 중요했냐 하면 이 롱 플레이 디스크 기준이 뭐냐면 대개 오페라나 클래식을 판 하나에서 들을 수 있는, A, B면, A면, B면,
▶ 김종배 : 축음기라고 할 때 그 축의 어떤 규모가 이제 또 좌우가 되는 건가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거기에 맞춰서 했던 거고요. 실제로 이제 그러니까 음악들도 이제 여기에 맞춰서 작곡을 해야 했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대개 요새 현대음악이 대개 60분을 넘지 않는 이유입니다. 60분 이상이 넘게 되면 곤란했던 거죠.
▶ 김종배 : 축이 안 되는 거지.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왜 이런 것들 앨범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앨범이라고 하죠.
▷ 서해성 : 왜 그러냐면 과거에는 롱 플레이 디스크가 나오기 전에는 수십 장으로 레코드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앨범처럼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켓 안에 여러 개를 넣어야 했습니다. 20장, 30장을 넣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 김종배 : 앨범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거예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한 장이면 앨범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자켓 안에 디스크가 하나가 있는 거죠. 여러 개를 넣기 때문에 그게 앨범처럼 넘기면서 판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죠. 그런데 사실은 교향곡을 듣다가 판을, 디스크를 갈아 끼우게 되면 듣는 그 감이 많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러니까 LP가 나왔을 적에 클래식주의자들이나 클래식을 듣는 사람들은 굉장히 환호했고, 좋아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지금 이제 팝이 말 그대로 이제 포퓰러 뮤직이 될 수 있었던 그 기술적 기반, 그러니까 라디오와 레코드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이제 거 팝의 종류, 블루스, 재즈, 컨트리, 이런 것들을 이제 말씀하셨잖아요. 이게 이제 어떻게 이제 이걸 규정을 해야 되는 거예요? 블루스라고 하는 건,
▷ 서해성 : 블루스라는 그 말 자체가 슬프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네.
▷ 서해성 : 그러니까 블루하다는 그 말이, 우리가 다 알다시피 미시시피라고 하는 늪지대에서 태어났습니다, 블루스라는 말이. 그리고 이제 재즈라는 말은 이른바 뉴올리언즈,
▶ 김종배 : 그렇죠. 여기 빼면 얘기가 안 되죠.
▷ 서해성 : 네. 선술집에서 태어났죠.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시면, 그리고 이제 컨트리 뮤직이라는 것은 테네시에 있는 네쉬빌에서 1920년대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어서 그게 이제 뉴욕으로 이동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탠다드 팝 같은 형태로 이제, 그리고 이제 그 무렵에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번창하게 되고, 그러는 백인음악으로써 일정하게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고요. 얘기를 시간이 별로 없어서 얘기를 조금 줄여 가자면 40년대 이르러서 비로소 흑인음악이 백인 청년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40년대에, 네. 그리고 이제 50년대 들어서 로큰롤이라고 하는 게 등장하면서 팝의 역사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말 중에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 중에 40년대에 알앤비가 청년들 사이에 퍼졌다. 이게 사실 어떻게 된 거냐면요, 사실 이 최초로 백인 남성들이 흑인 남성들과 어울려 지낸 것이 무슨 사건이었냐면요, 2차 대전이었습니다.
▶ 김종배 : 40년이, 그러니까 40년대면 2차 대전이죠.
▷ 서해성 : 2차 대전에 최초로 동료가 된 겁니다.
▶ 김종배 : 그렇구나, 네.
▷ 서해성 : 네. 그리고 사실은 흑인, 굳이 조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 이전에는 노예 신분이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국가에서 그렇게 혜택도 못 받은 사람들인데, 미군이 미국 정부에서는 이 사람들 징병해야 했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그리고 이 사람들은 흑인부대를 따로 만들 수는 없었거든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전투가 됐겠습니까?
▶ 김종배 : 안 되죠.
▷ 서해성 : 흑백전투가 일어났겠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러니까 같은 부대에 편성했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전우가 된 거죠.
▶ 김종배 : 그렇네요.
▷ 서해성 : 네. 전우가 되는 그 친구들이 흥얼거리는 그 음악, 그리고 실제로 그때부터 흑인음악을 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김종배 : 왜요?
▷ 서해성 : 흑인장병들이 많이 나가있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러니까 군 장병한테 꼭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이제 위무기능,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그러면서 그때 이제 군대에서 복귀한 사람들이 보니까 흑인들 음악이 굉장히 재밌잖아요.
▶ 김종배 : 좋죠.
▷ 서해성 : 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것 거의 대부분이 흑인음악이니까,
▶ 김종배 : 따라하게 되죠.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이제 거기에 반영되어서 40년대에 오면 드디어 백인 청년들이 그런 음악을 했다라는 것으로 이렇게 아주 간략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김종배 : 팝의 사회사가 이제 본격적으로 나오네. 50년대로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 서해성 : 50년대라고 하는 것은 한국에도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해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전쟁이 있었죠.
▷ 서해성 : 전쟁이 있었죠. 미국에서도 정말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내면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2차 대전 승리로 미국이 최고의 성장기를 구가했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런데 사실 1920년대에도 미국이 최고의 성장기를 구가했습니다. 1차 대전의 승전국이었지 않습니까? 돈을 많이 빌려줘 가지고 또 빚도 많이 받았지 않습니까? 이자도 많이 받고, 20년대에 미국에 중요한 지식인들이 출현합니다. 바로 미국의 풍요를 거부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풍요는 죄지은 풍요라는 겁니다.
▶ 김종배 : 피로,
▷ 서해성 : 네. 피로 얻은 풍요라는 거죠. 1950년대 미국 청년들도 아버지 세대가 거두어들인 피로 얻은 풍요를 거부합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입니다.
▶ 김종배 : 제임스 딘.
▷ 서해성 : 네, 제임스 딘. 그러니까 이게 사람들이 그냥 제임스 딘이 사춘기에 화가 나서 이런 게 아니고요. 미국의 풍요사회에 대한 거부였던 거죠.
▶ 김종배 : 그럼 제임스 딘이 우리는 어떤 반항, 청춘, 이렇게만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시대의 아이콘이었네요.
▷ 서해성 : 그렇죠. 시대의 아이콘인 겁니다. 그러니까 제임스 딘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가 아니라 제임스 딘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봐야 됩니다.
▶ 김종배 : 우리가 이제 제임스 딘 하면 우수에 찬 눈동자, 가죽점퍼에 오토바이, 다 이렇게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지금.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그 내용이 아주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에 그리고 가전제품하고 자동차가 일반화됐습니다.
▶ 김종배 : 그러면 이제 카오디오가 따라오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카오디오가 1951년대 처음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제 그리고 본격적으로 토요일, 일요일이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것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게 된 겁니다. 여행을 떠날 때 필수품이 라디오였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리고 여성들은 치마 길이가 처음으로 짧아졌습니다.
▶ 김종배 : 미니스커트가 나오는 겁니까?
▷ 서해성 : 그렇죠. 아주 이게 중요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여성들이 자기 신체와 의상에 대한 자기표현을 갖게 됐다는 겁니다. 미니스커트가 섹시하냐, 안 섹시하냐,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왜 그러냐면 여성들이 신체에 대한 주체적, 자기표현에 대한, 의상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주체적 표현이었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누가 보든 말든 나는 입고 싶은 것 입는다, 이거죠.
▷ 서해성 :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지금 그리고 이제 그 영화, 유명한 영화, 아까 54년도 <이유 없는 반항>을 얘기했는데, 동시에 <폭력 교실>이라는, 영어로 이제 <blackboard jungle>이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거기에 삽입된 음악이 ‘Rock Around The Clock'입니다. 그러니까 이 음악이 바로 로큰롤이라는 말로 발전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 김종배 : 이게 원조가 이렇게 되는 거군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사실은 얼굴은 백인이지만 태도, 자세, 일상생활, 그리고 흥얼거리는 가락, 모든 게 다 흑인의 요소를 갖고 있었던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 프레슬리는 멤피스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그 동네에 백인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까 자기 친구는 다 흑인이었어요.
▶ 김종배 :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흑인음악의 영향을 받고 커온,
▷ 서해성 : 네. 그렇게 했던 거죠. 그리고 이제 그런 친구가 이제 나와서 드디어 텔레비전쇼에 등장한 거죠. 그러니까 얼굴은 순 흔히 말하는 백인, 코카서스 인종이었지만 하는 방법은 완전히 아프로 아메리칸 뮤직적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김종배 : 딱 여기서 이제 사회배경과 딱 연결하니까 재미있어지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이제 여는 시간, 1부로 이제 딱 맛보기만 딱 보여드린 거고, 팝의 개념에 대해서. 다음 주부터 이제 본격적으로 팝의 사회사를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은데, 이제 마무리를 해야 됩니다, 시간이 다 되어 가지고,
▷ 서해성 : 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 김종배 : 네. 오늘 1탄으로 마무리를 어떻게 해 주시겠습니까?
▷ 서해성 : 그러니까 대중문화는 8시간 노동제, 휴일, 교통, 미디어와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 김종배 : 그렇네.
▷ 서해성 : 네. 그런데 우리는 지나치게 너무 소비적으로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비평적 안목을 갖는 것은 내가 이 음악의 주인일 수 있습니다, 그때요. 그러니까 사회사가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사실 음악만 아니라 스포츠, 라디오 프로그램,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다 마찬가지라는 거죠. 저희가 이 방송을 하는 이유는 구경꾼으로만 살지 말고, 때로 1년에 한 번쯤 정도 이 세상의 문화소비 주체로서 주인이 되는 그런 자리로 돌아가보자 하는 뜻으로 이 방송을 해봤습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다음 주 기대해도 되는 거죠?
▷ 서해성 : 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해성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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