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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의 박학다설] 노래는 어디로 갔나
최은지
tbs3@naver.com
2018-12-07 21:37
색다른 시선
[서해성의 박학다설] 노래는 어디로 갔나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8. 12. 7. (금)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 김종배 : 우리시대의 지식광대죠. 서해성 작가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서해성 : 네.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네. 감기 걸리셨어요.
▷ 서해성 : 네. 감기가 좀 걸렸습니다.
▶ 김종배 : 관리 잘 하셔야지.
▷ 서해성 : 청취자 여러분들도 감기 걸리지 않으시도록,
▶ 김종배 : 그러게요. 얼른 나으시길 바랍니다.
▷ 서해성 : 갑자기 이제 바람이 차가워지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몸 관리 잘 하셔야죠. 목소리도 많이 지금 잠기신 것 같아요. 자, 오늘 팝의 사회사 이어가는 건가요?
▷ 서해성 : 네. 지난주 2주 전에 안 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협박하셨잖아요. 오늘은 사실 팝음악 중에서 어찌 보면 팝처럼 알려지지 않은 그런 게 있는데, 바로 모던 포크,
▶ 김종배 : 모던 포크.
▷ 서해성 : 네. 흔히 우리가 이제 포크음악이라고 말하는 장르를 얘기하는 겁니다. 사실 포크음악이란 민속음악이라는 뜻이거든요.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음악은 민속음악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민속음악에 근거를 두고 있되, 모던하게 다시 재구성한 그런 음악인데, 바로 그런 것들을 주도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얘기를 해보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흔히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몇 사람들이 나중에 이제 70, 80년대 한국음악에도 결정적 영향을 줬던 그런 포크운동을 이제 프로테스트 포크라고 그럽니다. 저항 포크다, 그 말이죠.
▶ 김종배 : 저항?
▷ 서해성 : 우리말로 바꿀 때 저항 포크라고 하는 건 안 맞을 겁니다. 저항 노래, 이렇게 하는 게 맞을 겁니다.
▶ 김종배 : 어떤 내용이라고 봐야 되는 거예요, 이건?
▷ 서해성 : 2011년도에 ‘오큐파이 월스트리트’라고 있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네.
▷ 서해성 : 세계가 야단났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때 이제 마이클 무어라고 하는 영화감독,
▶ 김종배 : 네. 유명한,
▷ 서해성 : <화씨 911>로 유명한, 그분이 이제 거기서 카메라를 찍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이 양반이 큰소리를 치면서 길을 터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사람들이 안 비켰어요. 왜냐하면 마이클 무어 워낙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데 좀 있으니까, 왜냐하면 마이클 무어가 평소에도 좀 버르장머리 없이 말하자면 하는 데가 있잖아요.
▶ 김종배 : 눈에 뵈는 게 없다.
▷ 서해성 : 네. 그런데 저 틈새로, 사람들 틈새로 어떤 털모자를 쓴 할아버지 한 분이 걸어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이클 무어가 그 양반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그 노인이 걸어오는 게 이제 보이는 거죠. 정말 그런데 그걸 딱 발견하는 순간 누군가 말했겠죠, 저 양반 누구라고. 그러니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모두 그 양반을 향해서 손을 흔들고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노래가 ‘We Shall Overcome'입니다. 한국에서 이제 이 말이 ’우리 승리하리라, 이렇게 이제 번역되어서 했던, 그런데 그때 이 양반이 걸어갈 때 91살이었습니다. 91살이었는데, 이 사람이 가수에요, 피트 시거라고 하는 가수. 그러니까 그 노래를 무기로 삼은 혁명가죠, 진정한 의미에서.
▶ 김종배 : 이름 들어봤네요.
▷ 서해성 : 활동하는 예술가이고, 프로테스트 포크의 아버지고, 저항의 노래로 20세기로 관통해갔던, 그렇죠.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예술가 몇 명을 꼽아야 한다면 반드시 들어가야 되는 그런 사람이죠.
▶ 김종배 : 피트 시거가?
▷ 서해성 : 한국도 사랑했던, 한국을 사랑했습니다.
▶ 김종배 : 한국 얘기하니까 70, 80년대 이른바 저항노래, 결국은 여기서 나왔다고 봐야 되는 건가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결정적 영향을 받은 거죠. 아까 말씀드렸던 ‘We Shall Overcome'이나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한국에서는 처음에 번역될 때는 ’들에 핀 저 꽃들은‘, 이렇게 번역되었습니다. 직역하면 이런 말이겠죠, 모든 꽃, 그 많은 꽃들은 어디로 갔나? 이런 뜻이겠죠. 그런데 의역하면 ’꽃들은 어디로 갔나?‘ 이렇게 번역할 수 있는 그런 거고요. 월남전을 반대하는 음악으로써 ’If I had a Hammer' 내가 해머가 있다면 다 부숴버리겠다. 그리고 ‘Turn Turn Turn', 방향을 돌려야 된다는 거죠. 그런 반전가요들, 그리고 이제 이런 거죠. 그리고 이제 반전운동뿐만이 아니라 흑인민권운동의 중심에 거의 대부분 피트 시거의 노래가 불렀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김산의 아리랑을 아주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Song of Ariran' 감동 깊게 읽고, 거기에 감동을 받아서 노래를 만들었는데,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피트 시거의 앨범 중에 그래서 아리랑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이제 그때 아리랑을 왜 만들었냐, 사람들이 그러니까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통합의 상징 혹은 분단조국의 상징으로 불리는 노래이기 때문에 내가 이 노래를 불렀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이제 했던 그런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민기, 양희은, 혹은 80년대 안치환, 이런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분이고, 물론 이분은 혼자 한 것은 아닙니다. 이따 얘기하겠습니다마는 그러니까 20세기에 새로운 장르 하나가 진짜 출현했는데, 그건 프로테스트 포크, 저항노래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피트 시거, 우디 거스리,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하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 김종배 : 그런데 이런, 이건 노래운동이라고 봐야 되는 거잖아요?
▷ 서해성 : 노래운동입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이런 노래운동이 탄생한 배경을 어떻게 봐야 되는 거예요?
▷ 서해성 : 그렇죠. 우리가 이제 좀 속상한 게요, 사실 제가 이 방송을 하고 있지만 이런 게 진지하게 70년대, 80년대 이게 운동으로써 알려졌어야 됐거든요.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런데 그냥 기호품처럼 소개된 거예요. 굉장히 사실 잘못된 거죠. 그러니까 사실 이건 이제 당시에 거대한 파시즘에 저항하는 운동으로써 이런 음악을 만들었던 거거든요.
▶ 김종배 : 그런가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럼 역사가 꽤 된다는 얘기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 얘기 조금 이따 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이렇게 너무 유행만 쫓는 그런 경향이 사실 있거든요. 피트 시거가 올해, 정확하게 살아있었으면 100살입니다. 그러니까 1919년생입니다. 94세, 5세까지 살았거든요. 굉장히 오래, 1세기를 산 거죠, 그러니까.
▶ 김종배 : 그러면서 사망하기 직전에도 현장에 나갔던,
▷ 서해성 : 그렇습니다. 90세가 넘어서도 투쟁현장에 모습을 나타냈던 그런 사람입니다. 그 아버지가 있는데, 찰스라는 분인데, 이 아버지가 이제 트레일링 악단, 트레일러에다 끌고 이렇게 시골에 돌아다니면서 음악을 그렇게 들려줬던, 돈 받고 한 게 아닙니다.
▶ 김종배 : 그림으로 본 것 같다, 네.
▷ 서해성 : 돈 받고 한 게 아니라고요. 이게 중요한 거거든요. 이게 음악에서 예술에서 나로드니키운동이 벌어졌지 않습니까? 이게 흔히 말해서 러시아로 가면 이게 이동파입니다. 전시장 같은 데에 갇혀있지 않고 이동하며 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그림이나 음악은 고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좋은 극장에서, 좋은 미술관에서. 그런데 그렇지 않고 바로 이런 영향 속에 성장을 했는데, 그게 아들이 세 명이 있었는데, 그 막내가 바로 피트 시거입니다. 그런 부모의 영향 속에서 성장한 겁니다. 어머니도 바이올리니스트였고, 그런데 이 양반들이 무슨 이렇게 좋은 콘서터로 살려고 그런 게 아니라 시민 속에 들어가 살려고,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런 부모의 영향 하나하고, 또 하나의 영향을 얘기해야 되는데, 당시에 20년대, 30년대가 되면 백인민속음악을 중심으로 채보 녹음 작업이 미국 의회도서관 차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게 굉장히 미국음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 김종배 : 이른바 이제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찾기 차원이라고 봐야 되는 거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남북전쟁 끝났죠. 1차 대전 끝났죠. 이렇게 하니까 우리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제 초기에 이민 온 사람들이 이제 돌아가시잖아요. 바로 이제 그런 것들을 했는데, 이른바 아카이빙 작업을 한 거죠. 그러니까 국가 차원의 아카이빙을 한 거죠. 그러면서 이제 농장에서 부르는 노래, 공장에서 부르는 노래, 어민들이 부르는 노래, 군인들이 부르는 노래, 이런 것들을 했는데, 바로 피트 시거도 운이 좋게 그 작업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겁니다.
▶ 김종배 : 이 작업에 들어간 겁니까, 피트 시거가?
▷ 서해성 : 결정적이죠. 인생을 바꾼 일이죠. 그런데 거기서 이제 정말 당대에 뛰어난, 자기보다 선배인 뛰어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우디 거스리란 사람입니다. 이따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굉장히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밥 딜런의 스승이죠.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이분들이 바로 직접적으로 밥 딜런의 스승이고, 우디 거슬리이야말로 진정한 밥 딜런의 스승이죠.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러니까 그래서 그때 이런 작업을 통해서 우디 거스리나 그런 사람들 만나게 되었던 거고요. 이게 총괄했던 사람은 이제 음악학자 존 로맥스라는 사람인데, 그것까지 모르셔도 되겠습니다마는 이 양반이 낸 책이 ‘아메리칸 발라드 포크송’, 딱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수식어가 없는 책이 좋은 책이거든요, 자고로.
▶ 김종배 : 그렇네요.
▷ 서해성 : 그러니까 미국의 포크송이 무엇인가 하는 걸 이제 이렇게 딱 정리했던 거죠.
▶ 김종배 : 그런데 우리가 이제 보통 저항가요 하면 어떤 저항가요의 어떤 본산은 보통 대학,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하잖아요, 우리의 역사에서는?
▷ 서해성 : 네.
▶ 김종배 : 그럼 피트 시거 같은 경우는 대학을 다닌 사람입니까? 어떻게 됩니까?
▷ 서해성 : 대학을 하버드대학을 들어갔습니다.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하버드대학 중퇴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참 굉장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 김종배 : 자기 스스로 그러니까 속칭 때려 친 겁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퇴학당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제 가서 진보적 활동을 하니까 학교에서 장학금을 중단했어요.
▶ 김종배 : 그랬어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막 저항을 한 거예요, 학교하고요. 이런 하버드 안 다니는 게 낫다. 대단한 결정이죠, 쉽지 않죠. 장학금 안 준다고 그것 뭐, 그래도 2년만 더 다니면 졸업인데, 대개는 졸업을 하고 뭘 하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피트 시거는 이런 일을 평생 한 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 취임할 때 피트 시거를 불렀습니다. 피트 시거가 물어봤어요. 왜 나를 여기 초청했냐? 나는 아무런 훈장도 받은 적이 없다. 그랬더니 빌 클린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훈장이 없는 것으로 가장 큰 훈장을 받으신 겁니다.
▶ 김종배 : 무관의 영웅이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피트 시거는 평생을 FBI에 쫓기고 살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런 걸 받거나 그럴 수가 없었던 거죠.
▶ 김종배 : 시국사범으로 계속 도망치고 다녔군요?
▷ 서해성 : 그렇죠.
▶ 김종배 : 우리 개념으로 하면?
▷ 서해성 : 네. 우리로 하면 ‘도바리’ 치고 다닌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하버드대학을 중퇴하던 그 해에 이제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아프리칸대를 만난 겁니다. 아프리칸, 정확하게 말하면 아프로 아메리칸대를 만난 겁니다, 그들이 음악축제를 하고 있는 걸. 그리고 거기서 처음 어떤 악기를 봤는데, 그 악기가 밴조였습니다.
▶ 김종배 : 밴조?
▷ 서해성 : 네. 밴조였습니다. 그래서 그 다섯줄의 악기를 만나 가지고 피트 시거는 이 악기를 배워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열심히 배웠고요. 평생 그 악기만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악기 주변에 동그랗게 이렇게 썼습니다. 이 기계는, 그러니까 여기서 ‘악기는’이겠죠. 그러니까 이 기계는 증오를 휘감아 마침내 굴복시킨다. 평화에 대한 얘기를, 음악이란 평화를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했던 거죠. 거기 쓰게 된 것은 자기의 일종의 동료이자 스승인 우디 거스리가 그 사람은 기타를 쳤는데, 기타총에 이렇게 썼거든요. 이 기계는 파시스트를 죽인다. 이건 아예 그냥 노골적으로 이렇게 했던 건데, 바로 이제 그 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자기 밴조에 그렇게 했고, 평생 밴조를 연주했던,
▶ 김종배 : 그렇네요.
▷ 서해성 : 피트 시거는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럼 이제 선배 격이 되는 우디 거스리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 서해성 : 이 사람이 만나게 된 것 자체가 아까 말씀드렸던 민요수집,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것이고요. 둘이 만나 가지고 이제 포크음악의 세계를 바꾼,
▶ 김종배 : 네.
▷ 서해성 : 포크음악의 세계를 바꾼 보컬그룹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알마낙 싱어즈입니다. 이 두 사람이 이걸 결성을 하는 겁니다. 사실은 이게 요즘말로 하면 밴드지만 그 당시로 치면 노래운동팀이라고 할까요? 말하자면 이런 걸 이제 처음으로 구성을,
▶ 김종배 : 노래패?
▷ 서해성 : 네. 노래패 같은 것들 이제 구성을 한 거죠. 우디 거스리는 피트 시거보다 7살이 더 먹은 1912년생입니다. 당연히 학교를 많이 다니지 않았고요. 그리고 이제 기타, 하모니카, 그리고 노동계급의 민요, 그리고 이 두 사람이 만나 책을 한 권 냈는데, 그 책 이름이 ‘고난 받는 이들의 애창곡’,
▶ 김종배 : 제목 괜찮은데요?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이게 이 양반들 어떤 생각을 갖고 일을 했는지 딱 나타나지 있습니까?
▶ 김종배 : 한 마디로 노래운동을 한 거죠.
▷ 서해성 : 노래운동, 이게 세계 최초의 노래운동,
▶ 김종배 : 그렇네요.
▷ 서해성 : 그렇게 한 겁니다. 그래서 이제, 그리고 둘이서 이제 일부러 기차표를 안 끊고, 화물차에 밤에 몰래 올라타 가지고, 미국이 넓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화물차에 모르게 들어가 가지고 짐 사이에 끼어 가지고 이제 몇 개 주를 건너가서 또 중간에 기차가 출발하면 뛰어내려 가지고 가서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에게, 그런 일들을 했던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중에 이제 그룹이 해체되고 나서 피트 시거가 위버스라고 하는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을 했습니다만 오늘 제가 보컬그룹의 역사를 얘기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요. 어떻게 이분들이 그런 일을 했는가? 우디 거스리는 일찍 죽었습니다. 67년에 죽었는데, 그 병원에 입원, 이게 유전질환 때문에 죽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유전적으로 원래 좋지 않은 병이 있었습니다, 우디 거스리가.
▶ 김종배 : 유전병이 있었군요.
▷ 서해성 : 네. 그때 이제 미네소타에 살고 있던 청년이 우디 거스리의 병실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처럼 노래를 잘하고 싶습니다.
▶ 김종배 : 그게 아까 이제 제자라고 했던 밥 딜런이에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찾아와 가지고, 선생님처럼 노래 잘 부르고 싶습니다. 가끔 김종배 선생님 누가 저도 김종배 선생님처럼 방송 잘하고 싶거든요, 그러면 뭐라고 하세요?
▶ 김종배 :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 서해성 : 그렇군요. 밥 딜런이 정말 아동 같은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지 않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이런 거예요. 밥 딜런이 그러면서 저는 목소리가 이게 옥타브가 안 올라가서 노래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랬더니 우디 거스리가 정말 명언을 하는 겁니다. 좋은 노래는 옥타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네 목소리에 맞는 것이 가장 좋은 노래다. 그러니까 거기에 맞춰서 불러라.
▶ 김종배 : 맞네. 그렇죠.
▷ 서해성 : 그래서 나온 유명한 노래가 “Knockin’ On Heaven's Door”입니다. 세계적인 명곡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왜 세계적인 명곡이 됐냐면 옥타브 변화가 없어서 그래요. 너무 부르기 편해요, 사실. 크게 부를 수도 있고, 작게 부를 수도 있고, 다양하게 부를 수도 있는, 그러니까 나중에 이제 우디 거스리가 이 앨범을, 아니. 밥 딜런이 앨범을 내면서 우디 거스리 헌정하는 ‘Song to Woody' 우디를 위한 노래를 이렇게 만들 정도로 우디 거스리를 좋아했다. 나중에 이제 그때 이제 우디 거스리나 피트 시거하고 먼저 알았던 사람은 사실 조안 바에즈였습니다.
▶ 김종배 : 네. 조안 바에즈, 빼놓을 수가 없죠.
▷ 서해성 : 그렇죠. 조안 바에즈의 마지막 연인이 스티브 잡스입니다.
▶ 김종배 : 그랬나요?
▷ 서해성 : 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으로 조안 바에즈하고 연애를 하고, 그리고 세상을 떠났죠. 그런데 그 조안 바에즈가 원래 이 밥 딜런과 연인 관계였죠. 그러니까 그런데 원래는 이제 조안 바에즈가 먼저 그 일들을 시작했던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여성입니다, 조안 바에즈는 당연히 이름 들어봐서 아시겠지만 굉장한 미인이기도 하죠, 노래를 아주 잘 부르고. 왜 헤어졌냐면 여러 가지 개인적 이유도 있겠지만 밥 딜런이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했기 때문에 헤어졌습니다.
▶ 김종배 : 헤어진 이유가 그거에요?
▷ 서해성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음악적으로는, 왜냐하면 일렉트릭 기타라고 하는 것은 지금 포크나 이런 운동은 포터블 악기를 기초로 하는 겁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일렉트릭 악기만 해도 벌써 가난한 사람들 많이 사용하기 쉽지 않은 악기입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그러면 음악적 변절이 된 겁니까?
▷ 서해성 : 그렇죠. 그렇게 본 겁니다. 상업화로 갔다. 사실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하게 되면 이 통기타를 치던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변주가 가능합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음악적으로. 그러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인데, 적어도 이것도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당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던 포크, 그냥 포크라고 하겠습니다. 포크음악이 어떤 걸 추구했는지, 얼마나 검소하고, 그리고 얼마나 낮은 자들의 소리가 되고 싶어 했는지, 이 하나의 말속에 금방 이해가 가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네요. 그런데 아까 이제 평생 도망 다녔다고 했잖아요. 정말 그렇게 탄압이 심했어요?
▷ 서해성 : 네. 아주 심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아주 심했고요. 이게 이제 피트 시거의 일생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가장 그 사람의 삶에 가까웠던 건 밴조라는 악기였고요. 두 번째 가까웠던 건 FBI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런다고 해서 이 피트 시거가 군대를 안 가고 그런 건 아니고요. 2차 대전 때 사이판에서 이제 근무를 했고요. 우리 왜 관광 가는 사이판 말하는 겁니다. 거기 공군에 속해서 일을 했고요. 이제 해방이 되고 나서 이제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라간 거예요. 그리고 광고도 막 밀려들고 있고, 계약을 하려고 하는 그날, 계약하려고 하는 그날이었어요. 미국 하원 반국가행위자조사위원회에서 피트 시거를 출석하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 김종배 : 초를 치는, 초를 치는 게 아니라 초를 퍼부었고만.
▷ 서해성 : 그렇죠. 그런 사상을, 사상이 뭔지를 우리 의원들 앞에서 입증해라라고 요구를 받았는데, 피트 시거는 수정헌법 제1조, 그러니까 헌법, 미국 헌법 1조라는 뜻입니다. 그 1조가 표현의 자유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서 자기는 그것을 말할 이유가 없다, 하고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그리고 동시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한 이유가 어떤 특정한 신념에 반하는 내가 꼭 거기에 동의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이제 이의를 단 거예요.
▶ 김종배 : 그건 내 양심의 울림에 따라서 행동해야 되는 건데,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나중에 무죄가 되는 데까지 7년 정도, 그러니까 이해가시죠, 무슨 얘기인지? 뭐 하나만 잘못하면,
▶ 김종배 : 조금만 뭐하면 그냥 바로 걸어버리는,
▷ 서해성 : 그렇죠. 바로 걸어 가지고 7년을 고생시키는,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할 수 없이 피트 시거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들하고 노는 거였습니다.
▶ 김종배 : 혹시 서동요를 유포시켰나요?
▷ 서해성 : 맞습니다. 정확하게 말했어요.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진짜로요.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서동요 같은 노래를 가르친 거예요. 지금까지 이상한 노래, 막 이렇게 너무 과장된 노래를 가르친 게 아니라 엄마는 일하니까 힘들지, 아빠는, 이를테면 이런 걸 가르친 거예요. 애들이 컸어요. 그리고 그 애들이 대학을 가잖아요, 조금 있으면 이제. 사실 초등학교에서 대학 가는 것 금방 가잖아요, 4, 5년 뒤면 가는데요. 그 애들이 들어가 가지고 바로 노래운동을, 대중적 노래운동을 했는데, 그게 바로 60년대 포크 무브먼트입니다.
▶ 김종배 : 그렇게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피트 시거가 보통 사람이 아니죠.
▶ 김종배 : 씨를 뿌렸구나, 씨를.
▷ 서해성 : 그렇죠. 그 물결이 한국으로 밀고 들어온 거죠. 그리고 미군들이 한국에 당시 미 파병되어서 한국에 오는 사람들이 기타를 하나씩 가지고 왔죠. 그게 바로 한국에도 대중적인 그런 포크 분위기가 형성된 이유가 되는 거죠. 그리고 이제 당연히 월남전에 강력하게 반대했고요. 그러니까 이제 어떻겠어요, 기분이, FBI에서는? 노래 내용을 한 번 소개해 드려볼게요, 제가. ‘bring them home', 집으로 데려와야 돼, 그 말이겠죠. 그러니까 정말 미국을 사랑한다면 병사들을 집으로 데려오세요. 데려오세요. 베트남의 장병들을 지지한다면 데려오세요. 집으로 데려오세요. 그러니까 뭐 가사 내용이 없어요. 집으로 데려오자는 거야.
▶ 김종배 : 철수하라, 이 얘기잖아.
▷ 서해성 : 그렇죠. 그런데 사실 그게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부모들이 듣기에는?
▶ 김종배 : 그럼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내 아들이 지금 전쟁터에 있는데, 집으로 돌아오게 할 수만 있다면, 그런 거죠. 그러니까 그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최척후에 피트 시거가 만든 노래가 있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김종배 : 또 다른 노래는 어떤 게 있습니까?
▷ 서해성 : 진짜 정말 장시간 걸쳐 소개해드리고 싶은 노래가 사실은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이라는 노래인데요. 우리말로는 이제 꽃들은 어디로 갔나라는 노래인데, 원래 이 노래는 돈 코사크들이 부르던 민요입니다.
▶ 김종배 : 러시아에?
▷ 서해성 : 러시아에, 네. 그러니까 이게 원래 문답형입니다. 문답형인데, 이게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숄로호프, 미하일 숄로호프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돈강은 고요히 흐른다,
▶ 김종배 : 진짜 오랜만에 들어본다.
▷ 서해성 : 그렇죠? 거기 1928년도에 쓴 소설인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원문입니다. 원문을 제가 한 번 번역해봤습니다. 갈밭은 어디 있니? 아가씨들이 베어갔어요. 아가씨들은 어디 있니? 아가씨들은 남편들이 데리고 갔고요. 코사크들은 어디 있니? 그들은 전쟁터로 갔어요. 이게 오리지널입니다. 그런데 이걸 이제 피트 시거가 노래를 바꾼 거죠. 꽃들은 어디로 갔나? 세상 모든 꽃들은 아가씨들이 꺾고, 아가씨들은 남편이 데려가고, 남편들은 전쟁터로 가고, 전쟁은 무덤을 만들고, 꽃은 무덤에 피니 다시 아가씨들은 꽃을 꺾는 거죠. 얼마나 기가 막힌 순환입니까? 그러니까 꽃의 순환을 폭력의 순환으로 같이 이렇게 병치하는 기가 막힌 표현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이제 조 히커슨이라는 사람과 둘이서 이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있던, 아까 코사크 민요에 기초해서,
▶ 김종배 : 개사곡이죠, 개사곡.
▷ 서해성 :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이게 모던 포크 운동입니다. 때로는 개사를 하고, 때로는 살을 입히고, 때로는 음악리듬을 약간 바꾸고,
▶ 김종배 : 노가바.
▷ 서해성 : 그렇죠. 바로 우리가 많이 80년대 했던 그 방식에 가장 대중적으로 이런 일을 시도했다.
▶ 김종배 : 모든 원조가 이 분이군요, 피트 시거.
▷ 서해성 : 뭐 이제 개사, 노가바가 꼭 이 사람이 꼭 원조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목적으로 가지고 한, 사회운동의 목적을 가지고 했다는 점에서 좀 다른 거죠. 그러니까 피트 시거라는 이게 지금도 ‘We Shall Overcome'이 시위할 때, 전쟁에 반대할 때는 이제 ’꽃들은 어디로 갔나‘가 정말 많이 부르고, “Knockin’ On Heaven's Door"도 마찬가지로 많이 부르고 그러는데, 이런 음악들이 있어서 총구를 인간화 할 수는 없지만 전쟁을 저지른 우리의 얼굴에 그나마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그런 음악이다 할 수 있겠습니다.
▶ 김종배 : 노래 하나만 더 소개해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 서해성 : 미국인들이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보다 더 많이 우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This Land Is Your Land'라는 노래입니다. 'This Land Is You Land', 이렇게 부르는 아주 정말 단순한 가락인데요. 이 노래가 어떻게 나왔냐면 이 노래 원래는 유명한 소설, 이것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요. ‘분노의 포도’라는 소설 있지 않습니까? 존 스타인벡이 쓴 소설, 캘리포니아가 고향인 존 스타인벡인데, 스탠포드대학을 중퇴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소설 끝 부분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큰 나쁜 짓을 하고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가난한 자 편에 서서 싸우는 사람입니다. 어머니에게 들려주는 거예요. 엄마, 계속 걷다가 간판을 보았지. 거기에는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었어. 하지만 뒷면에는 아무 말도 적혀있지 않았지. 그 면은 어머니와 나를 위한 거야. 이게 참 기가 막힌 얘기잖아요. 간판 뒤에 아무것도 안 써 있는데, 그건 엄마하고 나를 위한 거라는 거예요. 우리가 할 일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때 이제 마지막 그러면서 이렇게 갑니다. 뾰족탑 그늘에서 내 사람들을 보았지. 빈민구제소 옆에서 내 사람들을 보았지. 그 사람들이 내 사람들인 거예요, 내 친구들인 거예요. 그들이 굶주린 채 거기 서는 걸 보면서 나는 거기 서서 속으로 물었지. 이 땅이 당신과 나의 것인가? This Land Is Your Land? 이 땅은 우리 거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이제 그걸 갖고 우디 거스리가 이 소설을 읽고 끝부분을 자기 언어로 바꾼 겁니다. ‘This Land Is Your Land'라고, 그리고는 이제 마찬가지로 우디 거스리가 만들었지만 피트 시거가 평생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인이 현재도 정말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는 노래가 ‘This Land Is Your Land', 그러니까 한국말로 하면 여러 가지 뜻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땅도 되고, 이 나라는 너의 고향이라는 말도 되고, 수많은 말이 될 수 있는 아주 그런 좋은 말인데, 나중에 이제 미국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수라고 꼽히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바로 ’톰 조드의 영혼‘이라는 노래를 또 만들어서 따로 불렀어요. 그러니까 이제 ’분노의 포도‘라고 하는 그 소설 하나 가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제 서로 섬기고, 아끼고, 그렇게 하는 거죠.
▶ 김종배 : 자, 이제 정리를 하죠.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요, 작가님?
▷ 서해성 : 네. 피트 시거는 이제 최초에는 민요 채집자 혹은 소박한 가수로 출발해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흑인민권운동에 참여했고, 반전운동을 전개했고, 80년대는 생태환경운동과 관련된 노래를 했고, 2000년대는 오큐파이 월스트리트까지 했습니다.
▶ 김종배 : 아흔이 넘어서,
▷ 서해성 : 그렇죠. 그래서 이게 보시면 피트 시거 인생을 보면 20세기에 진보적 인간들이 무엇을 했는가 다 보입니다. 한 인간 속에서 1세기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돈의 이해와 관련 없이 자기 삶을 헌신했던 사람이 바로 피트 시거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왜 아프리카에서 온 밴조를 가장 아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가장 고통 받는 자의 소리로 세상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아내가 일본인입니다. 일본인인데, 이분이 일본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그 일본의 마르크스 자본론을 처음 번역한 사람의 손녀하고 결혼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그래서 일본에서 추방당해 가지고 이제 미국에서 사는데, 그렇게 해서 이제 하게 되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유행했던 누에바 칸시온, 우리말로 번역하면 신음악,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누에아 칸시온에도 큰 영향을 준 게 바로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의 그런 노래운동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노래란 그저 노래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요에 한숨과 땀이 있듯이 모던 포크에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과, 또 그리고 인간에 대한 차별, 그리고 전쟁을 이겨내고자 하는 숭고한 인간의 의지가 깃들어있다는 말씀을 같이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존 스타인벡을 좋아해서 스타인벡의 집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살리나스에 있습니다. 그 집 앞으로 큰 길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집과 길 사이에서는 어떤 예술가가 연출했는지 모르겠는데, 모래를 뿌려놨습니다.
▶ 김종배 : 왜요?
▷ 서해성 : 아주 두꺼운 모래를 뿌려놨습니다. 누구나 발자국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죠. 누구나 존 스타인벡을 읽을 의무는 없지만 그러나 존 스타인벡이 말한 대중들의 고통을 피해갈 수는 없죠. 그렇죠. 우리가 해변에 가면 발자국을 안 남길 수가 없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찍히게 되죠.
▷ 서해성 : 네. 존 스타인벡의 모래를 깔아놓은 것은 그 고통에 네가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너도 그 고통의 일부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라는 그런 것들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인류는 20세기에 새로운 청각 하나를 얻었습니다. 그게 바로 저항가요입니다. 프로테스트 포크라고 하는, 그건 클래식도 아니고, 민요도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 양심에 기초한, 오직 양심의 명령에 따라서 저항을 해온 가장 어찌 보면 숭고한 사회적 감각이다.
▶ 김종배 : 양심의 노래네요.
▷ 서해성 : 그렇죠. 양심의 노래입니다. 피트 시거가 오늘 묻고 있을 겁니다. 그대들은 자유로운가? 그대들은 저항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피트 시거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일 겁니다. 그대는 힘없는 옆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가?
▶ 김종배 : 네. 또 이렇게 문제제기를 주면서 마무리를 해 주시네요.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건강관리 잘하세요. 빨리 감기 나으셔야죠.
▷ 서해성 : 네. 고맙습니다.
▶ 김종배 : 오늘 더 고생하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해성 : 고맙습니다.
▶ 김종배 :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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