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버선발 이야기’ 한 권의 책에 담은 팔십 평생 가슴에 품어온 이야기!

최양지

tbs3@naver.com

2019-03-2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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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발 이야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사진=연합뉴스>
버선발 이야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사진=연합뉴스>
  • * 내용 인용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4부

    [인터뷰 제3공장]

    ‘버선발 이야기’ 한 권의 책에 담은 팔십 평생 가슴에 품어온 이야기!

    - 백기완 소장 (통일문제연구소)


    김어준 : 이 노래는 이분이 지은 시, '묏비나리' 의 한 부분을 차용해서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이분을 어떤 말로 소개해야 할까요? 시인, 정치가, 통일운동가, 대통령 후보. 이분을 소개할 만한 말은 정말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풍운아, 혁명가, 한국의 체게바라. 이렇게 제 머리에 입력된 분입니다. 오늘은 소설가로 이분을 모셨습니다. 백기완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백기완 : 안녕하세요.



    김어준 : 잘 들리십니까?



    백기완 : 네.



    김어준 : 귀가 잘 안 들리신다고 하셔서. 제가 가장 최근에 접한 소식이 지난 탄핵 정국에서 촛불집회 다 참여하셨고, 그러다가 몸이 상하셔서 작년에 대수술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건강은 어떠십니까?



    백기완 : 건강은 따로 없고요. 이 세상 살다 보니까 나는 그저 죽기 아니면 살기예요.



    김어준 : 건강 뭐 따로 없고, 죽기 아니면 살기고.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사실 20대 때 선생님 연설을 듣고 자란 세대예요. 대단한 연설가시거든요. 그런 이야기 많이 들으셨죠? 제가 그래서 오늘 컷을 몇 가지 준비했는데, 제가 대통령 후보라고 소개해서 20~30대는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잠깐 부연 설명을 하면 87년, 92년에 대통령 출마하셨습니다. 그렇죠?



    백기완 : 네.



    김어준 : 득표는 많이 못 하셨죠? 그리고 87년에 나오셔서 이런 연설을 대학로에서 하셨어요. 제가 기억하는데, "김대중, 김영삼 두 사람은 나랑 단일화하자." 이런 제안을 하셨죠.



    백기완 : 그때 두 김씨가 내 말을 듣고 한 사람은 물러났어야 되는 거예요.



    김어준 : 그렇죠.



    백기완 : 그런데 둘이서 서로 대통령을 해 먹겠다고 하다가 그 살인마 원흉 노태우한테 빼앗겼잖아요.



    김어준 : 선생님 말씀을 안 들어서. 그렇게 제안을 하셨어요, 그때. 그리고 92년에는 실제 출마까지 이어져서 그때 몇 표 얻으셨죠? 기억하십니까?



    백기완 : 그때 나는 표 얻자고 나온 게 아니고, 세상이 바뀌려고 하면 민중이 나서야 된다. 민중이 나서라고 해서 내가 얼굴만 빌려줬던 거예요.



    김어준 : 그때도 대단했었는데. 지금 20~30대는 모르겠지만 당시 대학생들 혹은 20~30대 젊은 세대에게는, 나이 드신 분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전설적인 존재였습니다. 당시 MBC 뉴스가 선생님 출마 당시 보도한 거 있어요. 저희가 잠깐 틀어 보겠습니다.



    (음성)



    김어준 : 앵커 목소리 기억나십니까?



    백기완 : 네.



    김어준 :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백기완 : 잘 모르겠는데요.



    김어준 : 이 앵커 목소리 주인공이 손석희 사장입니다.



    백기완 : 아, 손석희?



    김어준 : 당시 화면 보면 정말 앳된 모습인데. 지금 손석희 사장이 어디 사장인지 아십니까?



    백기완 : 무슨 방송국 사장이라고 하던데….



    김어준 : 맞습니다. 무슨 방송국 사장인데. 저희가 모르실 줄 알고, 손석희 사장 이야기가 나와서, 지난 촛불집회 때 손석희 이름을 언급하신 적이 있어요. 가두연설 하시면서, 촛불집회 때. 제가 그 컷을 준비했는데. 잠깐 들어 보겠습니다.



    (음성)



    김어준 : 기억하시죠? 예, 고개를 끄덕거리고 계십니다. 중계해야 되겠네요. 손석희 사장이 젊은이 아닙니다, 선생님. 지금 작년인가요? 환갑 됐습니다. 다 컸어요, 이제.



    백기완 : 그래요?



    김어준 : 자, 제가 이제 목소리를 자꾸 들려 드리는 게 선생님 연설이 기백이 넘치기로 진짜 유명했거든요. 2002년에 히딩크 감독 만나셨잖아요. 그때 월드컵 멤버들 앞에서 선생님이 강연을 하셨고, 그 강연 장면을 보고 히딩크 감독이 뭐라고 했냐 하면 "진짜 한국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선생님이 어떤 식으로 연설을 하시는지 연설 톤을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다.



    (음성)



    김어준 : 다시 한 번 들려 주세요, 처음부터 크게. 잘 안 들리는데.



    (음성)



    김어준 : 이런 톤으로 원래 연설하시는데, 내용이 이겁니다. "이명박이!" 이렇게 호통을 치시면서 한상열 목사, 2010년에. 징역 3년 받았죠, 방북했다가. 한상열 목사 풀어 주라고 당시에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이명박이!", "풀어 줘!" 이렇게 호통을 치신. 이런 식으로 연설을 하십니다. 못 들으신 분들은 짐작하시라고. 기억나십니까, 다?



    백기완 : 조금 기억이 나요.



    김어준 : 연설 톤이 이런 식이거든요. 호통도 치시고, 대화 톤으로 이야기하시고. 자, 조금 더 젊었을 때 히딩크 감독이 존경한다고, 한국을 떠나면서 백기완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하는 편지를 선생님한테 남기고 갔어요. 그러자 방송가에서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이런 편지를 남기고 갔다고. 그때 선생님이 하신 답변이 이겁니다.



    (음성)



    김어준 : 선생님의 화법인데 제가 그거 당시에 빵 터졌던 기억이 나는데, 히딩크 감독 해서 길게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히딩크는 사나이요." 이거 한마디 하셨어요. 제가 이걸 뽑은 이유가 또 있습니다. 제 기억이 하도 많아서 여러 가지 들려 드렸는데, 젊은 시절에 축구를 하셨다면서요.



    백기완 : 축구를 좋아했죠.



    김어준 : 적접 하신 건 아닙니까?



    백기완 : 내가 뭘…. 시골놈인데 공이 있어야 축구를 하죠. 새끼를 둘둘 만 거 맨발로 차고 그래서 발톱이 다 빠지고 그랬어요.



    김어준 : 축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축구를 하셨다는 이야기로 제가 들었군요.



    백기완 : 그게 그거죠, 뭐.



    김어준 : 제가 어디서 분명히 축구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데 축구를 직접 하시지는 못했고 좋아하셨다?



    백기완 : 그럼요.



    김어준 : 자, 또 평상시에 궁금한 건데, 제가 또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 조부는 독립운동을 하셨고, 그때 자료를 찾아보면 굉장히 부자셨어요. 그리고 부친은 언론인이셨고. 그때 당대 엘리트였던데, 보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왜 공부를 초등학교까지만 하셨습니까?



    백기완 : 내가 태어났을 때는 우리 집안이 풍비박산이 돼서 끼니가 없었어요.



    김어준 : 조부가 독립운동을 하던 게 들켰나 보죠?



    백기완 : 그 여파죠.



    김어준 : 그래서 초등학교를 중퇴하셨죠?



    백기완 :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다 그러다가 8.15 해방 덕으로 졸업장은 얻었어요. 내 유일한 졸업장이에요.



    김어준 : 그리고 나서 독학을 하셨어요, 다.



    백기완 : 그럼요.



    김어준 : 독학을 하셨고, 장준하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백기완 이 친구는 건드리지 말라고. 이 사람이 죽으면 민족문화, 민중예술의 보고가 사라진다. 장준하 선생님이 이런 말 하신 거 맞죠?



    백기완 : 내가 중앙정보부에 가서 곤혹을 치를 때 장준하 선생이 "백기완에 대해서 더 이상 손을 대지 마라." 나는 저쪽 방에서 매를 맞고 있고 장준하 선생은 이쪽 방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데, 그런데 장준하 선생이 일주일 동안 조사를 안 받는 거야. 때릴 수도 없고, 독립군을. 박정희가 그때 높은 자리에 있었는데 박정희는 일본군 중위야. 우리 장준하 선생은 독립군 대위라고. 그러니까 일본군 중위가 독립군 대위를 때릴 수가 없잖아요, 잡아올 수는 있었어도. 그래서 패라고 하는데 뭐라고 하느냐. "백기완 선생은 더 이상 패지 마라. 고집이 세서 죽어도 말 안 하고 맞아 죽을 거다. 그 양반이 죽으면 이 나라의 민족문화, 민중예술이 죽는다. 민중예술, 민족문화의 보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죠.



    김어준 : 저도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말을 하셨군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제 예를 들어서 우리가 아는 '새내기', '동아리' 이런 걸 다 선생님이 처음에 시작하신 우리말 운동으로 정착된 거예요. 모르시는 분들 많을 텐데. 지금 대학가에서는 아예 정착됐죠.



    백기완 : '새내기' 라는 말도 내가 일반화시켰고, 새뚝이... 여러 가지가 많아요.



    김어준 : '모꼬지', '달동네' 이런 거. 지금은 자연스러운데 MT, 이런 식으로 썼었죠. 지금은 다 동아리라고 하고, 모꼬지라고도 많이 쓰고, 신입생들 새내기라고 부르는 거 이거 다 선생님이 시작하신 거예요. 이런 분입니다. 이런 분인데, 소설을 쓰셨어요. 이제 소설 이야기를 해 볼게요. 소설 때문에 모셨는데. '버선발 이야기' 라고 10년에 걸쳐서 쓰셨다고. 왜 소설을 쓰신 겁니까?



    백기완 : 그게 소설이 아니고, 민중의 삶이요. 민중을 우리말로는 '니나' 라고 하는데,



    김어준 : 니나요?



    백기완 : 니나.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그게 니나예요. 민중이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니나' 라는 말을 아무리 일반화시키려고 해도 방송국에서부터 받아 주지를 않아요.



    김어준 : 니나가 민중이다.



    백기완 : 아무튼 니나가 역사의 주인공인데 니나 이야기를 가지고서 니나의 삶과 문화와 그들의 꿈, 희망을 기록해 놔야겠다고 해서.



    김어준 : 아, 그걸 소설 형식을 빌었을 뿐이지?



    백기완 : 그렇죠.



    김어준 : 그게 작년에 수술 받으셨을 때 수술 들어가기 전에 "내가 깨어나서 꼭 이 소설을 완성할 거야." 라고 하시고 수술을 들어가셨다고. 10시간에 가까운 대수술이었는데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거 왜 꼭 완성하셨어야 되는 겁니까?



    백기완 : 심장을 떼서 9시간 반 이상을 수술을 했대요, 내가. 그러니까 정신이 없는 거지. 수술하러 들어갈 때도 "나는 죽어도 죽지 않을 거다. 어떻게든 살아서 버선발 이야기 하나만은 완성을 하고 죽을 거다." 그랬죠.



    김어준 : 그래서 실제로 일어나셨고, 일어나자마자 버선말 그거 원고 완성해야 된다고 하셨다면서요.



    백기완 : 원고지 가져오라고 해서 거기서 기록을 하면,



    김어준 : 손으로 다 집필하신 겁니까?



    백기완 : 애들이 빼앗기도 하고 그랬죠.



    김어준 : 손으로 다 원고지에 쓰신 거예요?



    백기완 : 그랬죠.



    김어준 : 선생님, 노트북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렇게 수술 끝나자마자 다시 집필을 하셔서 탈고하신 게 '버선발 이야기' 입니다. 내용이 뭡니까?



    백기완 : 버선발이라는 것은 발을 벗었다 이 말이에요. 맨발이라 이 말이에요.



    김어준 : 아, 버선을 신었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백기완 : 버선발. 벗었다.



    김어준 : 아, 벗었다? 벗은 발? 아, 그걸 버선발이라고…. 그래서 버선발로 뛰어나온다고 하는 거군요.



    백기완 : 우리말은 말이 있어도 글은 없었잖아요. 글 생긴 지가 한 400년밖에 안 됐으니까. 그러니까 버선발 그러면 맨발이라 이 말이야.



    김어준 : 아, 맨발. 민중의 삶을 맨발에 비유하신 거군요.



    백기완 :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첫눈이 내릴 때까지 신발이라는 걸 안 신고 맨발로 살았어요.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런데 요새 고무도 많이 나오고, 가죽도 많이 나와서 신발이 있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전부 다 맨발로 살았어요. 성씨도 없어. 성씨? 이건 지금 유명한 언론인이 되시니까 이름도 있고 성도 있겠지만 옛날에는 성이라는 게 없었어요. 머슴들은...



    김어준 : 아하…. 머슴 이야기입니다, 이게. 제가 사실은 출판사에서 책을 안 줘서 읽어 보지는 못했고요. 머슴의 아들, 버선발이 역경을 딛고 땅을 모두에게 나눠 준다는 이야기예요. 역경을 딛고 혼자 성공한다고 이야기가 아니라. 땅을 모두에게 나눠 준다. 니 거, 내 거 없는 세상. 선생님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하신 건데. 이런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에 빌어서 10년 동안 집필을 하신 내용입니다. 문자 많이 옵니다. "뉴스공장 듣다가 눈물도 나네요." 이런. 선생님 기억하시는 40~50대 많거든요. 잘 모르시겠지만 전설적인 인물이셨어요, 사실. 20~30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세대에게는 대단한 분입니다. 아, 시간이 부족하네요. 한 번 더 모셔야 될 것 같은데, 일단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최근 이야기도 잠깐 해 보자면 수술 직전에 남긴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음성)



    김어준 : 수술 직전에 녹음하신 영상인데, 수술 직전에 어쩌면 마지막 메시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녹음하신 게 "남북 관계 잘 해결해라." 이런 말씀이셨어요. 평생 통일운동을 하셨으니까, 당연히. 그런데 최근에 북미가 별로잖아요. 교착 상태라고들 하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돌파됩니까, 선생님이 보시기에?



    백기완 : 이게 방송에 나가는 거예요, 지금?



    김어준 : 나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백기완 : 그러면 내가 마음 놓고 하겠어요. 방송에 꼭 나가야 돼요. 남쪽의 높은 사람하고 북쪽의 높은 사람을 두 분이 만나는데, 만나면 뭘 이야기하셔야 되느냐? 미국한테 사과를 요구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허리를 뚝 자른 게 누구요? 미국 아니요? 우리나라의 비극을 강행한 것이 미국이니까 미국의 높은 사람이 먼저 앞장서서 우리 민족한테, 아니, 전 세계 인류한테 사과를 해라 하고 남쪽과 북쪽 두 높은 사람이 했어야 되는 거예요. 그걸 안 하고 껴안고 웃기만 하더라고.



    김어준 : 그것부터 먼저 했어야 된다?



    백기완 : 내가 보기에는 할 이야기를 기피한 거예요, 두 사람이.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둘이서 만나면 미국의 트럼프한테 한반도 분단의 책임을 물으면서 사과하라고 요구를 해야 되는 겁니다.



    김어준 : 알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기완 : 나는 미국을 싫어하니까 대통령도 싫어하죠, 뭐.



    김어준 : 알겠습니다. 선생님, 정정하신 한 저희가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인터뷰하면서 들었는데요. 사실은 이게 책 이야기로 모셨는데 책 이야기 조금만 더 하고 오늘 끝내야 될 것 같습니다. '버선발 이야기' 라는 책이 출간됐습니다. 선생님이 10년 동안 집필하셨고요, 머슴의 아들이 역경을 딛고 저항을 해서 높은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항을 해서 땅을 다 나눠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다 됐네요. 한 번 더 모시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감사합니다. 전설이죠. 백기완 선생님이었습니다. 한 번 더 모시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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