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싸랑] 1세대 과학 아이돌 만나고 왔습니다

백창은 기자

bce@tbs.seoul.kr

2022-08-0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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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생태학자가 보는 코로나19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최재천 교수입니다. 생명다양성재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백창은> 요즘 다시 코로나19 확진자가 조금씩 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코로나19 얘기를 조금 해볼까 싶은데요. 2년 반의 코로나19 사태를 생태학자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최재천> 아무래도 의사 선생님은 바이러스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관점일 수밖에 없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생태학, 진화학 이런 걸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이게 관계거든요. 바이러스와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관계 맺음이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산 게 25만 년 되는데 25만 년 내내 사실은 바이러스랑 늘 이렇게 티격태격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크게 벌어진 게 몇 번씩 있는 거죠. 25만 년을 다 훑어볼 필요도 없고요. 그냥 딱 두 세기만 보면 돼요. 지난 20세기랑 이번 21세기. 20세기에는 1918년 스페인 독감, 1968년 홍콩 독감. 그래서 우리가 주기를 계산해 보니까 20~30년에 한 번씩 큰 전염병이 터졌어요. 아무도 이것에 대한 또렷한 설명을 못 하는데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판도가 너무 급격하게 바뀌었어요. 2000년대 들어와서 2002년에 사스가 시작하고 메르스, 에볼라, 지카 바이러스, 신종플루, 돼지독감, 조류인플루엔자…. 별의별 게 지금 다 터지고 있는 거라고요. 불과 20년 안에. 그래서 계산해 보니까 2~3년에 한 번씩 터지는 거예요.

    백창은> 주기가 엄청 짧아졌네요.

    최재천> 그렇죠. 그러면 앞으로의 예측을 한번 해보라고 하면 20년에서 30년 주기로 돌아간다고 예측하는 전문가와 ‘이미 지난 20년 동안 2년에서 3년 간격으로 벌어졌으니까 앞으로도 그런 간격으로 벌어지지 않겠습니까’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랑 누가 더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백창은> 슬프지만 후자가.

    최재천> 그렇죠. 그건 너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니까 (감염병 사태가) 앞으로 수시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백창은> 그 이유가 뭘까요? 인류가 초래했다거나 그런 게 있을까요?

    최재천> 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 코로나19가 생물 다양성의 불균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규정했어요. 개인적으로. 그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생물학자들이 모여서 계산해보니까 우리 인류가 사실은 존재의 역사 내내 참 별 볼 일 없이 하찮은 존재로 살다가 농경을 하면서 갑자기 숫자가 늘어난 동물이거든요. 지금 자연계에 사는 모든 포유동물과 새 전체의 중량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사피엔스가 기르고 있는 동물 전체의 중량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해봤더니 거의 99%입니다. 이런 반전은 아마 지구의 역사에 없었을 거예요. 불과 1만 년. 1만 년이면 지구의 역사에서는 눈 깜짝할 시기일 텐데 그 짧은 시기에 인류가 1% 미만이었는데 나머지를 1~2%로 줄이고 인류가 완전히 지구를 덮었죠. 그러면 지금 우리가 계속 겪고 있는 전염병이 거의 인수 공통 전염병인데. 야생동물의 몸에 있다가 우리한테 건너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야생동물이 1~2%고 우리가 98~99%면. 야생동물이 옮기면 그냥 거의 백발백중인 거죠.

    백창은> 옮길 수밖에 없는.

    최재천> 그렇죠. // 이 엄청난 생물 다양성 불균형이 바로잡히지 않는 한 이런 일은 그냥 확률적으로. 앞으로 이런 일은 그냥 끊임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최재천> 기후 변화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니까 온대 지방의 온도가 조금씩 오를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열대에 살던 박쥐들이 저기도 살만하네? 하면서 조금씩 옮겼단 말이죠. 그래서 그 데이터를 분석해보니까 온대 지방의 새로운 박쥐의 생물 다양성 거점 지역이 몇 군데 드러나더라는 거예요. 그중에 제일 핫한 곳이 정말 공교롭게도 중국 남부 지역으로 드러났어요. 기후 변화로 인해서 그쪽의 식생이 변하다 보니까 박쥐가 살기 좋은 식생으로 변한 거예요. 박쥐는 우리와 같은 포유동물이라고 해도 새처럼 날아다니는 생활 방식을 채택하는 바람에 우리보다 대체로 체온이 조금 높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잘 활동을 안 해요. 바이러스는 온도가 낮아야 더 활발하게 움직이잖아요. 그러면 기후 변화가 멈추지 않는 한, 지구 온난화가 계속 벌어지는 한 열대에 있는 박쥐들은 끊임없이 온대로 분포를 넓힐 거고. 온대 지방에 사는 야생동물들에게 그들은 끊임없이 바이러스를 옮겨줄 거고. 우리가 그 야생동물을 잘못 건드리면 우리는 계속 (바이러스를) 옮겨 받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기후 변화와 인수 공통 질병이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이 돼 있는 거죠.

    ▶ 생물 다양성을 개선할 수 있을까?

    백창은> 그런데 현실적으로 말씀하신 그 생물 다양성을 지금이라도 우리가 조금 더 개선할 수 있는 그런 여지가 있을까요. 아니면 현상 유지가 최선일까요.

    최재천> 갑자기 인류의 수가 줄어들어서 그 비율을 맞춘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그럼 답이 뭘까. 제가 그래서 일찌감치 2020년 중반에 답을 꺼냈어요. 그게 생태 백신, 에코 백신이라고 이름 붙인 건데. 자연계에서 나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우리 인간계로 건너오지 못하게 거기에 백신을 치자는 거죠. 그걸 제가 생태 백신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 자연을 보호하자는 얘기예요. 백신은 사회 구성원의 적어도 70~80%가 같이 접종해야 같이 집단으로 면역을 이끌어 낼 수 있으니까. 이제는 80억 (인구의) 70~80%가 자연 보호에 앞장서자는 거죠. 그렇게만 되면 자연은 자기들끼리 있는 그대로 살 수 있게 보호해주고 우리는 우리대로 살고. 자연을 보호해주는, 자연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거죠.

    백창은> 그게 결국 선생님께서 이런 코로나19 사태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의 하나라고 생각을 하시는 부분이겠네요.

    최재천> 그렇죠. 저는 당연히 그렇고 그게 저만 그렇게 생각하면 별 힘이 없을 텐데. 저 굉장히 뿌듯한 경험을 얼마 전에 했는데. 예술계의 올림픽이라고 하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2년을 코로나19 때문에 못 열다가 올해 열게 됐는데 개막 직전 학술대회에 기조 강연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초청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초청의 글 핵심만 보면 이거예요. 물론 예술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거겠지만, 옛날에 페스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예술가들이 코로나19가 끝나면 반드시 세상이 변한다는 확신을 하고 있다는 거죠. 에코 백신에 대해 얘기를 했다는데 그 얘기를 예술가들에게 해주면 예술가들이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얼마나 좋은 방향으로 변하겠느냐 하더라고요. 그건 뭐 제가 1초를 머뭇거릴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답장했어요. 언제 가면 되냐. 그래서 갔다 왔는데 너무 뿌듯하고 좋았어요. 진짜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제 강연이 끝나고 저녁 만찬 때 저한테 와서 벌써 작품 구상하고 있다고 하니까. 사실은 예술가들의 힘이라는 건 때로는 예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이잖아요. 제 지도 교수님이 언젠가 소설을 쓰셨는데 에드워드 윌슨 교수님이. 제가 ‘선생님, 웬 소설을 다 쓰셨어요?’ 그랬더니 저한테 하신 말씀이 ‘너나 나나 아무리 좋은 논문을 쓴들 우리 동네 사람들, 같은 학계에 있는 사람들 몇십 명 읽으면 끝이잖느냐’ 실제로 대개 그렇거든요. 그런데 시 한 편, 소설 한 편, 그림 한 점, 조각 한 점은 때로는 수백만 수천만의 마음을 흔든다. 그 얘기를 저한테 해주셨는데 제가 이번에 가서 제법 많은, 30명도 더 되는 분들이 저한테 와서 말을 걸고 그랬으니까 어쩌면 굉장히 큰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굉장히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백창은> 나비효과의 나비처럼.

    최재천>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마도 예술을 하시는 분들, 또 다른 분야에 계시는 분들도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자연과의 관계를 어떻게든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들을 굉장히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지금 동시다발로 하는 것 같다는 상당히 고마운 관찰을 제가 하고 있습니다.

    ▶ 글 쓰는 과학자

    백창은> 어떻게 보면 희망적인 거네요. 지금 윌슨 교수님 말씀을 해 주셔서 조금 더 얘기를 이어나가 보자면 책을 굉장히 많이 쓰시잖아요. 이렇게 글을 쓰는 과학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아까 말씀하신 윌슨 교수님이신 건가요?

    최재천> 윌슨 교수님 옆에서 윌슨 교수님을 보면서 묻은 건 있겠죠. 약간 스며든 거는 있겠지만 전 사실 제가 글 쓰는 과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쓴 것은 아니고요. 사실은 원래 글쟁이가 되고 싶었던 건데 과학자는 잘못해서 된 거예요. 저는 과학자가 될 소질이 별로 없는 사람이에요. 누가 봐도 제 주변 거의 모든 사람이 저는 완벽한 문과 성향이라고 했는데. 하여간 적성에 안 맞는 짓을 평생 하느라 고생하고 살았는데 그냥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있었는데. 서울대 교수가 된 첫해였어요. 누가 찾아와서 글을 써달라고 해서 그냥 앞뒤 안 보고 ‘글이요? 써볼게요’ 했어요. 그 글을 쓰느라 며칠을 밤새고 고생했는지 몰라요. 오랜만에 쓰려니까.

    백창은> 물론 워낙 교수님께서 많이 방송에 나오셔서 말씀하신 것도 있지만 이렇게나 적성에 안 맞는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평생 연구를 하신 게 저는 너무 신기해요.

    최재천> 그러니까 제가 아마 별로 혁명적인 사람은 아닌가 봐요. 이게 아니다 싶으면 판을 엎어야 하는데 제가 판을 없는 재주는 없는 거 같아요. (역할이) 주어졌는데 그럼 여기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저는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양자역학은 못 할 것 같고요. 그나마 여기서 약간 문과 성향의 사람이 버틸 수 있는 분야가 뭘까. 그런데 이미 생물 쪽으로 등 떠밀려서 들어왔단 말이죠. 가만히 보니까 생물이 그나마 자연과학 중에서는 약간은 문과 성향인 사람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제가 수학을 워낙 못 했기 때문에 대학을 두 번이나 떨어졌는데 생물은 수학을 잘 못 해도 웬만큼 하겠더라고요.

    백창은> 하필 그런 성향인 선생님이신데 윌슨 교수님이 또 그런 비슷한 결을 갖고 계셨던 것도 정말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최재천>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제 지도 교수님은 개미 논문을 수시로 쓰시니까 개미 논문도 1년에 수십 편을 쓰시면서 거의 해마다 대중을 위한 과학책을 쓰신단 말이죠. 옆에서 봤을 때 저분은 시간이 25시간인가 싶을 정도로 그걸 다 하시는 거죠. 그런가 하면 언론 인터뷰도 자주 하시고. 교수님 방에 보면 기자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그리고 국회 청문회에도 가시고 그래요. 왜 저렇게까지 하실까? 그런데 그 당시 미국에서는 미국 과학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으면 연구비의 0.1% 정도는 연구 결과를 어떻게 세상에 알렸느냐, 대중과 어떻게 소통했느냐 거기에 돈을 쓰게 돼 있어요. 그게 왜 그러냐, 과학은요. 참 얄궂은 학문이에요. 과학 없이 현대인이 살아갈 수 있을까? 단 하루도 못 버팁니다. 과학은 이제 거의 공기와 물 같은 존재가 됐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과학은요. 과학자들이 스스로 과학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중요한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한가 해서 돈을 거기다 다 나눠주고 과학에 투자하는 돈은 자꾸 줄어들어요. 그래서 과학하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얄궂은 운명이에요. 이렇게 중요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자기가 자기 입으로 얼마나 중요한가를 끊임없이 떠들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워낙 글쟁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니까 글 쓰는 게 좋아서 하니까. 그러다 보니까 남들이 보면 주책맞을 정도로 책을 많이 썼네요. 제가 생각해도 좀 심했나 할 정도로 너무 많이 쓴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요.

    ▶ 1세대 과학 아이돌

    백창은> 아이돌도 1세대, 2세대 아이돌이 있듯이 글 쓰는 과학자 선생님들도 어떻게 보면 저는 선생님이 1세대이시라고 생각하거든요.

    최재천> 저보다 먼저 권오길 교수님 같은 분들이 계시기는 하셨어요. 그런데 아마 대중에게 이렇게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제가 1999년에 쓴 <개미 제국의 발견>. 그 책이 아마 우리나라 과학책의 새로운 판을 까는 그런 역할을 했나 봐요. 그래서 저를 자꾸 1세대라고 부르시는데. 어쨌든 제가 그 분위기를 만들었던 어찌 됐던 저는 요즘 참 뿌듯해요. 상당히 많잖아요. 제가 예전에 만약 고군분투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면. 그 당시에는 제가 과학책을 아무리 잘 써서 과학계에는 인기 도서라고 했는데 전체 순위에서는 백몇십 등 밖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과학책 분야에서 인기 도서가 전체 (분야)에서도 제법 순위권에 들어오기도 하고. 참 많이 컸잖아요. 지금은 탁월한 과학 커뮤니케이터들, 정말 재밌고 알찬 책을 쓰는 그런 분들이 참 많아져서 제가 키운 것도 아닌데 그냥 괜히 뿌듯해요.

    백창은> 초반에 힘드신 점은 없으셨어요? 그런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최재천> 왜 없었겠어요. 진짜 너무 황당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미국에서 과학을 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이렇게 훈련을 받고 교육을 받고 온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들어왔는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교수회의를 하고 있는데 제 4년 선배님이신데 저를 보시면서 ‘하버드에서 박사했다고 해서 데려왔더니 자기가 무슨 연예인인 줄 아나 봐. TV에나 나가고 말이야.’. 난 처음에 내 얘기 하는 줄 몰랐어요. 듣고 있다가 가만히 들어보니까 이게 내 얘기를 하시는 것이더라고요. 거기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얼어붙었어요. 완전히 몸이 얼어붙어서 내가 뭘 잘못했지? 저한테 약간의 힌트라도 있었으면, TV에 나가서 강연하는 게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제가 느꼈으면 오히려 어떻게 했을 텐데. 어떻게 하지? 나도 이제 그만둬야 하겠다. 그래서 그때 TV 같은 데서 연락이 오면, PD나 기자가 연락이 오면 ‘제가 시간이 없어서요’ 이러고 슬슬 숨으려고 했어요. 근데 뜻밖에 교수 회의 끝나면 건물을 빠져나가서 제 방으로 가야 하니까 가다 보면 화학과, 물리학과 교수님들을 만나요. 길에서. 그런데 그분들은 또 저한테 ‘최 교수 덕에 말이야. 자연과학이 많이 알려져서 면접하는데 왜 자연과학하게 됐냐니까 최재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왔대’. 당신이 최고라고. 이건 또 뭐지? 진짜 혼란스러웠어요.

    백창은> 너무 상반된 그런 반응이.

    최재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제가 미국에서 15년을 살다가 왔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한국 사정을 제가 이해를 못 하는 부분도 있었고 너무 미국 분위기에 젖어서 열심히 하려고 이렇게 하다가 한 방 맞으니까 상당히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요. 금방 분위기가 변해가더라고요. 지금은 거의 자신만만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자연과학하는 거의 모든 분이 다 원하시죠. 다 과학 커뮤니케이션하기를 원하시죠.

    ▶ 최재천이 말하는 '과학적 사고'

    백창은> 그렇게 교수님께서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역할, 또 글 쓰는 과학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그러면 선생님의 책을 읽고 일반 대중들이 할 수 있는, 따라갈 수 있는 과학적인 사고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최재천> 참 고마운 질문인데요. 우리가 자꾸 과학 대중화라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리처드 도킨스의 책의 서문에 보면 도킨스가 그런 얘기를 해요. 과학 대중화를 잘못하면 과학에 물을 너무 많이 타게 된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준답시고 너무 쉽게 하다가 과학 알맹이는 빠지고 분위기만. 그래서 제가 이 말을 이렇게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 저는 대중의 과학화, 이렇게 표현을 해봤어요. 모든 분이 상대성 이론을 빠삭하게 이해해라, 이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그렇게만 되면 훨씬 우리 사회가 합리적으로 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떼만 쓰면 어느 정도 통하는 사회가 돼버렸잖아요. 그래서 합리적인 사회로 만들어가는 단계에서 과학적 사고가 큰 역할을 할 거라는 거예요. 그럼 과학적 사고가 뭐냐. 우리가 뭔가를 알아내려면 실험을 해야 하니까 실험군. 우리가 조건을 바꿔서 조작한 실험군이 있으면, 이것(실험군)만 갖고 있으면 뭔가를 했기 때문에 변한 거지 이게 이걸로 인해서 변한 거라는 걸 알아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대조군을 항상 병행해서 이 둘의 결과를 비교해 유의미한 차이가 나오면. 내가 조건을 바꿔준 이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이게 과학의 가장 기본이다. EBS에서 거의 6개월 동안 강연할 때 경상도의 농부라고 하면서 친필 편지를 써 보내신 어르신이 있었는데. 이 어르신이 편지에 뭐라고 썼냐면 선생 강의하는 걸 듣다가 아이디어가 생겼다. 올해 밭을 둘로 나눠서 한쪽에는 유기농으로 하고 한쪽에는 옛날에 하던 대로 하고. 그래서 이 둘을 연말에 비교해보고 어떤 게 나에게 수확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이로운가 보겠다. 완벽한 실험은 아니지만, 그분이 70대 노인이셨는데 그 당시. 그런 생각을 하시고 저한테 편지까지 쓰셨다는 게 너무 반가웠어요. 바로 이건데. 우리가 지금 하고자 하는 게. 생각해봐요.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하는 일들을 한번 보세요. 예산을 확보해서 어디에 투자해요. 투자해보고는 몇 년 후에 뭐라고 하냐면 그 정책으로 인해서 이렇게 변했대요. 그렇게 하면 이게 그냥 돈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변한 건지, 돈을 들여서 그 정책을 제대로 시행했기 때문에 변한 건지 알 수가 없잖아요. 사실 그런 걸 하려면 실험군과 대조군을 같이 해서 정책도 두 개를 비교해보고 확실히 돈을 투자해서 이렇게 해봤더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구나. 그 결과를 얻어서 그걸 전국적으로 펼쳐야 하는 거예요. 우리는 대조군을 한 번도 설정하는 적이 없는 거예요. 저는 이런 식으로 국가가 정책을 펴는 게 너무 말이 안 된다고 늘 쓴소리를 하고 살았는데 그 어르신이 제 강의를 듣고 바로 적용해보겠다고 하시니까 그때 제가 정말 무릎을 치면서 이거다, 이걸 하려고 우리가 과학 대중화를 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표현은 대중의 과학화다. 이걸 바라면서 저희가 이런 일을 하는 거죠.

    백창은> 사실 4대강 문제도 그런 식으로 적용해서 본다면 또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생길 것 같은데요.

    최재천> 네. 그렇지 않아도 사실 저는 4대강 문제에 그 제안을 오래전에 했었는데. 외국에 있는 생태학자들은 MB정부에서 4대강 했을 때 성명 발표도 하고 논문도 여러 편 내고 했거든요.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강 생태계 4개를 막 연결해서…. 그 안에 사는 모든 동식물이 다 섞여버려야 하는 건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 외국 동료들이 먼저 저한테 제안해서 저도 아이디어를 좀 발전시킨 건데. ‘이건 신이 내린 기회가 아니냐’ 그렇게 표현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네가 만일 한국 정부에 ’내가 강 생태계를 연구하기 위해서 강 4개를 연결하고 댐을 수십 개를 만들고 이런 실험을 한번 해보고 싶다, 예산 수십조를 달라‘ 그러면 그게 말이 되냐. 아무도 못 한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해줬지 않냐?’. 그러니까 이미 실험은 진행이 됐고. 그러면 이제부터는 해야 하는 게 절반씩 나눠서 절반은 환경단체들이 원하는 대로 보를 트고. 절반은 그대로 두고. 그러면서 두 개를 앞으로 5~10년 비교하면서 어떻게 하는 게 옳을까 보는 거죠. 그런데 결국 우리가 그렇게 또 못했단 말이에요. 이게 정확한 과학 실험을 했더라면. 절반씩 나눠서 5년을 비교했더라면 트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면 반대의 결론을. 그렇게 안 하니까, 정당한 과학 실험을 하지 않으니까 결과적으로 보고서에서 결론은 보를 트는 게 이득이 더 많아 보인다.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결론밖에 못 내는 거죠. 우리는 과학 정신의 기본이 아직 안 된 거예요. 그냥 해보는 거죠. 미안한 얘기인데 우리나라 생태학 연구의 많은 부분이 너무 그런 식으로 연구를 해요. 나가서 나무 두께를 쟀다. 뭐를 쟀다. 여기도 쟀다. 다 쟀다. 2년 동안 재봤더니 이만큼 컸다. 참 이상하게 많은 연구자가 대조군이 뭐냐고 물으면 그때야 ‘글쎄요’ 이렇게 얘기하는 게 저는 이해가 안 돼요. 그건 과학의 기본 중의 기본인데. 과학이 기술하는 학문이 아니거든요. 현대과학은 실험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반드시 대조군을 두고 실험을 해봐야 하는 건데 나가서 관찰만 하고 관찰의 결과를 가지고 ‘내가 생각할 때 이렇다’ 그건 과학이 아니거든요.

    최재천> 우리나라 이제 제법 괜찮은 나라거든요. 이만하면. 경제적으로도 세계 10위권에 들어있고 여러 면에서 이제는 제법 많이 컸어요. 근데 우리나라가 결정적으로 못하는 게 하나 있거든요. 그게 뭐냐면 마주 앉아서 얘기하는 걸 못 해요. 토론이 없어요. 이슈가 터지면 그냥 욕하고 비난하고 싸우고. 근데 참 싸우면서도 어떻게 그래도 꾸역꾸역 해나가는 걸 보면 신기하긴 한데. 제 관찰에 의하면 서양이 우리보다 결정적으로 잘하는 건 토론을 잘하는 거 같아요. 둘러앉아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그래서 모두가 다 100% 만족할 수는 없지만,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중도의 길을 찾아가는. 그걸 서양의 선진국들은 제법 잘하는 것 같아요. 그걸 해낼 수 있는 그 단계에 가려면 적어도 사실을 보고 이 사실이 뭘 의미한다는 걸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는 갖춰야 하는 거예요. 지금 가짜 뉴스들이 난무하는 이유는 그 사실을 나열해 놓은 걸 보고, 데이터를 보고 그게 무슨 의미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걸 호도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다들 넘어가 버리는 거죠. 백신의 조사 자료, 통계 자료 이런 것들이 제시됐을 때 그걸 꼭 과학자만 이해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일반 시민도 숫자를 보면서 이게 평균이 이 정도 되고, 편차는 이 정도 되니까 이 정도 되면 아주 괜찮은 거네. 이런 걸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고요. 저는 언젠가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그 정도 수준에 오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 가는 과정에 제가 생각할 때는 토론 능력이 빨리 함양이 되면 상당히 그 과정이 좀 빨라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것만 우리가 조금 더 배우면 참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혼자 하고 있습니다.

    ▶ 앎을 허락받은 유일한 동물, 인류

    백창은> 선생님께서 지금 수십 년 동안 이미 많은 성취와 업적이랄까요. 그런 걸 많이 이루셨지만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으세요?

    최재천> 특별히 꼭 하고 싶은 건…. 저는 원래 거대한 과학적 질문 또는 힉스 입자를 내가 어떻게든 발견하고야 말겠다. 그런 목표를 가졌던 위대한 과학자가 아니라서. 저는 그냥 꾸준히 뭘 하는 걸 늘 해왔거든요. 개미는 40년도 넘었고 까치는 25년째 들어가는 것 같고. 인도네시아에서 하는 긴팔원숭이도 한 15년, 돌고래도 거의 10년째 가고. 그냥 제가 없어지더라도 저는 그 연구가 그냥 쭉 이어져서 가기를 바랄 뿐이죠. 사실 생물학의 일부 분야를 빼고 우리 인류가 하는 거의 모든 학문 분야는 다 한 종의 동물을 연구하잖아요. 호모 사피엔스라는. 경제학은 호모 사피엔스의 물물 교환 행동을 연구하는 생물학이고, 법학은 호모 사피엔스의 갈등을 조정하는 생물학이고. 이렇게 따지면 모든 학문이 다 호모 사피엔스 생물학이거든요. 이러면 가끔 생물학 제국주의자라고 욕을 먹기는 하는데.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서 몇천 년을 연구했잖아요. 그런데 만약 누가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질문하면) 아직도 답을 가진 분이 한 분도 안 계신 걸로 제가 아는데. 왜 까치는 5년 연구한 다음에 답을 내놓으라 해요? 그것도 아니에요. 그냥 꾸준히 해야 하거든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가면 박새만 거의 100년 가까이 연구하고 있어요. 그 데이터베이스의 막강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까치 연구에 있어서는 전 세계에서 제 연구실이 가장 중요한 연구실이 됐거든요. 그러니까 이미 그런 위치에는 왔지만 그래도 정말 제대로 된 힘 있는 논문이 나오려면 저는 고생만 하고. 은퇴하기 전에 까치 논문, 멋있는 논문 나오기는 좀 너무 이른 거 같고. 이게 그래도 한 40~50년은 돼야 뭔가 그럴듯한 논문이 될 것 같은데. 까치는 박새하고는 또 다르거든요. 도시에 사는 새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훨씬 중요한 데이터를 줄 수 있을 거예요. 도시의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느냐를, 도시의 기후가 어떻게 변화하느냐를 제일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종이 될 것이거든요. 언젠가는. 이미 그런 게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서 약간 흥분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흥분하다가 집에 가야 하고. 제 후배 교수들은 잘하면 아주 멋진 연구 발표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게 제 꿈이에요. 그때까지는 죽지는 않아야 하는데 그걸 보기는 봐야 하는데.

    백창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교수님 마지막 질문드리겠습니다. 전 질문하고도 연결되는 질문 같은데 10년 후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를 해주신다면?

    최재천> 10년 후요? 지금의 제가 10년 후에 저한테 하는 얘기죠? 미안하다고 얘기를 해야 하겠네. 일 좀 줄이고 편안하게 여생을 즐기라고 주변에서도 그러고 생각은 많이 하는데 결국은 일 못 줄이고 그냥 일만 열심히 하다가 10년 후에 비실비실할 너를 만날 생각을 하니까 참 미안하네. 진짜로 미안하다.

    최재천> 오랫동안 생물을 관찰하면서 제 나름대로 터득한 진리 중의 하나인데요. 우리가 서로 미워하고 서로 헐뜯는 게 서로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해서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우리가 누구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나면 해치기 참 힘들어질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연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자. 자연을 보호합시다, 쓰레기를 주웁시다. 이런 거 아무리 떠드는 것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시민들에게 자연에 대해 조금 더 알려드리고 더 알게 하고. 내가 내 주변에 같이 사는 생물에 대해서 어느 수준으로 알게 되면 걔네를 해치는 일을 못 해요. 그게 한마디로 우리말로 앎이잖아요. 이 세상에 앎을 허락받은, 만약에 신이 있어서 신이 그런 걸 허락해준다면 허락받은 유일한 동물이 우리거든요. 사실 생각하면 너무 단순하고 쉬운 말인데 곰곰이 생각하면 제법 깊이 있는 말이거든요. 모든 분이 알아가는 삶을, 더 많이 알아가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연출 맹혜림
    취재 백창은
    촬영 류지현 고광현 허경민
    뉴스그래픽 김지현 홍해영
    CG 김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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