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싸랑] 최초! 직장인 과학 인싸 등장

백창은 기자

bce@tbs.seoul.kr

2022-11-3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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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는 누구?

    민태기> 저는 어쨌든 엔지니어고요.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크리에이터이고 또 하나가 저를 규정하는 말은 터보. 세 번째이고. 네 번째가 제가 좋아하는, 저 자신에 대한 규정 중 하나가 딜레탕트라는 말이 있습니다. 딜레탕트를 번역하면 애호가인데 즐긴다는 말도 되거든요. 마지막 키워드를 저를 규정한다면 음악이겠죠.

    민태기> 저는 터보 기계를 연구하는 연구소의 연구소장이고요. 저희 회사는 주로 터보 관련 유체 기계 관련 일을 지난 30년간 개발했던 회사입니다. 그래서 저도 유체 역학을 전공했고 졸업하고, 학위를 하고 그다음에 여러 회사를 거쳐서 지금 회사에서 제 전공을 계속 이어서 연구하고 실제 제품을 만들고 양산하고 그런 일을 맡고 있습니다.

    백창은> 지금 엔지니어라고 말씀을 해 주셨고 방금 전까지도 용접하다가 오셨다고.

    민태기> 용접을 제가 직접 하진 않지만 용접을 보냈던 공정이 있고요. 또 하나는 옆에 샤프트라고 하는데 기어 이빨을 내는 공정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또 어디에 보냈던 공정들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그런 것들을 매일매일 제가 확인해야 하고. 진행 상황이라든지 전후 공정들을 어떻게 배치할지 뭐 그런 것들이 항상 매일매일 저한테 닥치는 일입니다.

    백창은> 사실 저희가 지금까지 한 20분 정도를 만나뵈었는데 그 많은 인싸들 중에 유일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계신 인싸이세요.

    민태기> 그렇다고 들었어요.

    백창은> 오늘 직장 어떻게 하고 오신 거예요?

    민태기> 말씀드렸지만, 회사나 특히 제조업 같은 경우는 실무자가 아닌 사람이 일과 시간에 일할 일은 거의 없어요. 일과 시간에 일하는 사람들은 실제 업무에 투입되는 사람들이고요. 저희같이 관리자라든지 간부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 그 공정들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 그 공정들을 그다음에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해서 의사 결정을 하기 때문에 일과 시간에는 실무자에 비해서는 자유롭죠.

    백창은> 그래도 잠깐 짬을 내서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셔 너무 감사합니다.

    민태기> 감사합니다. 불러주셔서.

    ▶ 발사체의 핵심, 엔진 개발에 있다

    백창은> 아닙니다. 터보 엔진 말씀을 아까 전에 잠깐 해 주셨는데 누리호 로켓 엔진 개발과 관련해서 이 터보 펌프의 핵심 부품을 개발하셨다고 들었어요. 이 발사체를 제작한다는 것에서 엔진 개발의 핵심은 무엇인지, 그리고 또 그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뭔지 궁금합니다.

    민태기> 제일 먼저 로켓 엔진에 대해서 제가 강연을 가끔 하고 어린 친구들한테 설명을 할 때 로켓 엔진이 그냥 엔진과 다른 점은 누리호가 총 중량이 200톤 정도 됩니다. 그중에 180톤이 연료예요. 그리고 나머지 이것저것 하면 엔진의 무게는 사실 얼마 안 됩니다. 그러니까 200톤 중에 180톤을 소진하잖아요. 불과 몇 분 이내에. 그러면 1초에 200㎏을 소진해야 되거든요. 그럼 200㎏을 1초에 엔진에 뿜어주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하죠. 그게 터보 펌프입니다. 터보 펌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이 터보 펌프의 역할이 중요한 데 비해서 우리의 기술이라든지 하다못해 부품 하나, 볼트 조그마한 것 하나도 절대로 수입이 안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다 만들어야 해요. 그것을 우리가 MTCR이라고 하거든요.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라고 하는데 누리호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다 개발해야 하고 그중에서 가장 핵심인 터보 펌프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만들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죠. 사실 여기에서 이익이 날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 했을 거예요. 이게 뭐 얼마나 이익이 나겠습니까. 하지만 이걸로 우리가 그동안 수십 년간 다졌던 제조업의 기반을 확인하는 길이잖아요. 거의 기술에서 최고 수준이거든요. 거의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다가 우리나라가 쌓아 왔던 기술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정부와 정부 출연 연구소와 모든 기업들이 같이 했던 굉장히 거대한 하나의 작업이었죠.

    ▶ 작지만 큰 걸음마

    민태기> 걸음마 단계겠죠. 걸음마 단계지만 그 걸음마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 몇 군데가 없어요. 그런데 큰 걸음마를 하는 단계로 볼 수 있고. 다누리호 같은 경우도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누리호는 펠컨9이라는 스페이스X사의 발사체에 우리가 위탁해서 발사했지만 펠컨9은 저궤도 위성 전용 로켓이거든요. 이게 지금 달까지 가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는 것은 달까지 가고 있는 그 궤도를 우리가 통제하고 있다는 말이 되고. 지금 태양으로 향하고 있다가 지구로 꺾었죠. 그 모든 기술을 우리가 확보한다는 건 엄청난 기술이고 만약 이번에 다누리호가 성공한다면 펠컨9으로 달 탐사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가 될 거예요. 두 번째 시도이고 첫 번째는 실패했기 때문에 그게 된다면 우리도 굉장히 여기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죠. 걸음마지만 굉장히 큰 걸음마를 딛고 있다. 저는 그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백창은> 저희가 몇 회 전에 황정아 박사님도 만나봤었는데 그분께서는 우주 산업과 관련해서 하셨던 말이 제도적인 유연함이 좀 더 있었다면 수많은 업체들이 참여하는데 좀 더 유연하게 참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 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민태기> 제한된 어떤 제도 같은 게 있겠지만 극복해야 하는 게 엔지니어들의 일이고요. 하다 보면 제도적인 제약도 많겠지만 기술적인 제약은 훨씬 많거든요. 답이 없어요. 물어볼 데도 없어요. 그냥 해야 하는 거죠. 그런 일들을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우리한테 남겨진 과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고 우리 DNA 속에 있어야만 우리 후속 세대들이 경험에서 자신감을 얻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히딩크라는 분이 대한민국도 월드컵 본선에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목표가 높아지는 거죠. 똑같이 누리호가 제약도 있고 기술적으로 이전도 안 되고 물어볼 곳도 없을 때 우리가 스스로 돌파했다는 경험이 축적되면 그 자신감으로 인해 우리 후속 세대들은 당연히 로켓을 쏘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 다른 꿈을 꾸게 되겠죠. 그걸 심어주는 게 우리 엔지니어의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창은> 너무 멋있는 말씀이신데요.

    민태기> 우리 아버지 세대도 그렇게 해오셨죠. 그때 제철소를 만들고 유조선을 만들고 했던 게 그냥 되는 건 아니었겠죠. 맨바닥에서 했을 텐데 그런 자신감이 축적돼서 우리도 누리호를 발사하게 된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어요.

    백창은> 그 과정에서 핵심 부품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셨고.

    민태기>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게 감사한 일이죠. 우리가 축적된 기술을 그렇게 응용할 수 있었던,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게 굉장히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죠.

    ▶ 유체 역학의 과학사

    백창은> 사실 터보 엔진 관련해서는 박사님께서 쓰신 책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책에서 소용돌이를 키워드로 유체 역학의 과학사에 대해서 서술해 주셨는데요. 이 유체 역학이 로켓 공학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고요.

    민태기> 제 책의 전체 줄거리는 이런 건데요. 과학사에 기나긴 흐름이 있다면 200년, 300년간의 흐름을 엮어줄 수 있는, 이 흐름을 하나로 꿰뚫는 보텍스(vortex)라는 소용돌이가 있는데 그 소용돌이의 제일 끝에 에테르라는 보텍스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이래 우주의 천구는 왜 도는가라는 문제에 빠졌던 거죠. 그 해답으로 우주는 에테르라는 물질로 가득 차 있고 그 소용돌이가 지구를 움직이고 태양을 움직이고 행성을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 꾸준히 연구하다가 결국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에테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그러면 그것을 추적했던 우리 같은 유체 역학을 하던 사람들은 허무에 빠질 수 있죠. 그런데 그와 동시에 개발됐던 것이 항공 기술과 로켓 기술이었어요. 그런데 이 두 기술은 국가 안보와 직결됐던 거죠.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나중에 핵무기나 이런 것들을 개발하면서 유체 역학이 갑자기 군사화가 되고 안보 문제의 핵심이 되면서 뗄 수 없는 문제가 되는데요. 유체 역학이 과학의 철학적인 문제를 다뤘다면 현대 유체 역학은 굉장히 실용적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자동차의 공기 역학적인 흐름도 있겠지만 로켓 공학에서 1초에 200㎏, 300㎏을 태울 수 있는 그 흐름. 그걸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그런데 저는 반대로 조금 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또는 과학사의 과거를 푸는 문제로 거꾸로 한번 돌아보고 싶은, 근본적인 문제를 한번 제기해보고 싶다는 의미에서 <판타레이>를 쓰게 됐습니다.

    백창은> <판타레이>와 관련해서는 뒷부분에서 조금 더 얘기를 해보도록 하고 지금 발사체 관련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러면 박사님께서는 현장에 계신 입장으로서 우리나라 우주 발사체 산업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내다보시나요?

    민태기> 우주 산업을 저희가 1,000조 원 시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000조라는 시장에 발사체가 차지하는 것은 얼마 안 됩니다. 대부분은 위성, 통신, 데이터 서비스거든요. 사실 발사체는 위성 서비스를 잘하기 위한 하나의 마중물에 불과한데요. 왜 우리가 발사체에 대해서 독립하려고 하냐면 사실 우리가 발사체를 독자적으로 개발하지 않더라도 외국의 발사체에 용역을 맡길 수 있겠죠. 다누리호도 그렇게 했고요. 그런데 문제는 큰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산업적으로도 그렇고 또는 과학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위성을 원하는 시점에 발사하려면 독립이 안 돼 있으면 곤란합니다. 황정아 박사님이 개발한 도요샛 같은 경우 러시아에서 발사를 못 하게 됐죠. 결국은 누리호 세 번째 발사에 실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다행히 우리가 합당한, 어느 정도의 기능이 된 발사체를 가지고 있기에 망정이지 못 하게 될 뻔했죠.

    백창은> 누리호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민태기> 그리고 또 하나는 어떤 소행성이라든지 특정한 탐사를 할 때는 그 목적에 맞는 궤도가 존재하죠. 그 궤도에 도착하려면 특정한 시점에 우리가 무조건 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독자적인 발사체를 안 가지고 있으면 못하는 것이죠. 또 안보적인 문제가 있어요. 우리가 정찰 위성이라든지 아니면 군 정찰 위성이라든지 군 통신위성 같은 게 매우 중요하거든요. 우리가 그것을 해외에 의존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이것도 우리가 독자적으로 발사체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 누리호, 다음은 다단 연소 엔진

    백창은> 그러면 그 과정에서 터보 엔진 개발하시는 입장에서 계획하고 계신 게 있을까요?

    민태기> 이미 누리호 사업 개발은 끝났다고 보고요. 계속 발사만 남았죠. 총 6회가 예정돼 있고 2회가 발사됐고 4회가 남은 상태입니다. 3회가 발사되면 4, 5, 6회는 민간 기업이 발사하게 됩니다. 주관 기업은 이미 정해진 상태이고. 이것은 계속 발사하겠지만 후속 발사체 개발 사업은 이미 진행이 되고 있어요. 예비적으로 2016~2017년부터 다단 연소 엔진이라는 것을 추진하고 있고 내년(2023년)부터 조금씩 시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엔진은 매우 중요한 게 뭐냐면 누리호 엔진보다 추력이 더 좋아요. 효율도 더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누리호를 개발하고 여러 가지 위성 서비스, 우주선 개발 서비스를 개발한 게 최종 목표 중 하나가 2030년 달에 착륙하는 것이거든요. 다누리호 같은 경우는 달 궤도를 돌고 그냥 끝나는 것이지만 달에 착륙하는 목표가 2030년인데. 다누리호는 비록 스페이스X의 펠컨9에 실려 갔지만 2030년에 달 착륙선은 직접 우리 발사체로 하겠다는 건데 그 후속 발사체 엔진이 다단 연소 엔진입니다. 그게 개발 중에 있고 아 개발을 준비하고 있고 본격적으로 개발이 내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꿈이 커져야 판이 커진다

    민태기> 이미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많이 커졌어요. 많이 커졌기 때문에 투입되는 예산도 많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 예산이 더 커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면 빨리 성장하는 만큼 꿈이 빨리 커져야 하거든요. 목표 의식들이. 제가 가끔 강연할 때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제가 일론 머스크와 동갑입니다. 동갑인데 제가 어릴 때 어머니는 우리를 주산학원에 보냈어요. 아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 주산이라는 걸 아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일론 머스크는 제가 주산 학원 다닐 때 주산 학원에는 안 갔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따라잡고 있거든요. 우리 다음 세대한테 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는 이미 달 탐사를 한다. 그럼 당신들은 어른이 되면 달에 착륙할 것이다. 꿈이 커져야만 판이 커집니다.

    ▶ 통섭의 과학 칼럼니스트

    백창은> <판타레이> 말씀해 주신 것 관련해서 여쭤보려고 합니다. 지금 미디어에서 박사님을 소개할 때 항상 붙는 수식어가 있더라고요. 알고 계시나요?

    민태기> 잘은 모르는데 들었습니다.

    백창은> 알고 계시네요. 과학과 예술, 인문학을 넘나드는 통섭의 과학 칼럼니스트.

    민태기> 감사합니다.

    백창은> 들어보셨죠? 언제부터 과학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민태기> 제가 원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음대 과목을 들었어요. 그리고 국문학과 과목을 듣기도 하고 경제학과 과목을 들었는데 우리 전공과는 다르게 가르치더라고요. 어떻게 가르치냐면 예를 들어서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고흐가 살았던 시대를 먼저 설명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고흐의 인생이 그 시대와 어떻게 연관이 됐는지. 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설명을 하고 같이 풀어나가는데 우리는 방정식부터 쓰는 거예요. 나는 라그랑주, 라플라스가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데. 대학교 오면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그 사람도 인간이잖아요. 과학자도 인간이고 수학자도 인간이면 누군가의 자식이었겠죠. 그러면 부모랑 갈등도 있었겠죠. 아니면 결혼했으니까 배우자와 아이들 생계를 위해서 고생을 했겠죠. 그런 이야기가 없으면 잘 이입이 안 됐어요. 그래서 제가 혼자 많이 조사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방정식이나 물리 법칙이 조금 더 저한테 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 당대 모두의 고민이었구나. 이거는 과학적인 고민뿐만이 아니라 예술가들도 고민이었고 모든 사람의 주어진 숙제를 풀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그림을 그렸고 어떤 사람은 작곡을 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문학 작품을 했겠지만 과학자들은 과학자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 나갔구나. 그럼 이것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문명사를 조금 이해하겠다.

    백창은> 그럼 지금 준비하고 계신 다른 책이 있나요?

    민태기> 저는 한국의 과학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국의 과학사 중 먼 이야기. 장영실이나 세종대왕, 측우기 이런 이야기는 지금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 같고. 딱 100년 전에 우리나라 전국에서 상대성 이론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사람들이, 결국 그 후계자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도 했었고 우리나라에 대학도 설립했고 지금의 학문, 우리나라 과학의 선구자들입니다. 그런데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죠. 이어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구나’ 할 정도의 사람들이 있는데 거의 안 알려지지 않았어요.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상태로, 식민지를 벗어나자마자 불과 몇 십 년 만에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걸 한 번 이야기해주고 싶고. 우리 다음 세대는 과거에 대해 주눅든 게 아니라 (과거 세대가) 그렇게 노력했기 때문에 (성장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물려줬고 우리 다음 세대는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 과학에 대한 흔한 오해

    민태기> 과학이나 기술에 대해서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기괴한, 머리 하얀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상한 실험이 막 터지고 이런 게 과학은 아니고. 그냥 사람 사는 거 똑같습니다. 일원론의 시대에 천문학을 왜 의대에서 가르쳤냐 하면요. 사람들이 하늘을 보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MBTI, 혈액형도 그렇지만 천문 운행의 법칙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서 천문학을 그때 배운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나눈 게 과학의 시작이거든요. 데카르트. 도대체 천체 운행의 법칙과 나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이게 과학의 시작이거든요. 똑같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가 답을 줄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것들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죠.

    백창은> 박사님께서 지금 과학 기술을 전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겸손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중요시하시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 같거든요.

    민태기> 과학자들 또는 과학, 기술, 공학에 투입된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을 많이 가질 필요가 있죠. 제일 많이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건 신기한 걸 만들어 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위험성도 알고 있는 것이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그걸 극복하는 것도 우리의 임무입니다. 이런 생각을 제가 해봤어요. 기후 위기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과학의 진보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어떤 걸 진보라고 생각하냐면 번개 맞지 않기 위해서 피뢰침이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똑같이 비가 안 온다고 기우제를 지내거나 누구를 희생양 삼는 게 아니라 기상 예보하고 이런 게 맞는 것이거든요. 그게 인류의 진보였듯이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뭘까. 여러 가지 생각할 수가 있죠. 탄소를 줄여야 하고 탄소 중립을 위해서 우리가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하고. 다 알겠는데 그래도 안 된다면 방법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런 게 뭐가 있을까. 그 정도까지 해줘야 해요. 그러니까 자라는 아이들한테 공포심을 준다는 게 최선인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에 힘들어 합니다. 부모가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해주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충분히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일까. 해수면이 높아진다면 댐을 쌓는 방법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인지 또는 연교차가 심해져서 식생이 바뀌었을 때 우리가 다른 식생으로 품종을 개량하는 방법이 있는 것인지. 그것은 과학자들이 해줘야 할 답이거든요. 이래도 저래도 우리는 답이 없다. 이거는 별로 진보적인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긍정적인 이야기를,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어른들과 기성세대의 역할이라고 저는 믿는 편이에요.

    백창은> 그런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시는.

    민태기>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그게 될지 안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약은 많겠죠. 그런데 그걸 깨뜨리는 게 또 엔지니어의 역할이고.

    백창은> 이렇게 수미상관으로 또.

    민태기>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제가 다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충분히 노력하시는 분이 많다고 믿고 있고 우리가 자꾸 덧셈과 곱셈을 하는 이유는 뭐냐 하면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으시거든요. 그분들의 모든 이야기들을 계속 듣고 이야기하고 좋은 이야기를, 무언가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계속하면 할수록 조금 더 우리가 긍정적으로 간다. 저는 그게 사회 진보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민태기>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탔을 때 그 수상 동영상이 전 세계에 뿌려졌는데요. 중간에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시인이 꿈이었다고 하면서 종이에 쓰는 게 있어요.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전 세계 수학자들이 그걸 봤을 거예요. 다양성의 시대, 경계를 허무는 시대로 넘어갔기 때문에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어떤 특정한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다빈치의 문제가 아니라 늘 그래왔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새로운 과학을 개척하고 있잖아요. 새로운 예술을 개척하고 있고. 그렇다면 그 이야기가 과학의 본질이라고, 그게 진짜 과학이라고, 그게 진짜 기술이라고, 그게 엔지니어라고 사람들한테 얘기해주고 싶죠. 그래서 제가 책을 쓰게 된 거고 강연도 하는 것입니다.

    ▶ 나에게 '유체'란

    백창은> 10년 뒤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민태기> 저는 수고했다고 하고 싶어요. 엔지니어로서의 생활은 수고했고. 지금부터 어떻게 할지. 네가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서 후속 세대한테 무슨 말을 해줄지 고민할 때인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민태기> 저는 유체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배운 것 같습니다. 유체는 끊임없이 흐르면서 자신의 모양을 바꾸면서 적응하거든요.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계곡을 만나면 숨죠. 그리고 자신의 모양을 하나로 고집하지 않죠. 우리가 가져야 할 이 유연성. 그리고 그 흐름은 끊임없이 한 번도 멈추지 않으면서 산을 깎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먼 바다를 이루면서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한테 굉장히 필수 불가결한 원소들을 제공하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유체는 제가, 민태기라는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취재·구성 백창은
    촬영 윤재우 고광현 손승익 전인제
    CG 이슬
    연출 맹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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