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코로나19, 항체 중심 백신-방역으로 극복 어렵다"…국내 전문가 유명 과학 저널 기고

강양구 기자

tyio@tbs.seoul.kr

2021-09-0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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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백신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회의적으로 답하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립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크게 두 가지를 듭니다.

    첫째, 백신을 접종하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중화 항체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흔히 언론이 ‘백신 접종 후에 시간이 지날수록 예방 효과가 수십 퍼센트씩 떨어진다’고 보도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사정 탓에 이스라엘 같은 나라는 부스터 샷, 즉 세 번째 백신 접종을 시작했습니다.

    둘째, 여기에 더해서 델타 변이, 람다 변이 같은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 변이 바이러스는 백신이 유도한 중화 항체를 뚫고서 감염 가능성을 높입니다. 실제로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나서 백신의 예방 효과는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사정만 놓고 보면 백신으로 팬데믹을 극복하는 일이 어려워 보입니다.

    노지윤 고대구로병원 교수, 정혜원 충북대 의과 대학 교수,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 소장, 신의철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 등 한국의 의학자 그룹이 이런 상황을 극복할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들의 대안은 <네이처 리뷰 면역학> 온라인판을 통해서 9월 9일 공개되었습니다. (T cell-oriented strategies for controlling the COVID-19 pandemic)

    <네이처 리뷰 면역학>은 각종 질병에서 인간의 면역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인 면역학 분야의 최신 지식과 의견을 제공하는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입니다.



    ▶‘중화 항체’ 아닌 ‘T 세포’에 주목하라!

    이들 의학자는 “중화 항체가 아닌 T 세포 면역에 초점을 맞춘 팬데믹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약점 때문에 중화 항체 중심의 전략으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중화 항체 대신 T 세포 면역에 초점을 맞춰야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에 맞춤한 대응도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들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바이러스나 백신이 우리 몸속에 들어왔을 때 유도하는 두 가지 면역 반응을 알아야 합니다. ‘항체 면역’과 ‘세포 면역’입니다.

    항체 면역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백신을 접종하면 우리 몸의 면역계는 그에 맞춤한 중화 항체를 만들어냅니다. 그 중화 항체는 코나 입으로 들어온 바이러스가 우리 몸의 세포에 감염되는 것을 막습니다. 그런데 이 중화 항체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시간이 지날수록 체내의 중화 항체 농도가 감소합니다. 백신 예방 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 지금 나온 백신(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으로 유도한 중화 항체로는 델타 변이, 람다 변이 같은 변이 바이러스를 막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델타 변이가 유행을 주도한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에서 백신의 감염 예방 효과가 눈에 띄게 떨어지는 일이 생긴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중화 항체 농도를 높이려면 부스터 샷을 접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눈여겨봐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델타 변이가 유행을 주도해서 중화 항체가 감소하고 백신의 감염 예방 효과가 떨어지는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에서도 백신 접종자는 설사 감염이 되더라도(돌파 감염)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백신 미접종자와 비교했을 때 입원율도 낮고, 중증으로 이어지거나 사망하는 일도 아주 드뭅니다.

    바로 백신이 유도하는 세포 면역 때문입니다. 신의철 교수와 제롬 김 소장 등은 이 세포 면역의 중요성이 과소 평가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세포 면역의 주인공인 T 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직접 제거함으로써 바이러스 증식을 막아줍니다. 즉, 세포 면역이 제대로 작동하면 바이러스가 몸속에서 증식할 수 없습니다.

    ▶‘T 세포’는 힘이 세다!

    실제로 코로나19를 막는 데도 세포 면역은 생각보다 훨씬 힘이 셌습니다.

    (1) 과학자들은 T 세포 면역이 코로나19 감염자가 중증으로 악화하는 일을 막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코로나19 환자 가운데 T 세포 반응 강도가 높으면 경증에서 그쳤고, 낮으면 중증으로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특별한 치료로 항체를 생성할 수 없는 혈액암 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때 T 세포 면역이 잘 작동할 때는 생존율이 높았습니다.

    즉, 지금 백신 접종자가 입원하거나 중증으로 이어지는 일이 적은 것은 상당 부분 T 세포 면역 덕분입니다.

    (2) T 세포 면역은 항체 면역과 달리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됩니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백신 접종자가 T 세포 면역으로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큼을 시사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계속해서 쌓이고 있습니다. 팬데믹 유행 초기에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를 회복 후 10개월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경증이든 중증이든 상관없이 T 세포 면역이 잘 유지되었다는 결과를 신의철 교수팀이 보고한 바 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19와 유전적 구성이 75퍼센트 정도 흡사한 2003년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도한 T 세포 면역은 17년 동안이나 잘 유지가 되었습니다.

    (3)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변이 바이러스도 T 세포 면역을 피하지 못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T 세포 면역은 알파, 베타, 감마, 엡실론 등의 변이 바이러스 공격에도 고작 10~22퍼센트만 감소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 중화 항체는 바이러스의 특정 단백질(스파이크 단백질) 좁은 부위에 작용합니다. 스파이크 단백질의 이 좁은 부위에 변형이 일어난 변이 바이러스가 중화 항체 면역을 피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하지만 T 세포 면역은 스파이크 단백질 내에서 넓은 범위에 걸쳐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스파이크 단백질 외에도 바이러스의 여러 다양한 단백질에 반응합니다. 즉, 변이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 중화 항체 결합 부위가 변형되었더라도 다른 부위가 그대로라면 그걸 포착해서 제거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T 세포 면역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집니다.



    ▶‘T 세포’ 중심의 백신, 방역 전략이 필요하다!

    노지윤, 정혜원, 신의철 교수, 제롬 김 소장 등에 따르면, 현재로서는 “코로나19를 계절 독감(인플루엔자) 또는 일반 감기와 유사한 통제 가능한 질병으로 만들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팬데믹 대응의 실질적인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두 가지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우선 “이미 코로나19 감염자의 중증 예방에 효과가 있는 승인된 백신(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접종을 계속해야 합니다.” 기존의 백신 접종으로 유도되는 T 세포 면역이 (시간이 지나서 또는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중화 항체가 제 역할을 못하더라도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강력한 T 세포 면역을 유도하는 백신 추가 연구개발의 필요성”도 강조합니다. 실제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타이완(UB-612), 한국(GX-19N, GLS-5310), 미국(VXA-CoV2-1) 등에서 T 세포 면역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백신이 개발되어 임상 시험 중입니다.

    이런 T 세포 면역에 초점을 맞춘 백신이 개발된다면, 코로나19를 장기적으로 통제하는 데에 좀 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번 기고를 주도한 신의철 교수는 “장기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을 통제하려면 T 세포 면역을 고려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출구 전략을 둘러싼 국내외 토론에 생산적인 자극을 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한국 의학자 그룹의 도발적인 발제에 국내외 의학계 및 과학계 또 방역 당국이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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