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우리 다시 3·1운동] 다시 이뤄야 할 우리말 독립

양아람

aramieye@naver.com

2019-01-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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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말모이>가 개봉했습니다.
    '말모이’는 우리나라 최초로 편찬하려고 시도했던 국어사전인데요. 사전이라는 순우리말로 ‘말을 모으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일제 강점기에 전국 각지에서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을 모으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시사회에서 먼저 영화를 접한 사람들은 '우리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꼭 봐야 하는 영화', '목숨 걸고 우리말과 글을 지켜준 조상들에게 감사하다' 라는 평을 내놨습니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른 3·1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 100주년이 됐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독립했고, 우리말과 글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생활을 보면 '우리가 과연 해방과 함께 우리말 독립을 한 게 맞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게 합니다.


    ● 말과 글이 무엇이기에‥사전 편찬을 위한 원대한 꿈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사전 편찬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말모이’는 1911년 주시경 선생(~1914.7.27.)과 제자들이 만들기 시작했지만 선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출판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 경찰이 주시경 선생을 독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게다가 ‘말모이’ 원고를 3·1운동 이후 대부분 잃어버려 일부만 남았는데요, 일부 남아있던 원고가 조선말 큰 사전을 만드는 밑바탕이 됐습니다.

    주시경 선생이 우리말을 힘써 연구하고 지키려고 했던 이유는 보성중학교 졸업생들의 친목을 위해 만들어진 <보중 친목회보> 창간호(1910.6.)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라를 나아가게 하고자 하면 나라 사람을 열어야 되고, 나라 사람을 열고자 하면 먼저 그 말과 글을 다스린 뒤에야 되나니라.
    또 그 나라 말과 그 나라 글은 그 나라, 곧 그 사람들이 무리진 덩이가 천연으로 이 땅덩이 위에 홀로 서는 나라가 됨의 특별한 빛이라.
    이 빛을 밝히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밝아지고, 이 빛을 어둡게 하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어두워 가나니라.”

    주시경 선생이 떠난 뒤에도 제자들은 그의 뜻을 따라 사전 편찬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1929년 음력 9월 29일 483돌 한글날에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인 108명은 조선어사전 편찬을 공식화하고 아래와 같은 취지서를 발표했습니다.

    “금일 세계적으로 낙오된 조선 민족의 갱생할 첩로는 문화의 향상과 보급을 급무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문화를 촉성하는 방편으로는 문화의 기초가 되는 언어의 정리와 통일을 급속히 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를 실현할 최선의 방책은 사전을 편성함에 있는 것이다.”


    ● 사라질 뻔한 우리말, 해방 후 조선말 큰사전에 담겨

    1936년 조선어학회가 조선어사전편찬회에서 사전 편찬 작업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말과 문화를 말살하려는 일본은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가만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조선 여학생이 쓴 일기장이 경찰에 발견됐는데 이 일이 커지게 됐습니다.

    여학생이 ‘오늘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한테 단단히 꾸지람을 들었다.”고 일기장에 썼는데 일본 경찰은 일본어를 쓰다가 혼난 것으로 몰아갔습니다.

    이 일기장에서 비롯된 사건이 조선어학회 사건인데요, 일본은 여학생을 가르쳤던 정태진 선생을 체포해 온갖 고문을 통해 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 단체이며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자백서를 받아냈습니다.

    거짓 자백을 토대로 일본 경찰은 학회 회원 등 관련 있는 사람들 28명을 체포해 혹독하게 고문한 뒤 구속했고, 이윤재, 한징 두 사람은 호된 고문과 영양실조, 추위와 싸우며 옥고를 치르던 중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까지 옥에 갇혀 있었던 사람들은 광복이 되자 다시 사전 편찬에 나서지만 일본 경찰이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로 압수했던 원고를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경성역 창고에서 원고가 발견됐고 원고 손질 작업을 거쳐 드디어 1947년 조선말 큰 사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 일본어인지도 모르고 쓰는 말
    우리말로 고쳐쓰거나 유래라도 알려줘야

    우리말도 외국어로 바꿔쓰는 현상 나타나
    우리말을 하류어로 끌어내리고 정보 격차 만들어

    '꿀잼', '밀당' 부정적으로만 볼 것 아냐
    교육과정에서 새 말 만드는 방법 가르쳐야

    1999년 국립국어원이 8년간 5백여 명의 국어학자와 함께 112억 원을 들여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을 출판했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지만 이웃나라의 사전을 베껴 만든 엉터리 사전이라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사전에서 일본어와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들여와 사용하고 있는 예를 몇 가지만 살펴볼까요?

    추운 겨울에 많이 팔리는 기모, 바로 일본어입니다. 기모는 일본어 발음과 거의 비슷한데다 사전에도 낱말 옆에 <일>이라고 적혀 있어 사전을 주의 깊게 봤다면 일본어에서 온 낱말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재테크라는 말도 한자와 영어를 섞어 일본에서 만들었는데 우리 생활에 그대로 정착했고 택배라는 말은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가져와 우리 식으로 발음만 바꿔 쓰고 있습니다. 그나마 기모는 사전에 일본에서 온 말이라고 나와 있지만 재테크나 택배가 일본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내용은 아예 빠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말 속에 남아있는 일본어 찌꺼기를 찾아 바로잡는 노력을 하고 있는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은 아무 생각 없이 일본어를 받아쓰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이윤옥) "일본 사람들은 말을 잘 만들어요. 택배 같은 것도 만들잖아요. 집 택, 나눌 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잖아요. 아무 생각 없이 가져다 쓸 게 아니라 ‘우리말로 고쳐 쓰면 좋은 게 없을까’ 그런 생각을 부지런히 해야 되거든요.”

    이윤옥 소장은 일본 사전을 그대로 베껴놓은 우리 사전의 낱말 풀이를 보고도 한숨을 쉽니다.

    한 예로, 사전에 토란을 풀이한 것을 보면 꽃이 육수화서로 핀다고 나와 있는데 육수화서가 무엇인지 누가 알겠냐는 거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쓰고 말의 유래를 밝혀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윤옥)“육수화서, 일본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건데요. 제가 토란 밭에 가서 토란꽃을 봤어요. 손가락 굵기의 줄기에 노란 술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제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겨 쓰면 연상되죠. 왜 이렇게 놔두고 있냐는 거죠.”

    오랫동안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노력해 온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해방 뒤 사전업계가 일본에서 나온 사전을 많이 베낀 것은 어휘 수를 가지고 경쟁을 하다보니까 벌어진 일 같다면서, 이제는 낱말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 낱말의 깊이와 넓이를 알려주고 연관을 밝혀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8년에 걸쳐 만들어진 표준국어대사전이 새로운 투자 없이 옛날 거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합니다.

    (이건범)“상당히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저는 그 과정이 단지 국어사전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이 걸어왔던 역사의 흔적, 발자취일 거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이야깃거리가 있을 거란 말이죠. 그런 것을 세대가 더 바뀌기 전에 수집하고 풍부하게 쌓아가는 노력이 나중에 우리 문화자산이 될 겁니다.”

    여기에다 어떻게 새 말을 만들 수 있을지도 교육과정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면서,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사용하는 것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이건범)“저는 새 말을 만들어내는 아이들의 발랄함, 이런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 중에서 좋은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그런 것을 할 줄 알아야 새로운 현상, 새로운 문물에 대해 새로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갖출 수 있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면, 굉장히 재미있다 ‘꿀잼’, 밀고 당기노 ‘밀당’. 저는 굉장히 괜찮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새 말을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외국에서 들어온 말을 막 쓰다 보면 외국어 능력에 따라 알 권리의 격차를 만들어내고 우리말을 하류어로 끌어내릴 수 있다고도 우려합니다.

    (이건범)“우리말로 쓰고 있던 말도 외국어로 바꿔서 얘기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요. 그런 과정에서 중요한 생각들을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하는 버릇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한국어 낱말들은 대개 일상 생활용어 수준, 떡볶이 먹을 때 쓰는 말이 돼 버리는 거죠. 학술용어나 고급언어는 다 외국어를 쓰기 시작하는 상황들이 되는 거죠.”

    말과 글은 그 겨레의 얼과 넋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윤옥 소장은 왜 우리말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중요한지 설명합니다.

    (이윤옥)“우리 겨레가 아무 거리낌 없이 말을 나눌 수 있고 문화를 전수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나라 말과 글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세계화되면서 여러 말이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우리말을 살리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안 되죠. 그렇지 않으면 자기 말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로 다른 것이 들어와 버리거든요. 한 번 들어오면 잘 빼내기가 어려워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말들이 과연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자 “하나라도 바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바뀔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윤옥)“우리가 대학 다닐 때는 신입생이라고 했어요. 신뉴우세이, 그것도 일본어죠. 그런데 어느새 새내기란 말을 쓰더라고. 되게 낯설었어요. 이상하잖아요. 이상하다는 것은 정착하기 전까지 항상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런데 정착하면 그 말이 좋아요. 듣기 좋고 아름다운 게 우리말이에요.”

    이건범 대표는 우리말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뛰어넘어 언어로 억압하고 차별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영어나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말로 바꿀 것을 권합니다.

    (이건범)“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안전문’으로 바꾼 거라든지 ‘자동제세동기(AED)’를 ‘자동심장충격기’로, ‘제로페이’를 ‘착한 결제’, ‘행복 결제’로 바꾼다든지. 이런 말에는 국민의 안전이나 생명, 권리, 재산과 관련된 것이 많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차별적으로 들어온 일본식 한자어와 번역어, 영어로 만들어진 많은 말들이 우리말에 스며들어 이미 떡하니 일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이 우뚝 서야 할 자리와 지위를 우리 스스로가 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일제 강점기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우리말을 지켜냈듯, 내가 쓰는 말이 어떤지 살피고 어떤 말을 쓰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우리말 사랑을 시작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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