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그때그사건-인터뷰전문] 영화 '택시운전사' 故김사복씨 아들 김승필씨

안경원

glasses@seoul.go.kr

2018-05-1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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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 주인공 故김사복씨 아들 김승필씨가 아버지 사진을 공개하는 모습 <사진=안경원기자>
영화 '택시운전사' 주인공 故김사복씨 아들 김승필씨가 아버지 사진을 공개하는 모습 <사진=안경원기자>
  •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 고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는 "아버지가 광주에 다녀오신 이후로 돌아가실 때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리셨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는 tbs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같은 민족을 저렇게 죽일 수 있느냐며 울분을 토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또 김 씨는 아버지가 영화 속 내용처럼 우연히 광주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이미 70년대초부터 외신기자와 교류하며 광주의 상황을 알고도 세 차례나 다녀왔다고 알렸습니다.

    특히 김사복씨가 민주화운동의 거목 함석헌, 장준하, 계훈제 선생 등의 활동을 도와온 사실도 공개했습니다.

    다음은 김승필씨와의 인터뷰 전문.

    -기자: 영화 '택시운전사' 보신 소감은?

    = 김승필: 영화는 아버님 영화인줄 모르고 가서 봤다가 마지막에 힌츠페터씨 실제 인터뷰 보고 아버님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한동안 멍 했었어요 아버님 이름을 알렸다는 것 하고 마음의 희비가 엇갈렸는데 결국은 많이 속상했었죠. 그리고 아버님을 아들 된 도리로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었고요. 아쉬운 것은 제작사가 도와줬으면 덜 힘들었을텐데 전혀 도움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죠.

    -기자: 주연 배우 역할이 아버님 역할인데 영화 제작당시 연락이 없었나요?

    =김승필: 만들 당시 아버님을 찾았다고 하시는데 못찾았고 가족들도 못찾았고 그래서 나름대로 아버님 부분은 픽션으로 처리한 것인데 픽션으로 처리를 하면 끝까지 픽션으로 했으면 덜 속상했을텐데 마지막에 실제 인터뷰 제시하면서 거기서 힌츠페터씨가 아버님을 그리워하면서 김사복씨란 이름을 찾았단 사실인거에요. 거기서 송강호씨 배역인 김만섭씨가 김사복이 되는거고. 딸이 하나가 있는게 되고 부인은 돌아가신게 되고 10만원 때문에 광주로 가고 동료의 주문을 낚아채고 힌츠페터씨하고 잔머리로 계략하고.. 물론 재미나게 하느라 만들었지만 아버님의 명예로운 부분이 많이 실추됐습니다.

    -기자: 실제 김사복 선생님 가족관계는요?

    =김승필: 저와 남동생 하나. 어머님 아직 살아계십니다.

    -기자 : 아버님 광주 가셨을 때 나이가?

    =김승필: 22살.

    -기자 : 광주에 갔다오셔서 아버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김승필 : 갔다오셔서 같은 민족을 저렇게 죽일 수 있느냐고 하시고 울분을 토하셨죠. 그리고 저한테 자세한 말씀을 해주셨고요. 저는 힌츠페터씨가 찍은 동영상을 아버님 손에 이끌려서 그 당시 광화문 프레스센터에 가서 그것을 직접 봤죠. 그래서 실상을 잘 알고 있었죠. 그런데 주변에 그당시 주변에 사람들이 그쪽은 폭도고 빨갱이고 심지어는 여기서 아무리 옳은 얘기를 하더라도 싸움만 되어지고. 저도 그게 아니다라고 얘기하곤 했었는데 저희 어린 시절 감정은 이거였었어요. 아버님이 잠입을 하고 나오셔서 그것을 몰래 찍었다고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데 제가 그것을 어디 가서 봤다 내지는 (진실이) 그게 아니다 라고 얘기하면 아버님 신변에 위험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불안 심리가 상당히 강했었어요.

    -기자 : 아버님이 그렇게 하시는 행동을 만류하고 싶진 않았나?

    =김승필 : 안하셨으면 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외신 기자들하고 교류가 있으시면서 암울했던 그 시절의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팩트를 통해서 들으셨던 분이라 그것을 아들한테 많이 전해주셨어요. 어떤 부모도 알고도 잘못된 것을 알리고 싶은 부모가 어딨겠어요.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 이게 진실이다’ 라고 하는 얘기를 아버님이 많이 해주신 거예요. 아버님이 항상 자랑스러웠고 존경스러운 분이셨어요. 그렇게 또 배우고 자랐고요.

    -기자 : 아버님의 그런 역사관이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승필 :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인권주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으셨어요. 아버님 서적을 보면 대부분 다 인권서적이에요. 그런 것을 자식들한테 충분히 교육하셨고. 아버님은 인권주의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강하셨고. 그 당시 군부가 인권을 말살하면서 권력을 가져가려는 모습이 매우 불만스러웠던 것이죠.

    -기자 : 아버님이 광주에 다녀오신 이후로 어떤 상태셨습니까?

    =김승필: 아버님이 지병이 있으셨는데 어머님과 각고의 노력 끝에 병을 완치 하셨어요. 그런데 광주 다녀오신 후에 술을 한 두잔 씩 하면서.. 그리고 제가 군대를 갔어요. 군대에서 소식이 아버님이 매일 술을 드시고 제대하고 나서 아버님이 간암 선고를 받으신 거죠. 저는 가장인데 책임감 없이 술을 드시고 일찍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 매우 슬펐지만 원망도 했었어요. 이번에 보도나 증언들이 나오면서 아버님이 트라우마를 겪으셨구나 알게 됐어요. 우리가 도로에서 교통사고 난 것을 잠깐 봐도 하루가 가는데. 그 전쟁터와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죽는 것을 죽는 것도 그냥 죽는 장면들이 아니잖아요. 아버님이 소상하게 나한테 얘기했던 그런 것이 생각나는데. 그런데 그런 것을 보고난 사람들이 어떻게 멀쩡할 수 있냐고 아버님이 트라우마를 겪으셨구나 알게된거에요. 그리고는 어느날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정말 펑펑 울었어요. 아버님한테 죄송하다고 이러면서 고백하기도 하고. 결국은 이번에 힌츠페터씨 다큐멘터리 17일날 개봉하잖아요? 그것을 만들면서 장감독님하고 이런저런 얘기나누는 가운데 아 이거였구나 알게된 것이 아버님하고 힌츠페터씨하고 같은 곳에서 같은 장면을 보셨던 분들이 한분은 독일에서 트라우마를 겪으셨고 환영 내지는 환상을 그렇게 트라우마를 겪으셨고 아버님은 한국에서 괴로워하셨던 것이죠. 두 분이 동시에 트라우마를 겪으시고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광주에서 처참한 모습들을 엄청 봤을 텐데 그 자리에서 대검에 찔려 죽는 여학생 모습도 보셨고, 임산부가 총에 맞고 죽는 장면도 보셨고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정상일 수 있겠어요?

    - 기자 : 5.18 민주화운동 이제야 진상규명 시작되고 있습니다.

    =김승필 : 오랜 세월동안 아직도 10%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암담한 일 인거죠. 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우리 민족사이고 중요한 사실은 사람은 왜 과거에 대한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서로 공유해야 하는 것이냐면 미래에 더 이상 이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말자는데 취지가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광주나 호남사람만이 아닌 우리 모든 민족들이 알고 알려야 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어떤 이념이나 지방색으로 포장돼서 결국 묻혀야할 일이 아닌 거라는 거예요.

    - 기자 : 실제로 작년부터 활발한 활동을 하며 강연 등도 많이 하고 계시는데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김승필 : 이제 시작에 불과하죠. 특히나 38년이란 세월이 흘렀지 않습니까. 지금 38,39세. 40대 중반까지도 잘 모를 거예요. 젊은 분들이 잘 모른다는 거예요. 제가 젊은 분들한테 진실을 알리는 그런 일을 하고 싶은 거예요.

    - 기자: 젊은 분들한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십니까?

    =김승필: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그런 의식이 참 필요하다는 거예요. 일명 무슨 갑질이다 내지는 미투다. 여러 가지 경우들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면 사람의 인권을 귀히 여긴다면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 기자: 아버님이 5.18 민주화운동 외에도 민주열사들의 숨은 조력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일화가 있습니까?

    =김승필 : 아버님이 1970년대 초반부터 외신기자들하고 교류를 하면서 재야인사들을 알게 되셨습니다. 재야인사들이 인권주의 쪽이었어요. 아버님이 존경할 수밖에 없죠. 어느 날은 함석헌 선생님하고 찍은 사진을 저한테 보여주시면서 매우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고 그러셨거든요. 재야인사들을 그때부터 알기 시작하셨고 꾸준히 관계를 가져가셨어요. 그리고 사실 그 부분은 어떻게 보면 그 시절에 매우 위험한 숨어 있는 역할이지 않습니까. 아버님이 사진을 보여주시고 만났다고 얘기는 하셔도 그분들하고 깊숙한 관계는 그다지 오픈하지는 않으셨는데 요즘 그쪽 재야단체에서 아버님이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사진으로 제시해주고 그러셔서 아버님이 이런 얘기였구나. 한 50% 얘기하셨는데 이제 100% 알게된 경우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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