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싸_이드] ‘죽음의 마을’ 거물대리,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은성 기자

lstar00@tbs.seoul.kr

2023-02-1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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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죽음의 마을' 거물대리, 그곳에선 무슨 일이?

    집집마다 주변 공장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와 중금속 먼지가 가득 쌓여 있고. 코를 찌르는 악취에 숨이 막힙니다.

    심지어 기형 개구리까지 등장한 이곳은 공장 난개발로 인한 환경오염의 대명사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언젠가부터 암을 비롯해 각종 질환을 앓다가 하나둘씩 죽어갔습니다.

    【인터뷰】최해진 (51/거물대리 환경대책위원장/호흡기 질환)
    "지금도 폐암 걸려서 계신 분도 계시고, 순환기 질환, 암, 위암, 여러 가지 다발성 암이 있었기 때문에…. 사망자들이, 돌아가신 분들이 거의 다 암으로 돌아가셨죠."

    거물대리 옆 초원지리에서 수십 년간 삶의 터전을 일궈온 김지홍 씨는 최근 몇 년 사이 아들과 부인을 차례로 떠나보냈습니다.

    【인터뷰】김지홍 (74/초원지리 주민/피부암)
    "아들은 별안간 사망한 거예요. 집사람이 사망했고, 작년(2022년)에 나하고 같이 암 걸린 거예요."

    원인은 주택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후죽순으로 들어온 소규모 영세 공장들.

    2015년 환경부 단속 결과 거물대리 환경 오염물질 배출 사업장 총 86곳 중 72%(62곳)가 오염물질을 배출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금속을 녹여 물건을 만드는 1차 금속 제조업 주물 공장에서 불법 배출된 오염물질은 피해를 더 키웠습니다.

    【인터뷰】이윤근 소장/노동환경건강연구소
    "주물 공장에서 나오는 분진이 주물사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결정형 유리규산이라고 하는 1급 발암물질이 굉장히 많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주물 공장에서 일하다 폐암 걸리면 100% 인정됩니다. 직업병으로."

    2. 언제부터 주택가에 공장이 들어왔나?

    ‘넓은 큰 집터’라는 뜻의 거물대리는 1990년대 전만 해도 기름진 밭에 인삼과 포도 농사가 성황을 이뤘던 살기 좋은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민 150여 명이 살던 작은 마을에 이렇게 많은 공장이 들어온 걸까?

    문제는 2003년 국토계획법 개정에 따라 준농림 지역을 계획 관리 지역으로 지정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인터뷰】이영재 연구위원/한국환경연구원 국토정책평가실
    "주거, 상업, 공업, 녹지 등으로 구분되는 도시 지역과 달리 계획 관리 지역은 구체적인 용도 구분 없이 개발이 허용되기 때문에 주거와 공장이 인접하여 혼재되는 형태의 난개발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주거 지역에 공장이 들어와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겁니다.

    거기에 더해 2005년부터 개발 논리가 앞서며 꾸준히 공장 입지 규제가 완화하면서 사태는 더 악화됐습니다.

    【인터뷰】이영재 연구위원/한국환경연구원 국토정책평가실
    "국토법상 계획 관리 지역에서는 기본적으로 용도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별도 규정이 없는 한 주택 옆에 공장이 들어설 순 있습니다. 다만, 대기 오염물질의 경우 발생량이 연간 10톤 미만이고 특정 유해 물질은 환경 기준 미만 배출하는 사업장만 허용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장이 한 지역에 100개 이상 모이면 1만 톤까지 대기 오염물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거물대리가 그러한 곳이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2013년부터 4차례에 걸쳐 진행된 김포시와 환경부의 환경 역학조사 결과 거물대리 일대에서는 니켈, 구리 등 중금속 농도가 기준치 이상 검출됐고, 천식, 당뇨, 협심증, 골다공증 등의 발병률이 다른 지역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주민의 암 발생률도 전국 평균의 2배를 넘었고, 특히 폐암 발생률은 5배나 더 높았습니다.

    3. '피해 구제' 얼마나 진행됐나?

    2019년 9월, 언론을 통해 문제가 제기된 지 7년여 만에 정부는 환경 오염 피해를 인정하고, 피해 주민들에게 환경 오염 피해 구제 급여를 지급하기로 결정합니다.

    암과 같이 발병 원인이 다양한 비특이성 질환까지 인정받은 첫 사례로 피해자는 의료비와 요양 생활 수당, 장의비 등을 지급받게 됩니다.

    【인터뷰】 윤혜린 환경사무관/환경부 환경피해구제과
    "비특이적 질환은 환경뿐 아니라 유전, 생활습관 등 발생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명확한 인과관계를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그간 피해자들이 받아온 정신적 고통 등에 대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서…"

    이에 따라 현재까지 205명이 구제 급여를 신청했고, 이 가운데 192명이 천식, 기관지염, 고혈압, 당뇨병, 피부병 등 총 53종의 질환과 관련해 피해를 인정받았습니다.

    4. 거물대리의 삶은 나아졌을까?

    그렇다면, 거물대리 주민들의 삶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김포시는 2015년 김포시 도시 계획 조례를 개정해 주물업, 금속 제조업, 인쇄업 등 68종에 대한 공장 입지를 제한하고, 2018년 환경국과 전담팀을 신설해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공장 수는 2018년 254개에서 현재 312곳으로 오히려 50여 곳이 넘게 늘었고, 주물 공장도 여전히 2개소가 남아 있었습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입니다.

    【인터뷰】 김의균 (61/거물대리 주민/천식, 기관지염)
    "또 타는 냄새가 나니까 또 그러는 거야. 가래를 못 뱉으니까 공황장애 식으로 죽겠는 거야. 그래서 정신과를 가니까 정신과 약도 먹어요."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오염된 땅을 떠나고 싶습니다.

    【인터뷰】김지홍 (74/초원지리 주민/피부암)
    "눈물만 쏟아지는 거야. 집사람 보내고 나서. 환경부에 가서 이주라도 시켜달라고. 아무 소리 안 해요."

    【인터뷰】김만식 (67/거물대리 2리 이장/고혈압, 당뇨)
    "동네 주민들이 죽어가는데, 우리를 빨리 무슨 방법을 해서 구제를 해줘야 그게 시장이 할 도리가 아니냐, 시민을 위해서라도. 시장이 동네 시민이 죽어가서 만나서 말로 대화하자는데도 안 만나주고 있다고요. 바쁘다고."

    김포시는 피해 주민에 대한 보상과 이주 등 실질적인 대책이 논의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서면으로 답변을 제출했습니다.

    먼저 보상 부분은 환경 피해 구제 급여 외에 추가적인 보상 요구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없어 지급할 수 없는 사항이다.

    주민 이주는 거물대리가 포함된 대곶 지구 개발 사업에 발맞춰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김포시가 공장 난개발을 방치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당시 공장 입지 관련 규정들이 완화되어 주거 지역과 공장 지역이 혼재됐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국토계획법에 따르면 2003년부터 계획 관리 지역에서는 대기환경보전법상 특정 대기 유해 물질이나 물환경보전법상 특정 수질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은 입지가 제한됩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됐던 주물 공장의 경우 특정 유해 물질 배출 공장에 해당하지 않았던 것일까?

    주물 공장 자체가 유해 물질을 배출할 개연성은 높으나 원료 물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특정 유해 물질인지 아닌지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원료 물질로 구리를 사용한 경우에는 특정 수질 유해 물질에 해당하지만 철인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결국 법적으로 문제가 될 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실제로 가동 중인 공장 굴뚝에서 유해 물질이 배출되는데도 정작 공장이 들어설 때는 규제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어느 날 내 집 바로 옆에 들어선 공장으로 인해 건강을 잃은 주민들의 피해는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인터뷰】이윤근 소장/노동환경건강연구소
    "그거는 지자체에서 합의를 해줘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이주비를 내주는 순간 모든 잘못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공장이 지역 주민 삶 속으로 파고들게 된 가장 중요한 거가 무분별한 공장 승인이잖아요.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얘기랑 똑같은 얘기기 때문에."

    정치인, 법률가, 시민단체 등이 모두 나서 4년간의 긴 싸움 끝에 전북도와 익산시의 위로 보상금을 받게 된 '집단 암 발병' 익산 장점 마을의 경우를 적용할 수 있는지 문의해 봤습니다.

    【인터뷰】김용빈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북지부 지부장
    "결국 보상이라는 부분은 소송으로써 판결로 보상받든지 손해배상을 받든지 아니면 지방자치단체, 또는 책임 있는 환경 오염 주체가 책임을 지는 방법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인과관계 인정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고, 지자체 또는 환경 오염 주체가 책임을 지는 부분은 장점 마을 사례를 통해 일반화하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국 10여 년이 지나면서 지쳐버린 거물대리 마을 주민들은 오는 2029년을 목표로 진행되는 스마트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한 이주 대책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5. 거물대리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계획 관리 지역의 특성상 공장 입지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공장과 주거지역과의 분리가 이뤄졌어야 합니다.

    【인터뷰】이영재 연구위원/한국환경연구원 국토정책평가실
    "공장과 주거를 충분히 이격시키고 주거지 주변에 공장이 과도하게 집적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현재 성장관리계획 조례상 개발 행위 허가 기준, 특정 용도 제한 지구 활용 등 지자체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있습니다. 다만, 이 법률들은 법률상 의무적인 것이 아니기에 국가 차원에서 공장 난개발 지역이나 우려 지역을 선정해서 지자체로 하여금 이런 방안을 의무적으로 수립하도록 하는 보완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국토부 역시 해당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동안 지자체 재량이었던 성장 관리 방안을 의무화하도록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수도권의 경우 2024년 1월부터 성장 관리 계획을 수립해야만 공장과 제조업소 등의 입지가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허가를 담당하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인터뷰】이윤근 소장/노동환경건강연구소
    "각 지자체별로 난립되어 있는 조건과 승인 절차 이런 것들을 뭔가 표준화된 지침이 있어야 되고. 그리고 그 지침에 근거해서 공장 설립과 관련된 관리와 관련된 조례들이 지자체별로 만들어져야 되고."

    아울러 한정된 인력으로 현장을 단속했던 기존 환경 감시 방식에서 벗어나 자동 대기 측정 장치나 드론 등을 이용한 감시 방법 다변화, 주민감시단 권한 확대 등 실질적인 환경 관리 방안도 강구해야 합니다.

    철저한 사전 예방과 제도 개선 없이는 제2의 거물대리 사태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습니다.

    거물대리 주민의 눈물은 지금도 아무도 닦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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