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과학자 선생님, 교실 가림막이 꼭 필요한가요?"

양아람 기자

tbayar@seoul.go.kr

2021-12-2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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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가 확진됐는데, 반 친구들은 한 명도 감염이 안 됐어요. 그건 마스크 덕분인가요? 아니면 가림막 덕분인가요?"

    "가림막은 침방울을 막아주는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친구 소리나 선생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화면(모니터)도 잘 안 보이고 공간도 좁아졌어요. 가장 짜증나는 것은 가림막을 테이프로 세 번이나 붙여도 계속 떨어진다는 거예요. … 마스크를 쓰면서 가림막까지 사용해야 하니 너무너무 너무 답답해요."

    "가림막을 없애고 싶은 친구도 있고 가림막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어요. 토론까지 해봤는데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가림막이 있어야 하나요? 꼭 궁금증을 풀어주세요."




    두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이런 불편함을 느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 송중초등학교 4학년 1반 학생들이 과학자들에게 보낸 이런 내용의 편지를 읽어보기 전까진 말이다. 나중에서야 우리집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가림막 때문에 화면이 뿌옇게 보이고, 자리가 앞쪽인 아이는 친구들이 칠판 쪽에 나와 놀면서 가림막을 자꾸 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답했다. 가림막 모서리에 긁힌 적이 있다고도 했다.



    ▶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진, 그림 편지에 답하다

    4학년 1반 학생들은 지난 1학기 수업 시간에 '가림막이 필요한지 아닌지' 자기 생각을 발표했다. 어느 날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인 김신범 선생님을 화상 공간으로 초대해 이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을 낼 수 없었고, 4학년 1반 학생들과 담임인 배성호 교사는 이 문제에 대해 과학자 선생님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학생들의 편지를 받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원장인 이기영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학교 수업에 세 명의 연구원을 보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다시 한 달여가 지난 15일 오후 5시, 학생들의 궁금증을 바탕으로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열렸다.

    오후 5시면 학원에 있거나 아니면 놀이터에서 친구와 뛰놀거나(?) 할 시간이 아니던가, 그런데 무려 1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학원 시간을 조정하거나 바쁜 스케줄을 뒤로 하고 온라인 화상 발표회에 참여했다.

    이기영 교수가 초등학생들 앞에서 얘기하려니까 많이 떨리고 배도 아픈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교수는 학생들이 정성스레 쓴 그림 편지를 보고 너무 훌륭하고 이렇게까지 준비할 수 있다는 데 놀랍다는 반응을 나타내며 조사한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스프레이로 비말 입자를 만들어 뿌렸는데 가림막 때문에 반대편으로 가지 않고 99% 이상 차단됐다. 하지만 가림막 안으로 연기를 뿌렸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관찰한 실험에서는 연기가 가림막 바깥으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올해 5월 전세계 과학자 239명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공기 중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공동 성명을 냈다.

    이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가림막이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학생들이 알기 쉽게 정리해 말해줬다. '가림막은 비말 차단에는 효과가 있어 음식 섭취 등으로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장소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공기 중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효과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이다.

    2020년 5월 서울시 교육청의 '코로나19 관련 학교 방역 기본 대책'을 보면, 교사는 학교 실정에 따라 수업 중 가림막을 사용할 수 있고, 교실 배식을 할 때도 필요할 경우 임시 가림막을 설치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청은 수업 시에는 가림막을 치우고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공기 흐름을 방해하고 안전사고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양하라는 것이다.

    결국 지침이 명확하지 않아 가림막 설치 여부는 학교 판단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 '잘 안 보이고, 안 들리고, 다치고'…가림막이 불편한 이유

    <2021.11.25.~26. 서울 송중초 1~6학년 3백 명 조사>
    학생들이 가림막을 불편한 이유로 꼽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중복 답변)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목소리가 잘 안 들려서 (79명, 50%)
    -가림막으로 인해 앞이 잘 안 보여서 (107명, 68%)
    -책상 안 공간이 좁아서 (77명, 49%)
    -가림막 등에 지우개 가루 등 이물질이 들어가서 (83명, 53%)
    -가림막이 바닥에 떨어질 때 시끄러워서(89명, 57%)




    가림막이 교실 바닥에 떨어지는 일이 잦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진은 실제 소음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측정했다.(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실 바닥과 초등학교 바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학교에서 쓰는 가림막을 세 차례 반복해 떨어트렸는데 평균 94.1dB의 소음이 나왔다.(93.4dB_1차, 94.5dB_2차, 94.2dB_3차) 이는 지하철이나 심한 도시 교통 소음, 시계 알람 소리인 80dB보다 더 높고 소음이 심한 공장 안과 비슷한 수준으로 학교보건법에서 정한 소음 기준은 55dB이다.
    송중초의 경우는 일명 찍찍이 테이프로 가림막을 뗐다 붙였다 한다고 하고, 우리집 아이들 학교에서는 큰 서류용 집게로 가림막과 책상을 동시에 집는다는데 완벽히 고정하기 어려워 가림막이 자주 떨어지는 듯하다.

    가림막 때문에 베이거나 긁히는 등 다치는 일도 있는데, 조사에 응답한 학생의 27%가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가림막 때문에 멀미 현상을 호소하기도 한단다. 가림막에 빛이 반사돼 친구 얼굴이 비치는 경우도 있고 선생님이 나눠주는 가정통신문을 뒤에 앉은 친구에게 넘길 때도 가림막에 막혀 불편함을 느낀다.

    여기에다 가림막에는 많은 플라스틱이 사용된다. 아이들의 그림 편지에도 '왜 환경에도 안 좋은 플라스틱이냐'고 묻는 질문이 있다. 가림막 한 개에는 750g의 플라스틱이 들어가는데, 송중초의 경우는 배식실을 제외하고 대략 천 개의 가림막이 있다. 무게로 환산하면 750kg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 교육청이 임시 가림판 설치비를 지원하는 금액을 보니, 교실용 가림막은 학생 수×3천 원, 식탁용 가림막은 학생 수×만2천 원으로 책정됐다.

    나중에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면 또 이 많은 가림막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가림막이 버려지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냐'는 학생의 질문에 이 교수는 플라스틱 가림막은 매립될 가능성이 있다며, 학생들이 가림막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역질문을 던졌다.

    설명을 마무리하면서 이 교수는 가림막이 바이러스를 100% 막아주진 못하지만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라며, 기존의 연구 결과와 인식 조사를 바탕으로 가림막의 필요성을 서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림막이 불편하다는 많은 의견에도 불구하고 교실에 가림막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57%나 되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림막을 사용하지 않아 불안해하는 학부모도 있었다고 한다.




    ▶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진 경험…토론과 논의 통해 배워가는 학생들

    '가림막은 꼭 필요하다', '가림막은 없어도 된다'
    확실한 대답을 기대했던 학생들에게 다소 아쉬운 대답일지 모르나,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은 토론과 논의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학생들이 배우지 않았을까.

    학생들의 질문으로 시작한 이번 조사를 보고 발표회에 참석했던 민주시민교육의 송현정 박사(서울대 사회교육과)는 "가림막에 대해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학생들이 문제 제기를 하고 그 문제가 받아들여지고 보건대학원에서 심도 있게 연구를 해주는 과정들이 멋있다"며, "앞으로 좋은 사례로 퍼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교수는 "학생들의 질문이 없었다면 가림막에 대한 경험이 없는 자신은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라며 "학생들의 질문이 연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시민과학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아이들의 편지를 하나하나 읽으며 과학자들이 왜 과학을 할까, 근본적으로 시민과 국민들, 전 지구에 도움이 되기 위해 과학을 하는 건데 난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했다"고도 말했다.

    한 시간 훌쩍 넘게 진행된 발표회였지만 학생들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

    유원선 학생은 가림막에 대해 친구들과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배워서 재미있었고 이지윤 학생은 발표회를 너무 기대하고 있던 터라 이 시간이 좋았다고 했다.
    김태희 학생은 이 교수의 발표 중 자신의 질문이 4개나 나왔다며 기뻐했고, 강민수 학생은 발표토론회를 해서 좋았다며 코로나가 빨리 끝나 가림막을 쓰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사진 제공, 서울 송중초 배성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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