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뉴스+덤] 한강-비아그라 미스터리, 진실은 이렇다

백창은 기자

bce@tbs.seoul.kr

2021-06-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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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한강에서 비아그라 성분이 검출됐다는 기사,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한강에서 비아그라가 왜? 기사를 보고서 누구나 이런 궁금증이 생겼을 거예요.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비아그라 교수’로 유명해진 서울시립대학교 환경공학부 김현욱 교수를 만나고 왔습니다. 한강에서 어쩌다 발기 부전 치료제 성분이 발견된 건지, 그리고 비아그라에 가려진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뒷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특허 풀린 성분, 고삐 풀린 복제약

    지난 2012년 5월 비아그라에 이어 2015년 9월, 또 다른 발기 부전 치료제 시알리스의 국내 특허가 만료됐습니다. 곧바로 수많은 제약사들이 제네릭, 복제약 전쟁에 뛰어듭니다. 10년 넘게 신약을 준비하는 것보다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약을 복제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까요.

    복제약은 기존 약과 성분, 효능이 모두 같지만 가격은 10분의 1 정도로 훨씬 저렴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유흥업소에서는 발기 부전 치료제를 저렴한 값에 대량 구매하고 나서 손님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도 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김현욱 교수는 이 대목에 주목했습니다. 무분별하게 퍼지는 발기 부전 치료제. 그 주성분인 실데나필, 타다라필, 바데나필(PDE5-i라고 부릅니다)은 모두 과거에는 없던, 새롭게 개발된 성분입니다. 과연 하수처리시설에서 제대로 처리는 될까?

    ▶하수처리시설이 거르지 못하는 비아그라?

    왜 하수처리시설이냐고요? 우리가 먹은 약은 전부 우리 몸에 흡수되지 않습니다. 절반 정도만 흡수되고 나머지는 소변 등을 통해 배출됩니다. 배출된 성분은 변기와 하수구를 통해 하수처리시설로 가게 되죠.

    그런데 우리나라에 있는 하수처리시설은 대부분의 화학물질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시설이 오래되기도 했고, 하수처리시설 설치 이후 개발된 화학물질도 많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2018년 4월 21일부터 27일까지 일주일간 강북 중랑천과 강남 탄천의 물을 채수해 분석했습니다. 강남 탄천에서는 평균 0.088ppb, 중랑천에서는 0.062ppb의 발기 부전 치료제 성분이 검출됐습니다(ppb는 ppm의 천분의 1. 10억 분율을 의미합니다). 하수처리시설을 거친 이후에도 비슷한 농도가 측정됐습니다. 해당 성분이 전혀 걸러지지 않은 겁니다.

    ▶달려라 불금?

    재미있는 점은 검출된 발기 부전 치료제 성분의 농도가 요일별로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강북 중랑천과 강남 탄천 모두 평일보다는 주말에 해당 성분이 더 많이 검출됐습니다. 특히, 금요일 밤에 채취한 물에서 발기 부전 치료제 성분이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또 중랑천보다는 탄천에서 더 높은 농도의 발기 부전 치료제 성분이 나왔습니다. 강남에 유흥시설이 더 많았기 때문인데요. 연구팀은 탄천에서 검출된 양을 바탕으로 역산한 결과, 성인 남자 천 명 가운데 다섯 명이 발기 부전 치료제를 매일 먹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농도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애초 김현욱 교수가 주목했던 가설에 타당성을 더해 주는 분석 결과입니다. 일부 유흥업소에서 금요일 밤과 같은 시간에 손님에게 무료로 나눠준 발기 부전 치료제가 한강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이런 발기 부전 치료제가 어떻게 하수처리시설로 흘러들어왔는지를 정확히 따지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 약을 복용한 남성의 소변 등을 통해서 하수처리시설로 흘러들어왔을 수도 있고, 무료로 나눠준 약이 하수구, 변기 등에 버려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한강에 수많은 약이 녹아 있다

    실제로 '불금 비아그라'보다 한강에서 더 많이 검출되는 약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상비약으로 흔히 갖고 있는 해열제나 진통제입니다. 상비약이나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유효기간이 지나면 버려지죠. 보통 어디에 버리시나요?

    지난 2018년 건강보험공단심사평가원의 조사 결과 74.1%는 의약품을 어떻게 버리는지 잘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약을 버릴 때 55.2%는 쓰레기통이나 하수구, 변기에 버리고 있습니다.

    약들이 먹지 않고 그대로 버려지면 소변을 통해 배출되는 것보다 훨씬 높은 농도로 한강에 녹아들게 됩니다. 대부분 가정에서 많이 가지고 있는 비스테로이드 항염증제(NSAIDs), 예를 들면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성분 등은 평균 20~30ppb나 검출됐습니다. 다행히 발기 부전 치료제 성분과는 달리 하수처리장에서 대부분 처리되지만 여전히 2~3ppb는 한강에 녹아 있습니다. 발기 부전 치료제 성분보다 40배가량 높은 수준입니다.

    ▶무심코 버린 약이 다시 내 입으로?

    한강에 녹아 있는 수많은 약들이 내 입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연구팀은 상류에서 발견된 약 성분이 지류를 타고 흘러 하류로 퍼질 수도 있고, 결국엔 상수원까지도 해당 성분에 노출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결국 어느 정도 우리는 한강 속 수많은 약에 노출돼있는 겁니다.

    서울대학교 환경보건학과 최경호 교수는 "사람이 많은 약들에 저농도로 오랫동안 노출됐을 때 어떤 영향이 있는지 알 수 없어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하천 생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고기에게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켜 제대로 번식을 못 하게 할 수도 있고, 체내 장기에 문제가 생겨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김현욱 교수는 "특히 발기 부전 치료제 성분의 경우 이전에는 검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환경 교란 피해를 일으킬지 알 수 없다"며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버릴 약은 약국·보건소로 가져가 주세요"

    우리 입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수많은 화학물질.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화학물질을 하수처리시설에서 깨끗하게 걸러내는 거겠죠.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새롭고 다양한 화학물질은 계속 개발되는데 그에 맞춰 매번 하수처리시설을 재정비할 수는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냥 버려지는 약이라도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우리가 약을 먹은 뒤 배출되는 화학물질까지는 막을 수 없으니, 남아서 버리게 되는 약이라도 줄이고, 제대로 버리자는 겁니다.

    현재 2008년부터 시행된 협약에 따라 오래된 약은 약국이나 보건소, 주민센터로 가져가면 처리해 주고 있습니다. 물약이나 연고도 마찬가지고요. 사람 약 외에 반려동물에게 쓰고 남은 약도 가져가셔도 됩니다. 이렇게 모아진 약들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안전하게 소각됩니다.

    서랍 속 오래된 약, 내일 동네 약국에 한 번 가져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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