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밀착취재T] 씻을 곳 없는 취약계층…공공목욕탕·바우처로 해법

김호정 기자

tbs5327@tbs.seoul.kr

2023-03-1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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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자 】
    북한산 자락 아래 솟은 빨간 벽돌 굴뚝.

    골목길 계단을 내려가면 보이는 삼색 회전판과 볕에 널린 수건.

    익숙한 목욕탕 풍경입니다.

    옛날식 사물함, 오랜 타일과 자동 때밀이 기계는 세월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동네 터줏대감으로 55년. 추억도 켜켜이 쌓였습니다.

    【 인터뷰 】손진웅 / 서림탕 단골 고객
    "오래됐지. 오래됐어. 여기서 목욕한 게, 몇 십 년을 여기서 목욕했으니까. 하루에 한 번씩 계속 매일 왔어. 몇 십년을 왔어."

    【 인터뷰 】박흥동/ 서림탕 주인
    "어렸을 때 왔던 목욕탕이라면서 반갑게 목욕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요. 그 사람들이 나이가 지금 55세에서 60세는 됐죠."

    동네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했습니다.

    【 인터뷰 】강진석 /서림탕 단골 고객
    "여기 오면 아는 사람들, 친한 사람들 다 얼굴도 보고 그렇게 하는 거지. 여기 없어지면 상당히 불편하고 여기가 사랑방 같은데..."

    하지만 차츰 손님이 줄어들고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면서 목욕탕을 찾는 발길은 더 뜸해졌습니다.

    【 인터뷰 】박흥동/ 서림탕 주인
    "20살 이렇게 먹은 사람들도 오지도 않아요. 몇 명.
    요새. 애들은 뭐 더군다나 없고. 애들이 안 오지가 7~8년, 한 10년 된 것 같아요."

    【 인터뷰 】이모씨/ 정릉4동 주민
    "내가 저기(목욕탕) 다녔는데 4년째 한 번도 안 갔어. 그래 이제는 코로나(규제)가 해제되니깐 한 번쯤 가볼까 그런 생각을 요 며칠 전에 한 번 하긴 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안 갔어."

    설상가상으로 전기·가스요금 등 난방비까지 가파르게 오르면서 운영비를 감당 못한 동네 목욕탕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습니다.

    금천구 시흥5동도 코로나 여파로 목욕탕 한 곳이 문을 닫았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 인터뷰 】공석완/금천구 시흥 5동 주민
    "목욕탕이 없는 게 옛날에 여기에 있었는데 없어지고, 한 군데 있기는 있는데 거기는 여탕만 있어. 남자들이 목욕할 곳이 없어요."

    주민들은 주민센터를 이전하면서 새로 짓는 금천문화시설에 공공목욕탕을 지어달라고 나섰습니다.

    【 현장음 】
    "'목욕탕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서명을 받기 위해, 청원하기 위해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청장님이 생각하는 문화재단 말고 시흥 5동 주민들은 목욕탕이 간절히 필요하니 목욕탕을 좀 만들어 주십시오."

    복지의 관점에서도 주민들을 위한 목욕탕 시설이 꼭 필요하다고 호소합니다.

    【 인터뷰 】 엄샛별 /금천구의회 의원
    "의식주에서 가장 인간의 기본권은 청결하게 씻는 것, 그게 건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건강이랑 가장 직결된, 특히 코로나 이후에 건강에 취약한 분들이 저층 주거지에 계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는 목욕탕이 단순한 문화가 아니라. 건강의 가장 기본이 되는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3년간 전국에서 폐업한 목욕탕은 천백여 곳.
    서울에서는 250곳 정도가 자취를 감췄는데 폐업 신고를 하지 않고 휴업 상태인 목욕탕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목욕탕이 사라지면서 노년층과 취약계층은 씻을 곳이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기자 】
    이른 아침부터 동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노라니 이내 문이 열립니다.

    성인 6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규모지만,
    비타민 목욕탕은 백사마을에는 없어선 안 될 소중한 공간입니다.

    【 인터뷰 】강길자/ 백사마을 주민
    "집에서는 글쎄 발이나 닦고 세수나 하고 그러는 거지, 추우니깐. 물은 뭐 가스레인지에 데우죠.
    그냥 솥에다가 하나 데워서 쓰는 거죠.
    머리도 감고. (목욕탕 오면) 다 씻고 가지 뭐. 물에도 담가서 깨끗하게 씻고 가지."

    【 인터뷰 】한광욱/ 서울연탄은행 주임
    "목욕탕을 이용하시는 분들 같은 경우는 백사마을에 사시는 연탄으로 겨울을 나시는 에너지 취약계층 분들이 때문에 이분들 같은 경우에 집에 씻을 공간이 부족할뿐더러 물을 데우시는 일도 굉장히 일이거든요."

    이웃의 손길이 모여 완성됐지만, 최근 공공요금이 오르면서 운영에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 인터뷰 】한광욱/ 서울연탄은행 주임
    "아무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난방비가 많이 올랐잖아요. 작년 대비 LPG라든지 난방유라든지 두 배 이상 올랐고 전기료도 많이 오르다 보니깐 사실 후원만으로 운영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영등포 쪽방촌 상황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민들은 좁디좁은 복도 끝에 설치된 수도와 양동이에 담긴 물로 쪼그려 앉아 세수합니다.

    월세가 좀 더 비싼 방엔 그나마 공용 세면장이 있지만 이용하기 비좁고 춥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쪽방촌 주민들이 한 달에 두 번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동행 목욕탕'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민간의 후원을 받아 5개 쪽방촌 주민 2,400명에게 한 달에 두 번 목욕탕에 갈 수 있는 이용권을 제공하기로 한 겁니다.

    6곳의 목욕탕이 동행 목욕탕으로 지정됐는데 쪽방촌 주민들에게는 편하게 씻을 수 있는 곳이 생기는 것이고 목욕탕 주인 입장에서는 매출이 느는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 인터뷰 】김형옥/영등포 쪽방상담소 소장
    "아무래도 쪽방은 좁다 보니깐 샤워시설 등 편의 시설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상당히 개인 위생이라든지 질병이라든가. 씻는 문제에 상당히 노출이 돼 있는데, 동행목욕탕을 통해서 아무래도 그 부분이 많이 해소가 될 것 같습니다."

    동네 목욕탕과 취약계층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서울시는 동행 목욕탕 수를 더 늘리는 것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TBS 김호정입니다.

    ▶▶ 리포트 영상에 못 담은 상세한 내용, Q&A로 정리했습니다.

    Q. 동네 목욕탕이 찾기가 어려워졌는데, 얼마나 사라진 건가요?

    A. 행정안전부의 목욕장업 등록업소 통계를 보면 2022년 6월을 기준으로 전국에서 폐업한 목욕탕은 11,334곳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여파가 미친 최근 4년간(2020~2023년) 1,114곳의 목욕탕이 문을 닫았습니다.

    서울시내에서는 최근 4년간 246곳이 폐업했는데, 폐업 신고를 하지 않고 휴업한 곳도 있어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Q. 목욕탕은 손님이 한 명이든 수십 명이든 항상 물을 데워야 하는데, 난방비 상승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A. 소상공인연합회의 지난 2월 긴급 실태조사를 보면 난방비 상승으로 인한 부담을 묻는 질문에 목욕탕업 90%가 '매우 부담된다'고 답해 다른 업종보다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특히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난방비가 50% 이상 상승했다고 답한 비율이 40%를 차지해 다른 업종보다 두 배 높게 나타났습니다.

    Q. 업주들도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목욕탕이 문을 닫으면서 어르신들이나 취약계층의 타격이 컸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A.추운 겨울에는 목욕탕이 사라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분들이 저소득 가구 등 취약계층과 어르신, 장애인 등 이동이 불편한 분들입니다.

    동네에 목욕탕이 사라지면 버스를 타야 하거나 걸어가더라도 20~30분 이상 걸려 목욕탕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이동형 목욕탕도 있지만 이용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 인터뷰 】 엄샛별 /금천구의회 의원
    "기본적으로 금천구 안에 지금 장애인분들을 위하거나 어르신분들을 위한 이동형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따로 모시고 와서 그 트럭 같은 차 안에서 목욕하게 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목욕할 수 있는 인원도 한정적이고. 또 그분들이 춥습니다. 그런 어려움들이 있는 것도 공공목욕탕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고요."

    Q. 서울 시내에 공공목욕탕이 만들어진 사례가 있나요?

    A. 서울 시내 공공목욕탕은 총 6곳이 있습니다. 마포구와 성동구 각각 2곳, 노원구와 금천구가 한 곳인데요, 먼저 성동구 사근동의 작은 목욕탕은 금천구와 비슷한 사례입니다.

    오래된 주민센터를 새로 지으면서 목욕탕이 자리하게 됐는데, 헬스장과 복지센터까지 함께 이용할 수 있어 주민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 인터뷰 】안길영/ 사근동 주민
    "일주일에 다섯 번 옵니다. 헬스 왔다가 헬스 해서 끝나면 목욕하고 가고 그렇습니다.
    동네에서 가깝고, 요금도 저렴하고 그래서 더 이용을 많이 하죠."

    【 인터뷰 】이봉자/ 사근동 주민
    "전에는 마장동에도 동네 목욕탕이 있었는데 없어졌잖아요. 어른들은 어디 차를 타고 그러지를 못하잖아요. 여기 작은 목욕탕이 오래오래 잘 됐으면 좋겠어요."

    Q. 폐업한 민간 목욕탕을 공공 목욕탕으로 바꾼 사례도 있었다고요?

    A. 서울 노원구 행복 나눔 목욕탕입니다.
    이곳은 민간에서 운영하던 목욕탕이 폐업하자 노원구와 SH공사가 인수한 사례입니다.
    취약계층과 지역주민 등 평일에만 120명, 주말에는 170명 정도가 오가며 이용 빈도가 높았습니다.

    【 인터뷰 】조문화 /노원구청 자활지원팀 팀장
    "목욕탕이 위치한 지역이 영구 임대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저소득층하고 장애인 어르신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기존의 목욕탕으로 있던 이곳이 적자로 폐업하게 되었는데, 노원구청에서 SH공사하고 무상 임대를 맺어 어르신들하고 저렴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그렇게 운영하게 됐습니다."

    Q. 공공 목욕탕 외에도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동행 목욕탕 사업이 소개됐는데 어떤 정책인가요?

    A. 서울시와 한미약품의 지원으로 동행목욕탕 서비스가 3월 1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동행목욕탕은 돈의동 2곳, 남대문과 서울역에 1곳씩, 창신동 1곳, 영등포 1곳으로 모두 6곳입니다.

    3월 14일 기준으로 총 293명이 이용했습니다.

    당초 서울시는 8곳을 목표로 한 만큼 향후 동행 목욕탕 수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올해 시범 사업으로 진행한 후 확대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Q. 일부 지자체에서 목욕 바우처 사업이란 것도 시행하고 있는데 동행 목욕탕과는 다른 건가요?

    A. 취약계층 어르신이 무료로 목욕탕을 이용하는 어르신 목욕 바우처 사업은 경기도의 경우 안산시와 화성시, 광주시, 광명시에서 지방의 경우 부산 등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바우처는 목욕 쿠폰이나 지역 화폐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지급되는데, 우선 지자체마다 별도로 예산이 마련돼 있지 않다보니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또 장애인인 경우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바우처 포인트로 이동 서비스나 목욕탕 이용 등을 할 수 있는데, 목욕탕 이용 포인트가 별도로 책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동 서비스나, 식사 보조 등 다른 용도로 포인트를 소진해 버리면 목욕탕을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아울러 인근에 목욕탕이 없으면 바우처를 받아도 쓸 곳이 없는 거죠.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어떤 지자체에서 하느냐에 따라 예산과 범위가 달라질 수 있으니, 정부 차원의 목욕 바우처 제도 수립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 인터뷰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정부에서는 저소득 계층의 목욕을 위해서 이런 목욕을 위한 바우처를 만들어서 가까운 곳에 목욕탕이 사라지면 좀 근거리에 가서 그런 바우처를 활용해서 목욕을 할 수 있는 그런 제도를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공목욕탕을 건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립한 이후에 이것을 운영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바우처를 제공해서 그거를 본인이 원하는 데 가서 목욕을 이용하시고 만약에 차액이 생기면 본인이 부담할 수 있도록 조금 실비로 그렇게 하는 방법도 우리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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